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새해 들어 경쟁적으로 대출 빗장을 풀고 있다. 각 시중은행들은 잇달아 중단했던 대출 상품 판매를 재개하는 데 이어 가산금리 인하 카드도 6개월 만에 꺼내 들었다. 급격히 조였던 대출을 정상화하는 수순이라지만, 다른 은행과의 대출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에 서둘러 대출 문턱을 낮추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최근 가계대출 규제 방안을 빠르게 완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번 주 가계대출 상품의 가산금리를 최대 0.3%포인트(p) 낮춘다. 대출 증가세를 꺾기 위해 가산금리를 올린 지 6개월 만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7월 15일 은행채 3년·5년물 금리를 지표로 삼는 가계대출 상품 금리를 각각 0.05%p 올린 이후 계속 가산금리를 높여왔다.
신한에 이어 KB국민은행도 가산금리 인하 검토에 들어갔다. 양종희 KB금융그룹 회장은 앞서 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적절한 시점에 가산금리를 내리겠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들 역시 앞다퉈 가산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은행이 가산금리 인하에 나선 건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어서다. 지난 9일 기준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33조7690억원으로 지난해 말 734조1350억원 대비 3660억원 줄었다. 아직 1월 말까지 20여일이 남았지만,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2023년 3월 이후 8개월 만의 첫 감소가 된다.
지난해 폭증했던 가계대출이 줄며 급하게 조였던 규제를 정상화하는 수순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지난해 7월부터 5대 은행은 폭증한 가계대출 성장세를 둔화하고, 연말 가계대출 총량을 맞추기 위해 20차례 넘게 인위적으로 가산금리를 올린 바 있다. 이례적으로 비대면 대출 취급을 아예 중단하는 등 사실상 가계대출 문을 닫았다.
그러나 올해 각 은행의 가계대출 총량 목표치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규제 완화는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며 자영업자 연체율(1.70%)이 2015년 1분기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한편 지난해 3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90.8%로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이미 은행들은 대출 감소 전망에 그간 조여왔던 가계대출 규제 방안을 풀고 있다. 대부분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를 높이거나, 대면 상품 모기지 보험(MCI·MCG) 취급을 재개했다. 주택담보대출과 함께 가입하는 보험인 MCI·MCG가 없으면 소액 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받을 수 있다. 또 원금은 갚지 않고 이자만 내는 기간인 대출 거치기간을 다시 운영하고, 대면 주담대 갈아타기 취급을 재개했다. 비대면 주담대·신용대출 판매나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취급도 재개하며 가계대출 문턱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연초에 가계대출 총량이 갱신되면서 대출 공급에 여유가 생긴 것”이라며 “하지만 갑자기 공급을 확 풀게 되면 지난해 연말 같은 대출 한파 현상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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