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을 위헌·위법하다고 결론 내렸다. 애초 한국의 상황이 헌법상, 계엄법상 계엄을 선포할 수 있는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데다 "헌법상의 국민주권제도, 의회제도, 정당제도, 선거관리제도, 사법제도 등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려는 국헌문란의 목적"으로 계엄을 실시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살린 것은 불법 계엄을 막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간 시민들이었다. 정치인과 주요 인사를 감금하기 위해 출동한 ‘체포조’가 수백 명의 시민들에게 막혔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국회 바깥에서도 계엄군의 국회의사당 정문 봉쇄에 저항하며 맞섰다.
5일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공소장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당일 이 대표를 감금하기 위해 국군방첩사령부 수사단은 5명으로 구성된 체포조를 꾸렸다. 체포조는 방첩사에서 조직한 우 국회의장, 한 대표 등 정치인 체포조 10개팀 가운데 가장 먼저 꾸려져 국회로 출동했다. 이 대표가 체포 1순위였다는 의미다.
이후 김 전 장관은 국회의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가결이 임박하자,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이 대표·한 대표·우 국회의장 등 3명을 우선 체포할 것을 지시했다.
방첩사 체포조 49명은 명령을 받고 이날 0시48분부터 차례로 국회 인근에 도착했다. 하지만 국회에 모인 수많은 시민으로 인해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면서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지원인력 10명 등 경찰 50명에 합류하지 못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국회 주변에 모인 시민들과 국회 직원들로 인해 체포조가 국회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되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적었다.
국회의원 체포 명령도 있었다. 윤 대통령은 이진우 당시 수방사령관, 곽종근 당시 특수전사령관 등에게 “총을 쏴서라도 (국회의사당) 문 부수고 들어가 끌어내라”,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으니 빨리 국회 안으로 들어가 의사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했다.
"시민에게 공포탄·테이저건 쏘자" 건의
곽 특수전사령관은 시민들에게 '공포탄'과 '테이저건' 사용까지도 건의했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이를 거부해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계엄군은 이날 5만7735발에 달하는 실탄을 동원했다. 유혈사태도 불사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2차 계엄을 준비한 정황도 포착됐다. 윤 대통령은 4일 오전 1시쯤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뒤에도 해제를 발표하지 않고 오전 1시 16분부터 약 30분간 합동참모본부 지하 결심지원실에서 김 전 장관, 박 육군참모총장,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등과 회의했다.
이후 김 전 장관은 오전 2시 13분께 곽 전 사령관에게 '중앙선관위 병력 재투입'을 문의했다. 앞서 윤 대통령이 이 전 사령관에게 "(계엄) 해제됐다 해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령 선포하면 되니까 계속 (체포) 진행해"라고 명령한 사실을 고려하면, 계엄을 다시 선포하려 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국무위원들 "70년 대한민국 성취 무너뜨려"…尹 "나는 간다"
'12·3 비상계엄' 당일 국무위원들은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쌓은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경제가 아주 어려워진다"고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비상계엄 선포는 70년 동안 대한민국이 쌓은 성취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만류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와 국가 신인도에 치명적 영향을 준다"며 반발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난다. 국무회의 심의했고, 발표를 해야 하니 나는 간다"며 자리를 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를 '하자 있는 국무회의'로 정의했다. 그러면서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대통령의 일방적 통보만 있을 뿐, 실질적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국무회의록도 전혀 작성되지 않았다"고 적었다.
내란죄 구성요건인 국헌문란에 해당하는 국회 무력화 시도도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후 최상목 부총리에게 △국회 운용 자금의 완전 차단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 편성 등을 지시했다. 국회를 무력화한 뒤 기능을 대체할 입법기구 운영을 계획한 정황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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