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송혜교·전여빈 '검은 수녀들', 익숙함을 비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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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5-01-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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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사진NEW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사진=NEW)

이제 문화·예술계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나기란 어렵다. 아무리 혜성같이 등장하고 보는 이들을 충격에 빠트린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근간을 살펴보면 '원형'이 있고 아주 익숙한 지점들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그 '원형'을 어떻게 비틀어 낯선 형태로 보이게끔 하느냐의 싸움이다. 같은 재료로 어떻게 더욱 새롭고 감각적으로 느껴지게 하느냐. 창작자들의 고민이 여느 때보다 깊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영화 '검은 수녀들'(감독 권혁재)은 이미 태생부터 새롭지 않은 작품이다. 지난 2015년 개봉해 국내 영화계 오컬트 장르를 정착하게 만든 '검은 사제들'의 스핀오프작이기 때문이다. 현대로 '오컬트 장르'를 끌고 오는 형식이나 '구마 사제'라는 소재 그리고 '악마와의 대결 구도' 등은 앞선 '검은 사제'가 충분히 보여주었으니. '검은 수녀들'이 장르성이나 소재 면에서 '새로움'을 보여주기에는 이미 한계가 보인다.

그러나 '검은 수녀들'은 영리하게 이같은 우려와 편견을 깨나간다. 때로는 유연하게 피하고, 때로는 정면 돌파하며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를 확보한다. 여성 캐릭터를 필두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배치하여 익숙했던 것들을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게끔 만든다. '검은 사제들'과는 다른 길. '검은 수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신개지'를 개척해냈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사진NEW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사진=NEW]

악령에 의해 정신과 육체가 짓눌리는 어린 소년 '희준(문우진 분)'. 여러 사제가 구마 의식에 나서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검은 수녀로 불리는 '유니아'(송혜교 분) 수녀는 '희준'의 구마 의식을 지켜보며, 그의 몸에 깃든 악령이 12형상 중 하나임을 깨닫는다.

'유니아'는 긴급히 구마 의식을 요청하지만, 주교는 그가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임을 강조하며 직접 구마 의식을 치를 수 없다고 말한다. '유니아'는 '희준'을 살리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한다.

그러나 '희준'의 담당의 '바오로'(이진욱 분) 신부도 '유니아'의 기행을 탐탁지 않아 한다. 그는 구마 의식을 믿지 않고 오직 의학만이 '희준'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오로' 신부가 구마 의식을 부정하자 '유니아'는 '바오로' 신부의 제자인 '미카엘라'(전여빈 분) 수녀에게 도움을 청한다. '미카엘라'는 '유니아'에게 반발심을 느끼지만 그의 간절함에 동조하기 시작하고 함께 '희준'을 구하기로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두 수녀는 소년을 살리기 위해 금기를 깨기로 한다.

'검은 수녀들'은 '검은 사제들'과 세계관을 공유하는데 이 연결고리를 찾아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장미십자회에서 일련 번호를 붙인 사령인 '12형상'이나 구마에 성공한 소녀 '영신'(박소담 분), '유니아'와 '김범신' 신부(김윤석 분)의 관계성, '최준호 아가토'(강동원 분) 등 전작의 팬들이라면 눈과 귀가 번쩍 뜨일만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검은 수녀들'의 진짜 재미는 '검은 사제들'을 비틀어 완전히 새로운 걸 내놓을 때다.

'검은 수녀들'이 정통성을 비트는 데는 두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 큰 힘을 발휘한다. 삐딱하고 시니컬한 성격의 수녀 '유니아'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는 '미카엘라'는 남자 캐릭터로 본다면 익숙할 수 있는 캐릭터 설정이지만 성별을 치환해 볼 때 더욱 새롭고 극적인 요소가 생겨난다. 캐릭터의 외형이나 성격 등도 여성 캐릭터가 맡으며 새로워지는 요소가 있다.

또 남성 사제만이 서품을 받을 수 있고, 서품을 받은 자만이 구마할 수 있다는 카톨릭 교리를 통해 '유니아' '미카엘라'가 겪는 위기를 극적이면서도 공감할 수 있게끔 만든다. 선을 위해 금기를 깨는 이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강한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낸다. 다른 성격의 두 수녀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연대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공감과 지지를 얻으면서 장르적인 재미도 챙길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사진NEW
영화 '검은 수녀들' 스틸컷 [사진=NEW]

아쉬운 점은 영화의 동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영화 초중반 '유니아'와 '미카엘라'가 다져놓은 캐릭터성과 서사가 영화 후반에 들어 들쭉날쭉해지더니 맥을 못 추고 만다. 담백하고 세련되게 묘사되던 '미카엘라'의 감정선은 폭주하고 '성별'을 비틀어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던 '유니아'는 악령 퇴치 과정에서 '여성성'을 너무나 전형적으로 쓴다. 신성한 '여성'과 '잉태' 그리고 물과 불의 이미지가 앞서 보여주던 세련미를 퇴색하게 한다.

아쉬움이 남더라도 영화 '검은 수녀들'이 보여준 성과는 유의미하다. 성별을 비튼 캐릭터들의 활약과 이들이 보이지 않는 벽을 깨고 나아가는 모습, 연대가 주는 힘이 짜릿하다.

무엇보다 배우 송혜교, 전여빈이 보여준 연기력과 호흡은 오래 회자할 만하다. '더 글로리'에 이어 '검은 수녀들'까지 연기 경력 28년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얼굴을 꺼내는 송혜교는 그야말로 거침이 없다. 삐딱하게 담배를 무는 '유니아'의 얼굴과 몸짓에 서사를 부여하는 송혜교는 아직도 그의 '다음'이 궁금하게끔 한다. 지난해 '하얼빈'에 이어 '검은 수녀들'로 관객과 만나게 된 전여빈 역시 믿음직하다. 영리한 배우답게 캐릭터 너머까지 살피고 인물의 공백을 완전하게 채워낸다. 왜 그가 요즘 가장 '핫'한지,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얼굴들도 눈에 띈다. '검은 사제들' 박소담이 관객들의 눈길을 끌었듯 이번 작품에서는 '희준' 역의 문우진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를 '아역 배우'라고 부르기 멋쩍을 정도.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또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 반열에 오른 김국희와 영화 '애비규환' '정직한 후보' 등에 출연한 신재휘의 활약도 매력적이다. 영화 개봉 후 관객들의 관심을 받을 만한 인물들이다. 오는 24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14분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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