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에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신축 아파트 인기도 주춤하고 있다.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열풍에 몸값을 높여온 서울 시내 분양 단지에서도 미달 사태와 무순위 청약이 속출하고 있다. 시장 경색이 이어지면서 무조건적인 청약 대신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실수요자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30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포스코이앤씨가 공급하는 서울 중랑구 '더샵 퍼스트월드' 중대형 평수들이 청약 마감에 실패했다. 지난주 1순위 청약에서 83가구를 공급하는 전용면적 98㎡A 유형에 61가구만 신청했다. 같은 평형 C유형도 84가구 모집에 77가구, D유형은 41가구 모집에 26가구만 신청해 미달됐다. 지난 26일 1순위 전체 청약 경쟁률이 평균 9.3대 1을 기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달 청약을 진행한 '서울원 아이파크' 세부 성적도 썩 좋지 못하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 물류부지에 짓는 서울원 아이파크는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이 14.9대 1을 기록하며 순항하는 듯했지만 전용 105㎡ 이상 대형 평수에서는 미달이 발생했다. 1순위 최고 경쟁률이 36.8대 1에 달했던 전용 84㎡에선 청약 당첨자 가운데 일부가 계약을 포기했다. HDC현산은 예비입주자를 대상으로 추첨에 나섰지만 이마저 완판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기존 미달 평형 물량과 함께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으로 새 주인 찾기에 나설 예정이다.
경기권 주요 단지에서도 미달 사태가 연달아 발생했다. GS건설은 지난 24일 경기 안양시 재건축 단지인 '평촌자이 퍼스니티'에 대해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이 단지는 지난달 분양 당시 1순위 청약 경쟁률이 13.1대 1에 달했지만 청약 당첨자 중 20%가량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사후 입주자 모집에 나섰다. 비슷한 시기 청약을 진행한 안양시 '아크로 베스티뉴' 역시 본계약 체결률이 43%에 그치며 지난 17일 미계약 물량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이 단지는 1순위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 5.6대 1을 기록했던 곳이다.
무순위 청약조차 미달해 사후분양을 반복하는 신축 단지도 있다. 대우건설이 경기 용인시에 공급하는 '용인 푸르지오 원클러스터 1단지'는 이날 3차 임의공급에 나섰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13구역 재개발 단지인 HDC현산의 '서대문 센트럴 아이파크'는 지난 7월부터 일곱 차례에 걸쳐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선착순 분양에 들어갔다.
미달 단지 대부분은 분양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곳이다. 모두 3032가구를 공급하는 서울원 아이파크와 서울 중랑구 옛 상봉터미널에 지어지는 더샵 퍼스트월드는 올해 강북권 청약시장의 대어로 꼽히며 실수요자 관심이 집중됐다. 아크로 베스티뉴는 DL이앤씨의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를 적용한 경기권 1호 아파트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강력한 대출 규제로 투자심리가 줄어든 상황에서 주변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에 나서면서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노원구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한 서울원 아이파크는 전용 84㎡ 분양가가 최고 14억1400만원으로, 노원구에서 국민평형(84㎡) '14억 시대'를 열기도 했다. 미달이 속출한 더샵 퍼스트월드 전용 98㎡ 분양가는 최고 15억6900만원으로 역시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였다. 아크로 베스티뉴는 3.3㎡(1평)당 분양가 4500만원으로 안양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중대형 면적 수요가 풍부하지 않고, 분양가 차익 기대가 낮은 지역에서 분양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분양가 인하가 쉽지 않은 데다 정국 불안과 경기 둔화가 계속되면서 내년에도 차익이 보이는 단지나 대기 수요가 비교적 탄탄한 지역 위주로 청약이 쏠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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