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26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국민 분열과 여야 갈등 상황이 극심한 상황에서 일종의 '법적·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돼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되지만, 야당에서는 한 대행이 윤 대통령 탄핵 반대세력에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대행은 이날 담화문에서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데 그냥 임명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문제는 안타깝게도 그렇게 쉽게 답을 정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고민"이라며 "역사를 돌아볼 때 여야 합의 없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단 한 분도 안 계셨다는 게 그 자리의 무게를 방증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담화는 마은혁·정계선·조한창 국회 몫 헌법재판관 선출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직전 나왔다. 민주당이 추천한 마 후보자는 재석 의원 195명 중 찬성 193표로, 정 후보자는 찬성 193표로 각각 통과됐다.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 후보자도 찬성 185표로 임명동의안이 가결됐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한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 권한이 없다"면서 조경태·김상욱·김예지·한지아 의원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표결에 불참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020년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이 징계 청구를 했으나 징계위원을 추가 위촉해 처분이 무효가 된 것을 사례로 거론하고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해 임명을 함부로 강행하면 탄핵심판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한 대행 역시 국민의힘 논리에 공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 역시 헌재의 탄핵 심판 결정에 영향을 주는 임명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재 결정 전에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았고, 헌재 결정이 나온 뒤 임명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한 대행이 국회가 적법 절차에 따라 선출한 헌법재판관에 대해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국회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방해하고 내란을 연장하는 헌정 유린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이미 한 대행이 대통령의 적극적인 권한 행사인 국회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상황에서 일종의 형식적인 권한 행사인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선포를 주도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이 윤 대통령에 앞서 한 대행에게 계엄 계획을 사전 보고했다고 주장하면서 한 대행이 단순 내란 사태의 방조자가 아니라 동조자였던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커지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한 권한대행은 이미 국회에서 여러 차례 증언한 바와 같이 12월 3일 오후 9시경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직접 듣기 전까지 관련한 어떤 보고도 받은 사실이 없다"며 “허위 사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포함해 모든 조처를 할 방침"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한 총리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탄핵심판을 방해하는지 분명해졌다"며 "본인을 구명하기 위해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위를 악용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내란에 가담한 것도 모자라 헌정 질서 파괴를 선언한 한 총리는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직격했다.
민주당은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 대행 탄핵을 추진할 방침이다. 한 대행 탄핵안이 가결되면 즉시 직무가 정지된다. 한 대행 다음 권한대행 순번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강하게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진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민주당은 한 대행 탄핵은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에 필요한 151석이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탄핵안 의결정족수가 대통령에 준하는 200명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국민의힘이 권한쟁의심판을 시도한다면 한 대행이 당분간 직무를 이어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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