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인 연구를 시작한지 사반세기가 지났다. 늙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늙어도 생명의 존엄성을 견지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 연구였다. 그 동안 방방곡곡에서 천명이 넘는 백세인을 만나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시점에도 삶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는 백세인의 참 모습을 보면서 나이 듦에 따른 늙음의 의미를 새롭게 느끼고 삶의 거룩함을 새기게 되었다. 그런데 언제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과학적으로 장수를 연구해왔던 나에게 장수인의 삶을 주관적으로 직접 체득하게 하는 운명적 전환점이 다가왔다. 바로 선친의 별세였다.
금슬 좋게 칠십 년을 아버지와 살아온 어머니에게 남편의 작고는 충격이었다. 이후 어머니는 초췌해지고 좌절에 빠져 자식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입관 때 아버지 수의 위의 색이 바랜 두루마기가 신혼 때 처가로 재행 올 때 입고 온 옷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가슴이 저렸다. 평생 소중하게 간직해온 두루마기를 떠나는 남편에게 입혀준 것이었다. 항상 커피 한잔 마시고 출근한 남편을 기리면서 어머니는 아침마다 아버지 영정 앞에 커피 한잔과 생화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장례 후 한 달도 채 안되어 폐염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니 애비가 나를 부르는구나”라고 하신 말씀이 나에게 엄습하였다. 백세인 연구과정에서 옛 어른 들의 큰아들에 대한 집념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익히 보아왔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지가 없었다. 뜻밖에도 고향의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받아주어 회향하여야 할 명분마저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 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모든 일들이 마치 아버지께서 나에게 당신이 사랑한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라고 기획해둔 카르마(Karma)만 같았다.
출향하여 오십 년 넘게 타관에서 살다가 일흔 살이 되어서 아흔 살인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나의 삶은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새벽이면 동네 공중목욕탕에 다녀오라 하고, 아침밥을 차려놓고 먹고 출근하게 하였으며 저녁이면 가까운 학교운동장을 댓바퀴 돌고 오라고 명한다. 술 한잔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으레 “아직도 술 먹고 다니냐”라며 가차없이 야단쳤다. 아흔 엄마가 일흔 아들 건강을 직접 챙기기 시작하였다. 장수학자로 대학교수로 나름대로 세상사람들에게 건강을 강조하고 생활습관개선을 주창해온 내가 내로남불 식으로 살아온 생활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잔소리 한번 꾸지람 한번 들어 본적이 없었는데 어머니의 지적은 여지없었고, 그대로 실천해야만 하는 강제력을 발휘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일흔 넘은 아들이 여전히 방에 처박혀서 공부만하던 고교시절의 자식일 뿐이었다. 기거하는 방에 TV세트를 두려 하자 “공부해야 하는데 무슨 TV다냐”고 못 두게 하였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수십 년 미루었던 발톱곰팡이치료도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아직 광주 대구 서울을 번갈아 오가면서 일을 해야 하는 나를 안타깝게 여긴 여동생들이 “일흔이 넘은 큰 오빠가 고생하네요”라고 하자 어머니는 거침없이 “일흔 살도 나이다냐. 나는 그때 날라 다녔다”라며 나이든 아들을 주눅들게 만들어버렸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아들은 백 살을 바라보는 어머니 앞에서 다시 어린 아들이 되어 버렸고 어머니는 다시 젊은 엄마가 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각종 노인성질환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들 질환과 당당하게 투쟁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노후의 삶에 대한 조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평생고질이었던 치아문제 때문에 결국 아흔한 살부터 이년에 걸쳐 임플란트를 열다섯 개나 하였고 아흔세 살에는 대동맥판막대체술까지 받았다. 이렇게 시련을 이겨낸 어머니는 마침내 맛있는 음식을 다시 드시게 되었고 밭에서 농사짓는 삶을 되찾게 되었다. 기적 같은 의술의 혜택이 우선이지만 강한 의지로 고통을 극복해낸 어머니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백세인을 만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을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와의 삶을 통해서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부지런하게 항상 무엇인가를 하시는 모습. 새로운 것을 배워서 시도해 보는 도전. 자식과 이웃과 어울리고 배려하는 삶. 사물에 대한 깊은 관심. 건강을 스스로 지키려는 적극적 노력. 일흔이 넘은 자식에게 꾸지람을 주며 생활을 지도하는 어머니의 당당함. 이런 점들은 바로 백세인의 공통점이었다. 일흔 넘어 고향에 돌아와 아흔 넘은 어머니와의 삶을 시작한지 벌써 여덟해가 되었다. 그 동안 나이든 아들은 다시 어려지고 늙으신 어머니는 다시 젊어지시기를 소망하면서 살아왔다.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느낀 회향회춘(回鄕回春)의 기쁨을 알리고자 “백세엄마 여든아들 (박상철, 시공사)”라는 제하의 책자를 상재하였다. 늙은 아들이 더 늙으신 엄마와 사는 모습을 진솔하게 표현하면서 초고령사회에서 고향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보기를 권장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늙는다는 것은 거룩한 일임을 잊지 말자.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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