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특례 등 상장 제도 완화로 더 많은 기업들이 증시에 들어왔지만 이후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불성실공시법인, 한계기업 수가 계속 증가하는 만큼 상장폐지 활성화와 함께 감독당국이 상장 전후 기업과 주관사에 대해 엄격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기업들은 금융당국과 거래소의 상장폐지 심사 기간 단축에 비상한 관심을 두고 있다. 금융당국이 상장 과정에서 공모가를 높여 받기 위해 매출 뻥튀기, 본업과 관계없는 산업군으로 상장 신청을 하는 사례 등도 폐지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학계는 상장 이후 아무도 회사를 감시 또는 관리감독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대주주 횡령·배임을 비롯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대주주가 사익을 챙기거나 주주들에게 알려야 할 정보를 감추는 불성실공시 법인 수가 크게 늘고 있다.
기업공시 KIND에 따르면 직전 3개년 불성실공시법인 추이를 보면 2022년 75건, 2023년 110건, 2024년 147건 등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에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회사는 6곳,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예고받은 회사는 5곳으로 집계됐다.
문제가 터지기 전 제재를 받지 않던 기업이 문제가 터진 뒤에도 개선 기간이라는 미명 아래 상장사 직위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계기업은 2018년 285개에서 지난해 467개로 63% 증가했다. 한계기업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을 말하는데, 금감원은 이 밖에도 여러 기준을 적용해 한계기업을 정의할 계획이다. 이들 한계기업에 대한 상장폐지 기간은 평균 4년에 달한다.
주어진 개선 기간에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단 상장폐지한 뒤 재상장을 유도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2023년 '기술성장기업 특례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파두는 상장 당시 1조원 넘는 몸값을 자랑하며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으나 이후 급감한 실적을 공시한 후 3일간 주가가 45% 급락했다. 파두가 제출한 증권신고서상 2023년 연간 매출액 자체 추정치는 1202억원에 달했으나 2분기(4∼6월) 매출은 5900만원, 3분기(7∼9월)는 3억2000만원에 그쳤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수사 결과 파두 경영진은 2022년 말경부터 주요 거래처의 발주 감소와 중단으로 향후 매출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상장예비심사 신청 직전인 2023년 2월 이런 사실을 숨긴 채 사전 자금조달(프리 IPO)을 통한 투자 유치로 보유 주식을 매도했다.
금감원은 파두 IPO 주관사 역시 자본시장법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심사 과정에서 매출 급감을 알았지만 감춘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고의로 매출을 속였다면 상장폐지도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의견이다.
2018년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한국유니온제약은 지난해 10월 11일 194억원4449만원 규모의 자기자본 64.11%에 달하는 임원의 횡령·배임을 공시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코스닥시장 상장규정에 의거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함에 따라 심사 대상으로 공시된 날부터 주권매매거래를 정지했다. 한국유니온제약 현 경영진은 양태현 전 사내이사 등 5명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했다. 양태현 전 사내이사도 지난달 최대주주인 백병하 대표이사 등을 횡령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대규모 횡령이 발생했고 전·현직 경영진이 소송을 남발하고 있지만 상장폐지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피 상장사인 KH필룩스는 지난해 1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보유 지분을 판 의혹으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KH필룩스는 2023년 4월 외부 감사인에게 감사의견 거절을 받고 상장폐지를 진행하던 중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매도했다.
금융위는 KH필룩스가 상장폐지 절차를 밟기 전 최대주주인 KH전자가 KH필룩스를 다량 매도한 정황을 포착했다.
이들 기업은 제각기 상장폐지 사유들을 갖고 있지만 실제 상장폐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학계는 상장폐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좀 더 명확하고 엄중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장폐지는 정치적인 문제, 주주 반발과 별개로 더 활성화돼야 한다”며 "당국과 거래소가 상장폐지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과감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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