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연휴인 춘제(春節·설)를 앞두고 올해 중국에서는 텐센트를 중심으로 한 대형 기술기업(빅테크)들 간 ‘파란봉투(藍包·란바오)’ 전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텐센트 전자상거래 ‘신무기’는 파란봉투
텐센트 산하 중국의 국민 모바일메신저 웨이신(微信·위챗)이 지난달 ‘란바오’라는 명칭으로 ‘선물하기’ 기능을 내놓았다. 10년 전인 2014년 춘제 연휴를 앞두고 위챗이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디지털 세뱃돈 송금 기능을 ‘훙바오(빨간봉투)’라고 이름 붙인 연장선상에서 란바오라고 한 것이다.
란바오는 한국 모바일메신저 카카오톡의 선물하기처럼 발송자가 상품을 골라 결제를 완료하면 수신자가 선물 수락 후 24시간 이내 주소를 입력하면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상품 주문 1개당 친구 1명에게만 선물을 보낼 수 있다. 다만 1만 위안(약 196만원) 이하 상품만 가능하며, 보석과 학습프로그램은 선물하기 대상에서 제외된다.
텐센트는 지난달 란바오 기능 테스트 버전을 처음 출시해 16일부터 공식적으로 위챗 채팅 툴바에 란바오 기능을 추가했다. 중국 재경망에 따르면 중국 최대 커피 전문점 체인인 루이싱커피가 지난해 12월 30일 선보인 19.9위안짜리 생코코넛 라떼는 위챗 란바오 기능을 통해 2주 만에 주문량이 무려 2만6000잔에 달했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최근 중국 경기 불황 속 전자상거래 시장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란바오 기능이 중국 내 13억 이용자를 보유한 위챗의 최신 무기가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12월 란바오 테스트 버전만 선보였는데도 증시에서 선물하기 테마주는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홍콩거래소에서 위챗 미니프로그램 개발사 ‘웨이몹(微盟)’ 주가는 6거래일 동안 120% 가까이 폭등했다.
텐센트는 웨이신즈푸(위챗페이)를 내세워 알리바바의 알리페이(즈푸바오)가 주도하는 중국 모바일결제 시장에서 영토를 대폭 확장해왔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중국 모바일결제시장에서 위챗페이는 시장 점유율 37%로 알리페이(55%)와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 분야만큼은 알리바바, 핀둬둬, 징둥 등 다른 빅테크에 훨씬 뒤처졌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8월에도 텐센트는 위챗 기반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름을 ‘위챗상점(微信小店·웨이신샤오뎬)’으로 바꾸고 고객서비스 지원을 향상시켰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위챗상점이 여전히 다른 전자상거래와 비교해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해왔다. 무엇보다 중국인들이 위챗상점보다는 타오바오나 핀둬둬 같은 다른 온라인쇼핑몰에서 상품을 구매하는 게 익숙해진 데다 위챗 상점에 입주한 브랜드와 판매자가 다른 플랫폼보다 상대적으로 다양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란바오 기능이 앞으로 위챗 플랫폼의 온라인쇼핑을 한층 더 활성화시킬지 기대가 커지는 모습이다.
위챗상점에 입주한 한 상인은 “위챗의 장점은 강력한 사회적 사교 활동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위챗 이용자들이 지인에게 훙바오 기능을 통해 디지털 세뱃돈을 보내는 것처럼 란바오 기능에 익숙해지면 이는 상인들에게 필수적인 상품 판매 채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왕핑보 베이징 보퉁 컨설팅 애널리스트는 AP통신에 “란바오는 선물하기와 온라인쇼핑 결제를 통합한 것으로, 결제 행위에 사회적·감정적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위챗 이용자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로써 위챗페이 시장 점유율이 더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위챗페이 입지가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팡정증권은 란바오가 훙바오와 마찬가지로 춘제 연휴와 겹쳐 온라인에서 선물하기 유행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시증권은 춘제 연휴 위챗의 란바오를 통한 거래액(GMV)이 100억 위안(약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타오바오·징둥도···빅테크 ‘란바오 대전’ 펼쳐질까
위챗이 지난달 란바오 테스트 버전을 출시한 이후 징둥, 타오바오, 더우인 등 다른 전자상거래 플랫폼들도 잇달아 선물하기 기능을 선보이며 치열한 격전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징둥닷컴도 선물하기 기능을 출시했는데, 상품 1개 품목당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선물하는 ‘그룹 선물하기’ 기능을 추가한 게 란바오와의 차별점이다. 타오바오도 지난 8일 선물하기 기능을 출시했으며, 자사 플랫폼에서 파는 모든 제품을 선물하기 대상에 포함시켰고 가격 상한선도 없앴다.
이에 따라 올해 춘제 연휴 빅테크들 간 선물하기 전쟁으로 ‘제2의 훙바오 전쟁’이 펼쳐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나온다. 위챗페이는 한때 중국 최대 모바일결제 플랫폼 알리페이보다 뒤늦게 모바일결제 사업에 뛰어든 후발 주자였지만 2014년 춘제 연휴를 앞두고 선보인 훙바오 기능이 대박을 터뜨리며 알리페이를 따라잡았다.
같은 해 춘제 연휴 기간 800만명 이상이 훙바오 기능을 사용해 4000만개가 넘는 디지털 세뱃돈을 뿌렸으며 그 덕분에 춘제 연휴 이틀 만에 위챗페이 가입자는 2억명으로 급증했다. 알리페이가 8년간 쌓은 가입자 수를 단 이틀 만에 확보한 것이다. 당시 위챗페이 훙바오가 인기를 끌자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가 “진주만 공습을 당했다”고 원통해 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다만 일각에선 올해 춘제 때 선물하기 수요가 ‘반짝’ 늘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생활에서 선물하기 기능을 사람들이 얼마나 이용할지가 관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중국 경제 불황 속에 소비 회복세가 더딘 만큼 선물하기 이용 빈도가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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