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우의 프리즘] 비상(非常) 시국 외교의 비상(飛上)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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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입력 2025-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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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작년 12월 14일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권력 공백이 현실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권한대행’하던 총리마저도 국회가 탄핵 소추안을 통과시키면서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체제를 사상 처음 맞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같은 일련의 정치 사태는 우리의 외교를 상당히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올해 우리 외교는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오는 20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다. 한·미 동맹으로서 우리의 참석은 마땅하겠으나 초청 여부에 대해 국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올해는 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자 우리의 독립 8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오는 6월 20일은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다. 10년 전 수교 50주년 기념행사가 없었던 만큼 60주년 행사 준비에 우리 외교당국은 작년부터 준비해 왔다. 이마저도 진행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여기에 하반기 11월 즈음에는 경주 APEC 정상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이런 일련의 중요한 외교 행사를 목전에 둔 우리로서는 권력 공백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국내 정치 상황을 보는 외국의 눈에는 우리 외교가 풍전등화와 같이 위태롭게 보이는 건 당연지사일 것이다. 외국의 인식은 자금의 흐름에서 먼저 관측되고 있다. 우리 원화의 약세로 달러당 원화 환율은 1450원을 넘었다. 탄핵 가결 이후 연말까지 우리의 국채 13조원어치가 매도되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증시 또한 코스피 지수가 계엄령 발표 이후 2500선을 넘질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권력 공백의 비상 시국에서 우리의 외교가 비상하기 위해서는 일상에 전념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정부, 지도자, 정치에 대한 신뢰도(level of trust), 신임도(level of confidence), 신빙성(level of credibility)이 더 이상 나락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오히려 권력 공백기 동안 우리 외교를 자성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겠다. 국내 정치의 소용돌이에 매몰되어 그러한 시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한·일 관계에 대해 냉철하게 판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의 개선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통일을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출범 이후 한·일 관계는 전례에 거의 없는 수준으로 개선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 관계의 개선 동기와 목적에 동의하는 초당적인 인식이 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한·미·일 3국 관계에서 우리가 도태되지 않기 위한 전략 구상에 초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야당 대표도 이런 인식을 지난해 12월 26일 국회를 내방한 미즈시마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에게 처음 공개한 만큼 이를 견지해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이치 대사를 접견하는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 한·미·일 협력과 한·일 협력은 대한민국의 중대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가 2016년에 일본을 우리의 적성국, 2023년에 패악질로 묘사한 것에 비하면 인식의 전환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그의 최근 발언의 진정성이다. 그의 진정성은 앞으로 입증될 것이다. 중국에 ‘셰셰(감사)’해야 한다는 작년 3월 발언을 고려하면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외교적 수사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미국을 점령군, 일본을 패악질로 보는 그의 인식 전환이 사실이라면 1차 탄핵 소추안에서 “소위 가치 외교라는 미명하에 지정학적 균형을 도외시 한 채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된 인사를 정부 주요 직위에 임명하는 정책 등을 펼침으로써 동북아에서 고립을 자초하고 전쟁의 위기를 촉발해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 의무를 내팽개쳐 왔다”는 부분을 포함한 대목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한·일 관계 60주년 기념행사가 언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새로운 정부가 만약에 들어서도 이는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미·중 경쟁 시대에 반드시 견지되어야 할 우리의 외교적 요소가 한·미·일 3국 관계의 강화이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의 도태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 우리의 고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동맹과 우방을 멀리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심각하게 겪는, 일종의 ‘지는 해’인 중국에 밀착하는 전략 사고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둘째, 대미 관계에서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작년 11월 7일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와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에서 우리는 미국에 대해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직도 깨닫지 못한 면모를 또 한번 드러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우리 조선업과 협력하기를 원한다는 한마디에 온 국민, 전 나라가 조선업 분야 협력 강화에 또다시 매몰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초부터 올해 우리 경제 전망을 다루는 기사에서 대부분 분석가(애널리스트)들은 조선업을 주력 산업으로 꼽았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발언했기 때문이다. 정작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 희망 사안을 선제적으로 제안하지 못한 것에서 우리의 전략 사고의 부재가 드러난 셈이다.

