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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의 100투더퓨처] '파브르 곤충기'에 담긴 초고령사회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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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입력 2025-02-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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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연초부터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고 온 매스컴이 요란하게 떠들고 있다. 초고령사회라는 이미지는 사람들이 오래 살아서 더 좋아진다는 기대보다 오래 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형편이 되었다. 특히 오래 살게 되면 몸과 마음이 노쇠하여 스스로 살아가기가 어려워지고 남에게 신세를 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현장에서 한국의 백세인 연구를 하면서 만나본 상당수 초고령자들은 예상과 달리 훨씬 건강하고 활발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온전하게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여야겠다고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늙음의 거룩함마저 느끼게 된다. 수많은 분들 중에서 팔십이 넘은 나이에 젊은 학자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에 도전하여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낸 특별한 사례가 있어 소개한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세 명이 하나의 팀을 이루어 이루어낸 업적은 초고령사회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내 서재에는 오랫동안 5권으로 된 완역본 ‘파브르 곤충기’(탐구당, 1999)가 놓여 있다. ‘파브르 곤충기’는 초등학교시절부터 익히 들어왔던 서적이었고 곤충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더불어 아름다운 문장으로 유명한 책이라고 알려져 언젠가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프랑스 원본을 직접 완역해낸 노(老)불문학자들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기증받게 되었다. 귀한 책을 받아 바로 완독을 해보려고 작심하였지만 계속해서 읽지 못하고 틈틈이 읽어 온 지 어언 이십 년째가 되었지만 아직도 끝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모든 문장이 너무도 섬세하고 아름다워 도저히 듬성듬성 넘어갈 수 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읽고 있는 내가 내용이 궁금하여 서두르지 않기로 하였기 때문이다.

‘파브르 곤충기’는 부제를 ‘곤충의 본능과 습성에 관한 연구’라고 달고 총 10권으로 나누어 저술한 대작이다. 장 앙리 파브르(1823~1915)가 남프랑스 농촌 지역에 살면서 섬세한 관찰로 곤충의 세계를 정밀하게 조사하여 기록한 이 책은 그의 나이 50세에 시작하여 84세에 완성한 책으로 90세에 이르기까지 출판을 거듭하였다. 이 책을 위해 40년에 걸쳐 노력하여 매듭을 지었다는 점에서도 그 집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곤충기에는 왕쇠똥구리부터 시작하여 벌레광우리, 비단벌레사냥노래기벌, 노랑날개조롱박별, 쇠털나나니, 사무라이개미, 가위벌붙이, 구멍벌, 유럽진흙벌, 금풍뎅이, 소똥풍뎅이, 거지사마귀, 송장벌레, 귀뚜라미, 메뚜기, 조롱박먼지벌, 노린재, 금파리, 곰바구미, 주머니나방, 개거미, 라비린트거미, 클로토거미, 깍지벌레, 파리구더기의 기생충 등과 버섯 등을 관찰하여 그 본능과 생태를 너무도 세밀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그의 곤충기는 단순한 과학적 관찰기록물이 아니라 문학적 측면에서도 예술성이 인정되어 나폴레옹 3세에게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한 작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책이 일역 또는 영역된 책에서 중역하여 그것도 축약판 정도로만 소개되었을 뿐이었다. 이에 ‘파브르 곤충기’의 아름다운 문장에 감동한 불문학자 세 분이 작심하여 이 책을 제대로 번역하여 소개하여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서 10년 넘게 걸려 완역해 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 세 분이 모두 팔십이 넘은 초고령의 연세로 예상을 초월하는 나이여서 필자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고령 노학자들이 합심하여 끈질지게 노력하여 집념으로 번역해 내었다.

그분들 중 안응렬 교수님은 1911년생으로 일찍이 가톨릭대를 졸업하여 이미 1937년에 프랑스대사관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후 외국어 대학에 계시다 은퇴하였다. 유명한 ‘팡세’ ‘어린 왕자’도 이분이 번역한 작품이다. 그리고 이가형 교수님은 1921년생으로 동경제대 불문과를 나오시고 학병으로 끌려가는 고초를 겪고 돌아와 중앙대와 국민대에서 근무하셨다. 특히 앙드레 말로의 ‘희망’을 번역하여 소개하셨다. 또한 이근배 교수님은 1914년생으로 평양의전을 나와 나가사키대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 생화학계를 이끌어 오셨다.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 고전인 G. 바사리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1568)’ 9권을 완역해 낸 분이다. 이 세 분은 모두 불문학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만나 서로 논의하다가 ‘파브르 곤충기’가 과학성과 예술성이 합치된 명저로 이 책을 번역하여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는 데 뜻을 같이하였다. 그리고 이분들은 중역에 의한 오역을 피하고 제대로 번역하여 널리 알리고자 직접 원본에서 직역으로 완역하자는 데 공감하여 원대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러고 나서 10년이 지난 1999년에 드디어 이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분들 나이를 살펴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안응렬 교수 89세, 이가형 교수 80세, 이근베 교수 86세였다. 세 분의 나이를 합치면 255세였고 평균연령이 85세였다. 벌써 사반세기 전 20세기 말에 팔십이 넘은 세 분의 불문학도가 의기투합하여 총 10권의 ‘파브르 곤충기’를 직역하여 완성하였다는 점은 출판계에도 전에 없는 일이지만 특히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노인의 능력과 역할을 검토하는 측면에서 단연 특출한 귀감이 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더욱 파브르가 이 책을 완성한 나이와 이 책을 번역한 세 분의 평균나이가 동일하다는 점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평균나이 85세에 ‘파브르 곤충기’를 완역해 낸 업적을 새기면서 이분들이 합작으로 번역해낸 10권의 곤충기를 읽어나갈 때면 책에 서술된 내용의 과학성과 예술성에도 감탄하지만 이를 40년에 걸쳐 완성해낸 앙리 파브르는 물론이고 이를 10년 넘게 걸려 완전하게 번역해낸 평균연령 85세의 노불문학자들의 집념에 옷깃을 여미며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포기하거나 기권하지 않고, 나이 들면 들수록 지난해에 못하였던 일을 해내고 지난해에 몰랐던 지식을 더 습득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 고령사회가 걱정이 되고 두려울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왕성한 활동을 하는 고령인을 소개할 때는 주로 일본이나 구미 국가 사례들 위주였지만 이제 우리 주변에도 연령의 한계를 잊고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 K-시니어들이 늘어나고 있어 미래 고령사회가 두렵지 않게 된다.



필자 박상철 주요 이력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국제백신연구소한국후원회 회장 ▷전남대 연구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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