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1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멕시코·캐나다 등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관세 전쟁 사정권에 들었다. 이 두 나라는 북미를 겨냥한 한국 기업들의 제품 생산 기지로 삼성전자, LG전자, 기아, 포스코 등 다수 기업이 진출해 있다. 주요 기업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강도 높게 진행된 대중 무역 제재를 피하고자 미국과 무관세 협정을 맺은 멕시코나 캐나다 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해온 상황이어서 국내 산업에 작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현재 기아는 멕시코 북부 몬터레이 생산공장에서 K3와 K4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생산량 90% 이상이 미국과 캐나다로 간다. 그동안에는 저렴한 멕시코 인건비로 자동차를 생산해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했지만 25% 관세를 맞으면 이 구조가 불가능해진다. 증권업계는 멕시코 25% 관세가 현실화되면 기아가 추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연간 3조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무관세로 수출되던 지역에 세금 25%가 붙으면 사실상 미국 수출은 포기해야 된다"면서 "북미 자동차 공급망 전체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미국과 중남미 수출 전초 기지로 멕시코를 활용해왔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티후아나 가전 생산공장에서 TV, 냉장고, 오븐 등을 만들어 북미로 수출한다. LG전자도 레이노사, 몬테레이, 라모스 등에서 각각 TV, 냉장고, 전장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전자업계는 일단 멕시코의 북미 물량 수출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한 뒤 상황을 지켜본다는 방침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가전은 부품부터 조립까지 글로벌 공급망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면서 "정부 간 협상 결과를 보고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미국 기업과 합작 형태로 배터리 공장을 추진해온 LG에너지솔루션,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비엠 등 국내 이차전지 기업도 영향권에 들었다. 포스코퓨처엠은 GM과 합작사 얼티엄캠을 설립해 캐나다 퀘백주에 연산 3만톤 규모로 양극재 공장을 준비 중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양극재는 LG에너지솔루션과 GM 합작사인 얼티엄셀즈에 공급하기로 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포스코퓨처엠측은 이미 납품 물량이 정해져 있는 만큼 캐나다와 미국 간 협의 결과를 지켜본 뒤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에코프로비엠도 캐나다 퀘백주에 연산 4만5000톤 규모 양극재 공장을 짓고 있다. 당초 양산 시점은 2026년이었지만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에코프로비엠 역시 공장 완공까진 시간이 아직 많이 남은 만큼 추후 트럼프 행정부의 실제 움직임을 지켜보며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 포스코,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LG이노텍 등도 각각 멕시코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이번 관세 정책이 미칠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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