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 ‘구멍’ 메우기에 나섰다. 미국의 규제에도 첨단 반도체가 중국에 우회적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발생하자, 이를 완전히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15일(이하 현지시간) 14나노(nm·10억분의1m)·16나노 이하 공정으로 생산된 반도체를 중국에 판매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내놨다. 기존에 7나노 이하 공정만 통제했던 것에서 한층 더 강화한 것이다.
이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TSMC, 인텔, 글로벌파운드리 등 미 상무부가 승인한 반도체 기업 24곳으로 이들 기업이 고객사, 특히 중국 기업에 대한 실사(實査)와 감시를 강화하도록 해 첨단 반도체가 우회로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는 사례를 막는 것이 이번 규제안의 목적이라고 로이터 통신은 설명했다.
실제 작년 10월 화웨이의 인공지능(AI) 가속기 ‘어센드 910B’에 TSMC 칩이 사용된 게 확인됐고, 미국은 같은 해 11월에 TSMC에 AI 가속기와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사용되는 7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를 중국 고객사에 수출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바 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이날 성명을 통해 “새 규정은 중국과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법률을 우회해 가며 미국 국가안보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수출 통제안을 정밀화,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 상무부는 이날 소프고(Sophgo) 등 중국 기업 20여 곳도 엔티티 리스트(Entity List·거래제한 명단)에 추가했다. 소프고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 채굴 업체인 중국 비트메인의 계열사로 화웨이를 위해 TSMC 칩을 대리로 주문해 줬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작년 10월 화웨이의 어센드 910B에서 발견된 TSMC 칩이 소프트고가 주문한 것이라고 TSMC가 확인한 바 있다. 중국 AI 업계 신흥 강자로 꼽히는 유니콘 기업 즈푸AI(智譜AI)도 제재 명단에 올랐다. 즈푸AI는 알리바바·텐센트 등 중국 ‘IT공룡’들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아울러 이번 규제안에는 AI 프로세서용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사용되는 D램에 대한 추가 통제 조치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중국 최대 메모리반도체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로이터는 짚었다.
앞서 미 상무부는 지난 13일에는 국가를 ‘동맹국-중간국-우려국’으로 나눠 각 그룹에 수출할 수 있는 AI 기술·반도체의 한도를 설정하는 수출 통제 조치를 내놨다. 임기 동안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계속해서 강화해 온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이 임박해 오자 규제 보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미 상무부는 이날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쓰는 특정 장비를 수출할 경우 정부 허가를 받도록 하는 수출 통제 규정도 발표했다. 군사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생명공학 기술이 중국 등 우려 국가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번 수출통제는 바로 적용된다. 다만 한국은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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