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 is Back(“미국이 다시 돌아왔다”)’, 트럼프 2기 취임 제일성이다. 인플레이션 종식 및 생활비 인하·미국 노동자를 위한 감세· 국경 안전 강화·‘힘을 통한 평화’ 복원·에너지 패권·미국의 도시를 다시 안전하게 만들기 등 우선 추진할 6개 정책 의제를 공식 발표했다. 철저하게 미국 우선주의(MAGA)에서 기초한 발상이다. 중국 등 미국의 잠재 위협 세력의 힘을 무력화시켜 일극(一極) 패권주의를 지향하고 동시에 진영으로 나누어진 미국 내 여론을 하나로 모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이 지나치게 좌측으로 치우쳐 보편적 상식과 괴리됨으로 인해 합리적 중도 세력의 지지가 이탈하여 결국 트럼프의 귀환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운 것은 역시 대외 통상정책이다. 바이든 정권과의 차별성을 언급하면서 힘과 속도를 강조했다.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면 강력하게 밀어붙일 태세다. 관세에 더해 밖에 나가 있는 수천 개의 미국 공장이 다시 귀환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는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무역 패권으로 연결한다. 친환경으로 인해 허물어진 제조업의 재건을 위해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 패권 쟁취에 열을 올린다. 또한 브릭스(BRICS) 국가들의 무역 결제 수단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동통화 개발 움직임 견제를 위해 100% 관세 부과로 달러 패권을 지키고자 한다. 이외에도 최근 파나마 운하·그린란드 이슈 제기를 통한 물류 패권, 중국 해군력 압도를 위한 해상 패권 등 5대 패권을 노린다.
각국의 이해가 민감하게 걸려 있는 관세 부과 부문에 대해선 다소 시차를 두고 구체적인 조치가 단계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멕시코·캐나다 등 집중 견제 국가와 그 외 모든 국가로 구분할 것인지를 두고 내부적으로 신중한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격적 관세 부과에 따른 물가 자극 등 부작용 등 우려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이유이다. 이에 따라 특정 국가에 대한 일률적 고관세 부과보다는 미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글로벌 공급망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특정 품목 및 공급 국가를 대상으로 한 차별적 관세로 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국가에 피해가 가는 것이 아니고 국가별로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유의해야 할 것은 바이든 정권과의 차별성이다. 관세 폭탄과 감세를 통해 제조업의 미국 투자를 유도한다. 국내에서의 투자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 여기에 말려들 공산이 크다. 또한 상대와의 협상에서는 동맹 혹은 비동맹 구분 없이 힘을 바탕으로 당근과 채찍을 던지면서 미국에 유리한 쪽으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이미 중국의 시진핑과 러시아의 푸틴과의 대화를 서두르고 있다. 러시아와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빌미로 푸틴의 입지를 살려주면서 중국과의 경쟁을 부추기는 지렛대로 삼으려 할 것이다. 냉전 시대에 중국을 끌어내어 구소련의 붕괴를 당겼듯이 작금의 신냉전 시대에 중국의 위협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러시아를 이용하는 양면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힘을 바탕으로 당근과 채찍을 마구 흔들어대는 트럼프 전술에 올라타야
트럼프가 재점화시킨 국익 경쟁에 직면한 각국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중국은 먼저 자국 공기업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의 脫중국 저지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 당국은 관련 기관과 지방 정부에 중국 내 기업의 기술·장비·인력의 해외 송출 제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 제철의 US 스틸 인수에 제동이 걸려 한 방 먹은 일본은 트럼프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면서도 중국과는 정부 간 대화 물꼬를 트면서 국익 사수에 배수의 진을 치는 모습이다. 유럽과 남미는 사분오열이다. 보수 우파 정권 국가는 트럼프에 밀착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중도좌파 정권 국가들은 일단 주류에서 배제되는 분위기다. 프랑스·독일·영국 등 미국의 전통적 우방 정상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트럼프 귀환을 바라보는 한국의 현실은 암담하다. 거의 무방비로 위기에 노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무슨 조치를 하더라도 고스란히 수용하거나, 이를 거부하면 벼랑 끝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이다. 미시적인 조치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거대한 산을 넘을 수 없다. 정치판은 권력 쟁취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전투구로 국가를 계속 거꾸로 돌린다. 오직 진영 이익에만 눈이 멀어 국익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정부는 마비되고, 입법 독주 기관차를 굴리고 있는 야당이 내린 민생 정책이라곤 고작 지역화폐로 전 국민 25만 원 지급 추진이다. 대선(大選)을 염두에 둔 표심 겨냥에만 혈안이다. 심지어 여당은 이마저도 없어 국가의 미래와 관련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한국 기업의 시계가 제로다. 투자는 고사하고 트럼프발(發) 유탄이 어디까지 튈지 전전긍긍한다. 연초부터 수출이 감소 추세로 돌아서고 무역적자는 늘어나고 있다. 트럼프의 보편 관세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한국 경제의 젖줄인 수출이 휘청한다. 얼어붙은 기업의 사기를 돌려놓을 반전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위기만 있지 않고 기회가 있는데도 패배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악재는 어떻게 대처하고 호재는 어떻게 극대화할지에 대한 전략이 전혀 없어 보인다. 트럼프 정권의 조선, 원전, 태양광 등 한국 제조업에 대한 구애가 쇄도한다. 이어 더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의 위치를 약화하고 다변화하는 데도 한국 제조업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기회는 왔을 때 단번에 낚아채야 한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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