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새해 벽두에 정리정돈의 의미를 찾아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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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입력 2025-01-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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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2025년의 새해가 밝았다. 숫자 2025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연수 0부터 9까지를 모두 더하면 45가 되며 이 45를 거듭 곱하면 2025라는 숫자가 나온다. 45의 4와 5를 더하면 9가 된다. 2025의 숫자를 다 더해도 9가 된다. 9라는 숫자를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 경지의 완벽수로 본다면 2025년은 새로운 세계를 맞기 위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하는 그런 해가 아닐까 생각한다. 새해 들어 고작 3일이 지났지만 지난 2024년은 너무 다사다난했다. 세계도 우리나라도 좋지 않은 일이 많아 혼란스러웠고 불안했다. 2025년 새해는 뭔가 새롭고 신선하고 청명한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청소부 내가 만난 첫 사람 그는 세상을 쓸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를 씻겨준다는 사제보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활동가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을 수행하는 우리 사회의 필수 공익요원이다
[청소부, 내가 만난 첫 사람, 그는 세상을 쓸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를 씻겨준다는 사제보다, 사회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활동가보다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일을 수행하는 우리 사회의 필수 공익요원이다.]

이런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며 아침 출근 때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청소부였다. 그는 남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길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 놓는다. 청소는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얼마나 신성한 일인가. 그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때를 씻겨준다는 사제보다 더 현실적인 우리 사회의 필수 공익요원이다.

개인적으로 2025년의 연두 표어를 ‘정리정돈整理整頓’으로 정했다. 이제까지 뭔가 많은 것을 한 것 같은데 결실은 미미하고 남는 게 없고 보람도 적다. 생각해 보면 필요 없는 것, 쓸데없는 것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았다. 보다 더 나은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라도 정리와 정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정리’의 뜻은 일반적으로 버릴 것은 버리고 질서 있게 분류하여 필요한 것만 남기는 것을 말한다. 버린다는 것은 유형적인 물건의 폐기나 제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적인 인간관계에서의 정리, 즉 헤어짐도 포함한다. ‘정돈’은 정리한 것들을 깔끔하고 조화롭게 재배치하거나 조직화하는 것이다. 즉 목적과 종류에 따라 위치를 변경하여 쓰기 편하도록 적재적소에 재 배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건설현장에서도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정리정돈이 매우 중요하다. 자재가 널브러져 있고 전선이 꼬여 있는 곳에서 작업하면 주의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져 사고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정리정돈은 내 개인사만이 아니라 현장작업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 된다.

요즘 이런 덕목을 잘 지켜 자기 분야에서 어느정도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덕후라고 한다. 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오타쿠(お宅)에서 유래된 단어로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활동을 깊이 탐구하는 사람을 칭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타쿠라는 일본 발음을 한국에선 德厚라는 한자로 음차해 ‘덕이 깊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치환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덕을 동아시아에선 이상적 인간상에 이르게 하기 위한 금욕적 노력의 성과를 떠올리는 ‘옳은 삶’을 향한 자기극복의 노력으로 보는 반면 서구에선 덕을 인간을 행복에 이르게 하는 ‘좋은 삶’을 향한 자기실현의 노력으로 본다는 것이다.

문제는 ‘옳은 삶’이라는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덕을 쌓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다. 옳은 삶, 정의를 소리 높이 외치는 사람들일수록 일이 잘못되었을 때 죄책감 보다는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절대자나 자기 양심에 비추어 죄책감을 느끼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며 치부를 덮으려 든다는 것이다.

시골 건설현장에서 할석미장공으로 일하는 한 노동자가 국가와 세계를 걱정한다고 해서 얼마나 영향을 주겠으며, 사상과 철학을 논한다고 해서 그것이 얼마나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겠나 생각하면 나도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인간은 사회구조와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그 속에서 자아를 찾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 자신을 혁신하는 것이 사회 혁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번잡하게 늘어놓는 나의 생활스타일과 인간관계를 포함한 생활환경부터 정리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마감공정으로 전환되는 현장의 일을 위해서도 이제는 꼼꼼하게 일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整理整頓이라고 한자로 써보면 이 네 개의 한자어에는 엄청난 의미가 들어있다. 리理와 돈頓을 정整한다는 것이다. 유학의 이황과 이이의 이기논쟁과 불교의 지눌과 보우의 돈점논쟁을 정리하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이다.

