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밸류업 정책의 일환으로 기업공개(IPO)·상장폐지 제도를 개편안을 두고 일부 우량한 상장사도 시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와 함께 IPO 시장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은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IPO 및 상장폐지 제도 개선 공동 세미나'를 열고 IPO 제도 및 상장폐지 제도 방안을 발표했다.
IPO 제도개선 방안에는 기관투자자 대상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제도 도입, 참여자격 요건 강화 등이 담겼다. 오는 7월부터 기관 배정 물량 30%, 내년부터 40% 이상을 의무보유 확약 기관에 우선 배정한다. 의무보유 확약 최대 가점 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한다.
4월부터 수요예측 참여 기관의 의무보유 확약 위반, 미청약·미납입 등에 대한 협회차원의 제재는 10~20%의 예외를 제외한 대다수 사례에 대해 참여제한이 부과되도록 운영한다.
이와 함께 기준이 과도하게 낮아 지난 10년간 발생 사례가 없었던 재무적 상장폐지 요건을 강화한다. 내년부터 2029년까지 단계별로 상장 유지를 위해 충족해야 하는 기업의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을 높인다.
우선 상장 유지를 위한 시가총액을 내년 코스피 200억원, 코스닥 150억원으로 높이기 시작해 2028년까지 코스피는 현행 10배인 500억원, 코스닥은 7.5배인 300억원으로 확대한다.
"주관사 부담 확대에 IPO 위축 가능성…일부 우량기업 피해 우려도"
이날 세미나에서는 제도 개선안 발표와 함께 패널토론도 진행됐다. 정부 및 유관기관, 학계·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유승창 KB증권 본부장은 "의무보유 확약이 늘게 되면 상장 초기 유통 물량이 굉장히 적어질 수 있다"며 "현재 상장 첫날 가격제한폭이 400%인 상황에서 주가 변동성을 키우는 건 IPO 참여자들의 물량도 있지만, 차익을 노린 투기성 투자자의 영향도 크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관사 부담이 커지고 이에 따른 IPO시장 위축 가능성도 제기됐다. 유 본부장은 "시장 분위기에 따라 의무보유확약 비율이 자연스럽게 낮아질 수 있는데 주관사 부담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그렇게 되면 주관사는 보수적으로 IPO를 진행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IPO 감소가 모험자본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홍성관 라이프자산운용 부사장은 "이번 개선으로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도 "중소형 자산운용사나 새롭게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곳은 어느 정도 위축될 수 있는 환경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장기업 측은 양호한 기업임에도 시총 기준에 못 미쳐 퇴출되는 것은 막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준만 코스닥협회 상무는 "코스닥시장 건전화 해서 코스닥시장이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했다"면서 "다만 코스닥 상장폐지 시총 기준이 발표되면 시총 300억원대 기업은 퇴출 리스크로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 상무는 "한 코스닥 상장사는 매출이 3년 간 700억원대, 당기순이익은 60억원대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장의 관심을 받지 못해 시총은 300억원 아래에 있기도 하다"며 "정상적이고 잠재력 있는 회사가 이의 신청 없이 바로 퇴출될 수 있다. 시총 기준을 일부 낮추거나 시총 미달로 상폐되는 경우에는 이의 신청 기회를 부여해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유관기관 "우려 이해하지만 개선된 제도 정착이 우선"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은 업계에서 나온 우려에 공감하면서도 제도가 안착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선 왜곡됐던 시장을 정상화하기 위해 개선된 관행이 자리 잡는다면 이후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이 역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정형규 금융투자협회 상무는 "유통 물량이 부족하면 불공정거래가 있을 수 있지 않느냐는 우려가 있을 수 있지만 두 가지를 같이 잡는 건 쉽지 않다"며 "이번 개선안은 IPO만큼은 제대로 해서 시장 투명성을 높이고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통물량이 적어 불공정거래 행위가 발생한다면 거래소나 금감원의 시장 감시를 통해 대응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고승범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증권사의 우려도 알지만 투자자 측과 증권사 측의 입장이 다르다"며 "단기적으로 부담이 있겠지만 개선된 제도가 정착해서 관행화 된다면 향후에는 좀 더 유연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과장은 "상폐 제도와 관련해서는 기준이라는 게 있다 보니 불가피하게 억울한 기업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상장기업이라면 기업가치 제고(밸류업)와 마찬가지로 적극적인 IR 등 해야할 노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통주식수 제한으로 상장 초기 가격 변동성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다. 앞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면서 "미국 나스닥에는 상장 당일 일정 시간 시초가를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변동성을 최대한 줄여 매매거래가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있는데, 현 개선안을 시행한 후 문제가 나타난다면 제도적 보완장치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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