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씨가 몬테네그로 법무부의 미국 인도 결정을 뒤집기 위해 법적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몬테네그로에 수감 중인 권씨는 그동안 미국보다 경제 범죄 형량이 낮은 한국으로의 송환을 주장해 왔는데, 현지 법무부가 그의 ‘미국행’을 결정하자 맞대응에 나선 것이다.
현지 일간지 비예스티, 포베다에 따르면 몬테네그로 법무부는 지난 27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보얀 보조비치 장관이 권씨를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를 한다는 명령서에 서명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몬테네그로 법무부는 권씨의 신병을 언제 미국으로 인도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몬테네그로 헌법재판소는 24일 권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기각했다. 권씨는 지난 9월 대법원에서 자신의 한국 송환을 결정한 하급심의 결정을 무효로 하고 결정 권한을 법무부 장관에게 넘기는 판결이 나오자,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 10월 19일 권씨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2개월 넘게 심리했다.
권씨의 몬테네그로 현지 법률 대리인인 고란 로디치·마리야 라둘로비치 변호사는 27일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의뢰인과 변호인단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된 결정문이 공식적으로 전달되기 전에는 신병 인도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법무부에 결정이 내려지면 즉시 통보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보조비치 장관이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행동은 의뢰인의 기본적 인권, 즉 방어권과 법적 구제를 받을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같은 날 변호인단이 요구한 결정문이 권씨 측에 전달되자, 두 변호사는 이번에는 보조비치 장관의 결정문 전달 시점을 문제 삼으며 추가 대응했다. 변호인단은 관공서 업무 시간이 종료되는 금요일 오후에 결정문이 전달된 것은 방어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절차적 방해라는 논리를 폈다.
변호인단은 의뢰인의 기본적 인권이 침해됐다고 재차 주장하며 몬테네그로 헌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각각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임시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몬테네그로는 유럽평의회 회원국이며 ECHR의 관할을 받는다. ECHR의 결정은 구속력은 없지만 권씨의 범죄인 인도 절차가 몇 달 또는 몇 년까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변호인단은 지난 9월 20일 보조비치 장관의 편파성을 이유로 그의 기피 신청서를 정부에 제출한 바 있다면서 이에 대한 판단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장관이 결정한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씨 측이 몬테네그로 법무부의 범죄인 인도 결정에 ‘딴지’를 걸고 있는 것은 권씨의 미국행을 피하기 위해서다. 미국은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여서 100년 이상 징역형이 선고되는 것도 가능하지만 한국은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약 40여년으로 미국보다 낮다.
권씨는 테라폼랩스 창업자로 테라·루나 폭락 사태 직전인 2022년 4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에 입국한 후 지난해 3월 23일 현지 공항에서 한창준 테라폼랩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붙잡혔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권씨는 지난 3월 23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현지 외국인수용소에서 지내고 있다.
앞서 한국과 미국은 앞다퉈 권씨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그의 신병 인도를 결정할 권한이 법원에 있는지, 법무부 장관에 있는지를 두고 현지의 사법적 판단은 반전을 거듭했다.
권씨는 지난 3월에도 고등법원과 항소법원의 결정으로 한국행이 결정되는 듯했다. 하지만 대검찰청의 이의 제기 끝에 대법원이 지난 4월 5일 권씨의 한국 송환 결정을 무효화하고 사건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
한편,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인한 전 세계 투자자들의 피해액은 5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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