조선 유학은 사실 이기논쟁이다. 주리론을 주장하는 이황은 리를 만물의 본질로 보고 리가 기를 통제한다고 주장하며 도덕교육과 사회윤리의 틀을 제공했다면, 주기론을 편 이이는 기를 만물의 작동원리로 보고 기가 발하고 이가 따른다고 주장하며 현실문제해결과 실천적이며 개혁적 정책제시를 우선했다. 리를 사단으로 보고 기를 칠정으로 보는 사단칠정론의 논쟁은 조선의 성리학을 교조주의에 빠뜨려 새로운 사상유입을 차단했다.

한편 돈점논쟁이란 돈오와 점수의 논쟁이다. 불교에선 돈오頓悟라는 부처가 되기 위해 진심(眞心)의 이치를 깨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데, 다만 수행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가, 마음의 이치를 먼저 밝혀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오랫동안 있어왔다. 보조국사 지눌은 깨달음 뒤에도 계속 수행이 필요하다고 설했고, 태고 보우는 한번 깨우치면 더 이상 닦을 게 없다고 했다. 깨우침이라는 것이 더 이상의 수행이 없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엄청난 불교와 유학의 중심적 내용이 정리정돈이라는 말에 융화되어 있는 이 정리정돈을 신년도 내 덕목으로 삼겠다고 하니 나도 보통 노동자는 아닌 것이 틀림없다.^^

각설하고 새해용 노트를 하나 준비했다. SNS를 통한 기록보다는 역시 종이에 직접 기록하는 것이 솔직하고 마음의 정리도 더 잘되겠다는 생각에서다.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다. 일일 계획- 실천- 결과- 반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일 활동 내용은 현장업무가 중심이 되지만 그 외에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운동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내 생활습관을 고치기로 했다.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를 생각한다. 그것을 어떤 마음 가짐으로 보낼지도 생각한다. 화장실 사용부터 바꾸었다. 여러 명이 사용하니 금새 더러워진다. 더럽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솔선해서 화장실 청소를 하기로 했다. 소변도 이제는 변기에 앉아서 하기로 했다. 앉아서 일을 보면 변기를 훨씬 깨끗하게 사용하게 된다. 출근은 차를 타지 않고 뛰어서 한다. 출퇴근을 뛰어서 하면 달리기를 따로 하지 않아도 된다. 그 시간에 독서 시간을 더 늘릴 수 있다. 식사전엔 감사기도를 하기로 했다. 감사히 먹으니 음식을 남기지 않게 되었다. 일을 끝내고 주변을 정리정돈을 하게 되니 일한 뿌듯함이 샘솟는다. 내 기술과 기능이 더 향상되는 거 같다. 짐에 돌아와서는 독서를 한다. 올해는 학위논문에 도전하는 만큼 노동환경과 안전에 관한 책을 더 읽게 된다. 주말에는 한 주를 돌아보며 반성의 시간을 가져본다. 그리고 개인적 성과를 체크해 본다.

앞으로 노동현장도 기술적 상상력을 갖춘 미학적 신체를 요구할 것이다. 인부들의 노령화 고령화는 노동의 정신화를 더 촉진할 것이다. 공부하지 않고 상상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1위가 되겠다는 서열화는 사라질 것이다. 노동의 유희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상상력은 생산력이 되고 기술은 예술이 되며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 그리고 인문학이 자유자재로 소통하고 융합되는 것이다. 그런 2025년이 되길 희망하며 나부터 정리정돈을 해보도자 한다.



이두수 작가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 노동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노동자의 인문학적 소양 계발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다양한 생활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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