반면 우리 기업은 미국 군함의 유지보수(maintenance), 수리(repair), 대정비(overhaul)하는 계약(MRO)를 작년 7월과 8월에 따냈다. 일본 역시 2024년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MRO에 합의했다. 미국 조선업이 이를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인프라에서부터 기술과 인력까지 부족하기 때문에 하청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이 이런 전략 사업에서 소통이 부재한 사실만이 역력히 드러난 대목이다. 우리와 일본 상황의 결과가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과 외국에서 미군함의 유지보수와 수리를 진행한다. 일본은 자국 내에서 이 사업을 진행한다. 우리 기업이 미국과 외국에 투자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은 자국 내에 시설 투자뿐 아니라 고용 창출의 효과도 보게 된다. 우리는 고용 창출의 효과도 없다. 그러면서 조선업의 활황으로 우리 경제의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반쪽짜리 효과를 기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일본에 비교하면 우리의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우리 기업과 사전에 치밀하게 협의하여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적으로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앞으로 트럼프 새 행정부는 미국의 세계 전략에 상당한 조정과 재조정을 할 것이 자명하다. 이에 대한 대비책을 출범 전에 수립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유럽은 EU 차원에서, 캐나다와 일본 등은 작년 초 또는 재작년 말부터 트럼프의 당선에 대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정부 차원에서 운영해 왔다. 우리는 그러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 않았다. 트럼프 새 행정부에 우리가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요구 사항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하겠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두 가지 사안에 함몰되어 있다.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지 않아 보인다. 핵무장 여론은 들끓고 있으나 정작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당위성이나 논리는 개발되고 있지 않다. 북한의 핵위협과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불신 등으로만 미국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이다.

이 두 가지 사안으로 우리가 미국에서 무엇을 얻어 낼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방위비 분담 인상 요구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응해야 한다. 방위비 분담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이나 축소 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미국이 특히 대중국 전략에서 동맹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인식을 초당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정학적 전략 가치를 고려하면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은 미국의 대중 압박·견제 전선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이를 놓고 우리는 강하게 대응해도 된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축소·감축하는 것은 미국의 전략에 막대한 손실만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 핵위협이나 미국의 핵억지력에 대한 우리의 불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핵무장은 자충수가 될 것이 자명하다. 우리는 이미 2023년 워싱턴 선언에서 한·미 원자력 합의서를 견지하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 이상 합의서에 대한 논의는 차단되었다. 우리의 핵 폐기물의 재처리 상황이 시급한데도 말이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종전에 이를 위한 노력이 수십 년간 추진되었지만 성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트럼프 당선자는 우리의 산업 전력의 저렴한 단가를 정부 보조금으로 간주할 기세다. 이에 우리는 반발해야 한다. 저렴한 단가의 수혜자에 세계 최대의 미군 해외 기지인 평택을 포함하여 200여 개의 주한미군기지가 포함된 사실로 말이다. 그러나 핵폐기물 재처리가 관철되지 못하면 주한미군기지도 이런 혜택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핵무장을 현시점에서 운운하는 것보다 더 시급한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주한미군기지를 활용한 우리의 전략 사고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이 이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대가의 가치를 말이다. 일본은 자위대와 미군 통합 운영의 명목으로 많은 것을 취득하는 중이다. 미 군함의 MRO뿐 아니라 미 군용기의 합작까지도 합의한 상황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다양한 기술 이전이 담보되어 있다. 그리고 2021년에는 희토류 합의서도 도출해 냈다. 우리의 계엄령이 발표된 날에 일본은 영국, 호주와 전투기 합작 생산 컨소시엄 출범을 발표했다. 첨단과학기술의 이전을 위한 일본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교훈 삼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대중국 관계에서 소통의 지속성 유지다. 우리의 대중국 외교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대가가 작년부터 그 가치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에서 고위급 회담의 재개가 속출되었다. 이러한 긍정적인 모멘텀을 권력 공백 상황에서도 유지··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이 우리에게 아쉬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의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고위급 회담을 유지할 수 있는 당위성이 확보된 셈이다. 이런 기회를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에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얻고 싶은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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