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풍광과 웅장한 서사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게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은 1909년을 배경으로 독립군들의 처절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극장을 나선 관객들이 자주 언급하는 인물 중 하나는 독립군 '이창섭' 역의 배우 이동욱이었다.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연기 결과 다른 새로운 면면을 드러낸 그는 '하얼빈'의 장엄하고 묵직함에 스며들어 관객들의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을 얻고 있다.
아주경제는 영화 '하얼빈'의 400만 돌파를 앞두고 배우 이동욱과 만났다.
"요즘 극장 오시기 마음이 편하지 않으실 텐데. 관객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나머지 인사는 현빈이 드릴 거예요. 하하."
이동욱은 우민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화 '하얼빈'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관객들이 느낀 "낯선 면모"는 다분히 우 감독의 의도 아래 이루어졌다.
"우 감독님과 사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제가 출연한 작품을 거의 다 보았다는 거예요. 특히 '타인은 지옥이다'를 인상 깊게 보셨다고. 시나리오 이야기도 하셨는데 그게 '하얼빈'이었어요. '동욱 씨가 지금까지 대중에게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 될 거다. 하면 잘할 것 같다'는 거예요. 기대가 되더라고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 '이창섭'에게 큰 매력을 느꼈고요. '안중근'과 목표는 같지만, 다른 방식을 가진 그가 궁금해졌어요."
우 감독의 말대로 '이창섭'은 그동안 이동욱이 연기한 캐릭터들과 다른 결을 가졌다. 버석하게 마른 느낌의 '이창섭'은 투박하고 선이 굵은 인물. 이동욱은 "솔직히 디테일하게 준비한 건 아니라"며 감정에 충실하려고 했다고 부연했다.
"디테일보다는 이 영화의 무드에 묻어나도록 하려고 했어요. 이 안에서 할 수 있는 내 몫을 해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관객분들이 '새로운 모습'이라고 해주시니까 기쁘게 생각하고 있고요. '이동욱인 줄 몰랐다'는 반응이 오래도록 제게 남더라고요."
또 이동욱은 "해보지 않은 장르와 역할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며 오히려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어 기뻤다고 말했다.
"늘 도전하는 걸 좋아했어요. 새로운 캐릭터도 즐겨왔기 때문에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고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을 오롯히 표현할 수 있기만을 바랐어요."
대한의군 좌영을 맡아온 '이창섭'은 신아산 전투 이후 일본군 포로를 살려둔 '안중근'(현빈 분)에게 반감을 가진다. 그가 적군의 기습 전투 이후 살아 돌아오자 그를 밀정으로 의심하는 인물이다.
"'이창섭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정한 길이 맞으면 그대로 간다.' 제가 생각하는 '이창섭'의 이미지였습니다. 그 설정을 가지고 연기에 임했고요. 현장에 가면 자연스레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배우들과 앙상블이 저를 이끌어주기도 했어요."
이동욱은 우 감독이 생각하는 '이창섭'에 대한 이미지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감독님께서는 '이창섭'이 가벼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하셨어요. 노크 소리를 듣고 (일본군이라고 생각해서) 대치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 장면을 찍을 때 '우덕순'이란 걸 깨닫고 안도하는 모습에서 이동욱이 느껴진다며 '이창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었거든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맞는 말인 것 같더라고요."
이동욱은 "그동안 매체에서 다루지 않았던 안중근의 모습이 빛을 발하길 바랐다"며 자신이 맡은 바가 명확했다고 설명했다.
"이창섭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무력 투쟁을 해서라도 이겨야지'라는 입장이죠. 안중근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데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지 제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로 인해 안중근이 돋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이동욱은 '이창섭'의 최후 장면에 대한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안중근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고 그를 뒤쫓는 일본군 육군소좌, 모리 다쓰오에게 "안중근은 고결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언급하며 "죽음을 앞두고 완벽한 믿음"이라고 평했다.
"죽음도, 피해도 받지만 이 모든 게 독립을 완성하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거기까지 가는 길에서 누가 우리의 리더고 누가 우리를 잘 이끌 수 있을까? 이창섭은 안중근을 믿고 있어요. 친구로서, 생사를 함께한 동지로서요."
그는 안중근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같은 신뢰가 더욱 잘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그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었어요. 감독님께서 전날 급하게 만든 장면이었고 즉석에서 이뤄졌죠. 감정만 가지고 간 거예요. 그런데 그 씬 하나로 안중근, 이창섭의 전사가 잘 설명된 거 같아요. 얼마나 생과 사를 넘나들었고, 우정을 나누었으며, 서로에게 믿음이 있는지를요. 촬영할 때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앉았는데.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다 보니 울컥하더라고요. 현빈도 그랬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빈인가 한참을 아무 말도 안 하거든요. 그 무음의 공백이 많은 걸 이야기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 신은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이동욱은 연기파 배우들과의 협업을 언급,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여기 출연한 이유 중 하나가 출연진들이 꼭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거든요. 유재명 형, 조우진 형도 다시 만나고 싶었고요. 박정민은 개인적으로 굉장한 팬이었습니다. 함께 연기한다는 것이 기벘고요. (전)여빈 씨는 연기하는 걸 지켜보며 '참 지독하다'고 생각했어요. 본받아야 할 점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현)빈이도 참 궁금해했던 배우고요. 진중한 친구고 디테일을 잘 살리는 친구예요. 같이 연기하는 동료들에게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어요."
그는 그동안 '주연 배우'로서 짊어져야 할 것들을 덜어내다 보니 새로운 지점들을 깨닫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실 그동안은 거의 주인공 역할이었기 때문에 앞에서 끌어나가야 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하얼빈'은 한 발 뒤에서 보게 되니까 신선함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어느새 데뷔 26년 차. 이동욱은 "연기는 할수록 어렵고, 책임감은 커진다"며 자신이 쌓은 연기 신념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연기는 참···. 할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이제는 연기 안 한 날보다 한 날이 더 많은데요. 몸에는 환경에 대한 데이터가 많아졌는데도 할 때마다 '아, 그렇지…. 할 때마다 어려웠지' 깨달아요. '하얼빈' 뿐만아니라 작품을 함께 한 사람들이 어디 가서 창피하게 느껴지게끔 만들지 말자. 그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동욱은 "늘 현재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늘 마음에 되새기는 좌우명이라는 부연이었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의 영광이고 현재를 살아야죠. 현재를 살지 않으면 도태되니까요. 지금 세대는 어떻고, 지금 문화를 이끄는 사람들은 어떤 소비를 하는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알아야 해요. 물론 제가 그걸 이끄는 리더라면 좋겠지만, 제 주제에 그건 힘들 것 같고요. 하하. '현재'를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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