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전 세계 항공기 시장을 석권하며 '하늘의 제왕'으로 불렸던 보잉의 추락이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1월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 여객기가 운항 중 창문이 뜯겨나간 것부터 12월 제주항공 여객기사고까지. 2024년은 보잉에 있어 최악의 한 해로 자리매김했다.
30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매체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제주항공 사고는 올해 들어 발생한 9번째 보잉 사고이다. 6월에는 유인 우주선 '스타라이너' 결함, 9월에는 엔지니어 파업이 언론을 장식하기도 했다.
사실 보잉의 위기는 지난 수년간 꾸준히 지적되어 온 것으로, 본격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19년부터이다. 2018년 10월과 2019년 3월에 5개월의 간격을 두고 각각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소속 보잉 737맥스8과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737맥스8 여객기가 추락한 가운데 2건 합쳐 총 34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보잉이 해당 기종의 결함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보잉은 올해 들어서야 미국 항공당국을 기만했다는 형사상 사기 공모죄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한때 '보잉이 아니면 고잉하지(가지) 않겠다'는 말을 탄생시키기도 했던 108년 역사 보잉의 위기는 지난 97년 방산업체 맥도널 더글러스 인수 이후, 재무적 관점을 중시하는 맥도널 더글러스 측 인사들이 경영진에 대거 유입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경영진이 수익성 확대에만 몰두한 반면 품질 관리 및 안전 기준 등에는 소홀하다 보니 각종 사고로 이어지게 됐다는 것.
보잉 임원을 역임하기도 했던 에드 피어슨 항공안전재단 전무이사는 현재 보잉에 대해 "경영진이 품질보다는 비행기를 출고하는 것에 더 신경쓰고 있다"고 CNN에 말했다.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3만3000명의 보잉 엔지니어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한 것 역시 이같은 회사 상황과 무관치 않은 모습이다. 3월에는 보잉에서 30년간 근무했던 '내부 고발자' 존 바넷이 법정 증언을 앞두고 사망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보잉의 문제는 민항 부문뿐만 아니라 주요 사업부 중 하나인 방산 및 우주·안보 부문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올해 6월에 2명의 우주비행사가 보잉의 유인 우주선 '스타라이너'를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시험 비행을 떠났으나 이후 스타라이너에 결함이 발견되면서 우주비행사들을 ISS에 내버려 둔 채 지구로 복귀했다. 따라서 이들 우주비행사는 내년 2월까지 ISS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는 올해 '로켓 회수' 기술을 선보인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고, 보잉의 신뢰성을 더욱 저하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물론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제주항공 보잉 737-800기의 경우 아직 사고 원인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잉의 신뢰성은 더욱 저하될 전망이다. 그리고 보잉이 이같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안전 제일을 내세웠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진단이다.
보잉 주요 고객사 중 하나인 에미리트항공의 팀 클라크 사장은 올해 초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그들(보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안전 문화를 주입해야 한다"며 "제조 과정을 재검토하여 어떠한 절차도 생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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