상장사가 자사주에 인적 분할한 신설 회사의 신주를 배정하는 행위가 연말부터 금지된다. 자사주 취득·처분 과정의 공시 의무가 더 구체화되고, 자사주를 신탁으로 취득하는 절차상 규제도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대주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오용된 자사주가 주주환원 수단으로 제 역할을 하고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지도록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31일부터 이러한 자사주 제도 개정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24일 밝혔다. 이 시행령 개정안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으며, 공시 등 관련 세부 규정(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은 지난 11일 금융위에서 의결됐다.
개정된 시행령은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제한한다. 현재 자사주에 대해서는 의결권, 배당권, 신주인수권 등 주주권이 정지되나, 법령과 판례가 명확하지 않아 인적분할 시에는 자사주에 신주 배정이 이뤄졌다. 이는 자사주가 주주가치 제고가 아니라 대주주 지배력 강화(소위 '자사주의 마법')에 활용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적분할 시 신주배정을 다른 주주권과 다르게 취급하면 자사주에 일체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개별 규정으로 합병·분할 시 자사주 신주배정을 제한하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 주요국 제도와 정합성 문제도 제기됐다.
예를 들어 대주주가 지분 40%, 일반주주가 30%를 보유한 A사가 자사주 30%를 보유한 채 인적분할로 신설한 B사는 대주주·일반주주·A사에 지분율(4:3:3)대로 신주를 배정한다. 이 경우 대주주의 B사에 대한 의결권 비율은 직접 보유 지분과 그가 지배하는 A사의 지분을 합한 70%가 되고, 대주주 대 일반주주 의결권 비율은 7:3(70% 대 30%)이 된다. 자사주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아 대주주 대 일반주주 의결권 비율이 4:3(57% 대 43%)인 A사보다 일반주주 의결권 비율이 13%포인트 줄고 그만큼 대주주의 의결권이 늘어나, 대주주의 지배력이 훨씬 확대된다.
금융위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개정 시행령이 상장법인 인적분할 시 자사주에 대해 신주배정을 할 수 없도록 명시했고, 같은 취지로 상장법인이 다른 법인과 합병해 소멸되는 법인이 보유하는 자사주에 대해서도 신주배정을 할 수 없게 했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특히 지주회사 전환의 많은 사례가 인적분할 및 교환공개매수를 통해 추가 출자 없이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일이었다"며 그간 국내서 이뤄진 재벌 대기업의 지주사 전환 과정에 이러한 문제가 빈번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개정 시행령은 또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한 뒤 보유 규모나 소각·처분 등 처리계획을 충분히 공개하도록 공시 의무를 강화했다. 자사주 보유비중이 발행주식총수 5% 이상인 상장법인은 자사주 보유현황, 보유목적, 향후 처리계획 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 공시해야 한다. 또 모든 상장법인은 자사주 처분 시 처분 목적, 처분 상대방 및 선정사유, 예상되는 주식가치 희석 효과 등을 공시해야 한다.
자사주를 직접 취득한 경우보다 규제가 느슨했던 신탁 취득 관련 절차도 강화했다. 개정 규정은 신탁으로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에도 직접 취득방식과 동일하게 자사주 취득 금액이 당초 계획·공시된 자사주 매입금액보다 적을 때 사유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계획된 자사주 매입기간이 종료되고 1개월이 지나기 전에는 새로운 신탁계약을 체결할 수 없게 했다. 신탁계약기간 중 신탁업자가 자사주를 처분할 때 직접 처분과 동일하게 처분 목적, 처분 상대방 및 선정사유, 예상되는 주식가치 희석 효과 등을 회사가 주요사항보고서로 공시해야 한다.
금융위는 "이번 제도 개선을 통해 주권상장법인 자사주가 대주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오용되지 않고 주주가치 제고라는 본래 취지대로 운용되는데 기여할 것"이라며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제도개선 사항이 시장에 정착되게 하고 앞으로도 일반주주 보호를 위한 추가 제도개선 방안을 지속해서 검토·추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위는 올해 주권상장법인의 자사주 취득 및 소각금액이 지난 20일 기준으로 전년 대비 2.3배, 2.9배 증가해 최근 7년(2019~2024년)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확산 등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대한 시장참여자 및 기업의 관심도가 높아진 결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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