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예산안을 놓고 서울 서대문구와 서대문구의회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준예산 체제로 새해를 맞은 서대문구는 노인일자리 등 민생과 직결되는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고 있다. 구와 구의회 간 다툼에 주민 피해만 가중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24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서대문구는 지난 15일 진행 예정이던 노인일자리 사업 발표와 일자리 교육 일정 등을 취소했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당장 다음 달 1일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다.
예정됐던 노인일자리 사업 발표가 취소되자 구민 민원이 크게 늘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이미 지난해 선정을 마쳤다. 서대문구청 여자농구단은 해체 위기에 몰렸다. 농구단 운영비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감독과 선수 인건비 지급이 어려워졌다.
이처럼 서대문구 사업에 차질이 생긴 건 예산안 통과 과정에서 구와 구의회가 충돌했기 때문이다.
구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구의원이 다수인 구의회에서 올해 예산을 기습 처리했다고 밝혔다. 구의회가 통과시킨 예산안에는 구청 농구단 운영비, 카페폭보 한류문화체험관 조성 사업비 등 6개 사업 예산을 삭감하는 내용이 담겼다. 구는 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준예산 체제'에 들어갔다.
준예산 체제는 회계연도 개시 때까지 의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경우 전년도 최종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 예산을 뜻한다. 서대문구 한 관계자는 “준예산 체제는 예산을 긴급 수혈해 사실상 최소한의 비용을 집행토록 하는 것”이라며 “올해 예정된 사업들 진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구와 구의회는 준예산 체제에도 불구하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구는 민주당 소속 구의원들이 날치기 통과시킨 수정예산안은 적법하지 않고 여소야대 상황에서 다수당의 폭거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소속 한 구의원은 “예산안을 수정하면 예산결산특별위에서 다시 심사해야 하는데 기습적으로 수정안을 통과시킨 건 조례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소속 구의원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소속 한 구의원은 “수정예산안은 당론에 따라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한 것일 뿐”이라며 “지난 연말 본회의를 거쳐 적법하게 예산안을 통과시켰고 오히려 구가 본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의회를 마비시키려 했다”고 맞받아쳤다.
예산안을 둘러싼 대립이 장기화하면 결국 피해는 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에 구는 20일 '지자체장 선결처분'을 통해 노인일자리, 보훈예우수당, 학교급식 등 25개 사업에 298억원을 우선 집행키로 했다.
이성헌 구청장은 "준예산 체제로 불가피하게 민생과 직결된 사업이 중단 또는 지연돼 구민 생계와 안전, 지역경제에 심각한 피해가 우려된다. 4700여명이 참여하는 노인일자리 사업, 380명을 대상으로 하는 동행일자리 사업이 중단됐다"며 "학교 급식 등 각종 교육 경비와 보훈예우수당, 장애인지원 보조금도 집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구의 준예산 체제와 관련해 ‘법령 위반 소지가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구의회가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했기 때문에 준예산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다만 지방자치 도입 취지에 따라 부적정 예산이 집행돼도 정부가 제재할 수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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