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주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Can South Korea’s democracy survive)?”
미국의 국제정치 전문 격월간지 포린 어페어즈 1월 27일자 최신호는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미국 사립 존 캐벗(Cabot) 대학 존 딜러리(Delury) 교수의 글을 실었다. 연세대에서도 강의한 일이 있는 딜러리 교수의 글에 포린 어페어즈는 “이 나라에는 단순한 위기관리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개혁(Bottom-up Reform)이 필요하다”는 부제를 달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한국이 겪고 있는 정치·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위기관리를 넘어선, 보다 근본적인 개혁을 해야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있다는, 우리 국민들에게는 다소 고까운 부제를 달았다.
딜러리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12월 3일 한밤의 쇼킹한 TV 연설을 통해 선포한 비상계엄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었으며, 윤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한국을 군사통치 아래에 놓겠다는 선언이었다”고 보았다. 윤은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키고,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정지시키려 했으며, 군부 지도자들에게 야당인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를 문 닫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썼다. 그리고 경찰과 특전사를 보내 국회의원들의 의사당 진입을 막았다고 했다.
딜러리 교수는 윤 대통령이 이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치의 헌법학자였던 칼 슈미트(Carl Schmitt · 1888~1985)의 ‘예외 상태(state of exception)’ 이론을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한밤의 비상계엄 선포 포고문에서 “자유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저는 이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딜러리 교수는 전했다. 윤 대통령은 실제로 한밤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민의 자유와 안전, 그리고 국가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며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계엄 선포로 인해 자유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믿고 따라주신 선량한 국민 여러분께 다소의 불편이 있겠지만 이러한 불편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딜러리 교수에 따르면 윤의 이 같은 논리 전개가 바로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이론, 예외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주권이며, 예외의 정상화를 집행할 수 있는 사람이 국가의 최고 권력자라는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딜러리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더 큰 권력을 확보하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중요하며, 이에 관해서는 서울대 국제대학원 에릭 모브랜드(Mobrand) 교수가 쓴 <위로부터의 한국 민주주의(Top-Down Democracy in South Korea)>가 참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에릭 모브랜드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한국의 엘리트들은 정치적 위기가 지나가면 민초(grassroot)들의 영향력을 제한해왔는데, 이제는 선거 과정이나 정당 시스템에 광범위한 민초들의 참여가 가능하도록 하는 개혁이 필요하며, 법률규정은 줄여야 한다고 딜러리 교수는 권고했다.
1987년 10월 29일 마지막으로 개정한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前文)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임시 의정원을 창설하고 의정원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임시정부 교통총장을 지낸 신석우(1895~1953) 선생이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고 제안해서 조직의 이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정해졌고, 이에 따라 1948년 수립된 정부도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상하이 임정 수립 당시 프랑스 조계(租界)에 위치해서, 일본과 중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던 마당(馬當)로 뒷골목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물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두 나라 정부의 협조 아래 잘 보존돼왔다. 지금은 중국공산당 제1차 당대회 개최 기념 건물이 가까이 있고, 중국 젊은이들에게 인기 높은 신톈디(新天地) 패션타운이 가까이에 있는, 지하철역 역세권에 위치해있다. 상하이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도 벌써 100년하고도 5년이 지났다. 그런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탈리아에 있는 서양 교수 딜러리가 이러쿵 저러쿵 하는 데 대해서 우리로서는 마음이 불편하다.
상하이 임정은 수립 13년 만인 1932년 4월 29일 임정 소속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시내 훙커우(虹口) 공원에서 열린 일본 천황 생일 기념행사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요시노리 육군대장과 가와바다 데이지 상하이 거류민단 단장을 죽게 하고, 일본 육군 제9사단 사단장 우에다 켄키치 중장과 주중 일본공사 시게마쓰 마모루에게 다리를 절단하는 부상을 입혔다. 이 의거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해를 떠나 항저우(杭州)를 거쳐 쓰촨(四川)성 충칭(重慶)까지 옮겨다니는 고생을 했지만, 당시 상하이에서 지하활동 중이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鄧小平)과 중국공산당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상하이 임정의 활동을 알리게 돼 임정의 이전과 충칭 정착에 중국공산당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임정이 수립되기 10년 전인 1909년 10월 26일에는 안중근(1879~1910)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러시아와 회담을 하기 위해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를 총살하는 의거에 성공했다. 이토는 일본 메이지(明治) 유신 유공자로, 초대 내각총리를 지냈으며 1895년 청일전쟁 승리를 마무리하는 시모노세키 조약과, 1905년 러·일 전쟁 종전조약 서명 당사자였다. 일본제국 헌법과 일본정치의 내각제 확립에 큰 역할을 한 이토는 이후 제5대, 제7대, 제10대 내각 총리를 지냈고, 초대 조선총독부 통감을 역임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것은 이토가 일본의 조선 병합 주동자였고, 초대 조선총독부 통감을 지내며 조선에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조선인들에게 고통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안 의사가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밝혔다는 기록이 있다. 안 의사는 체포된 후 직업을 묻자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05년 이토는 조선 왕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해서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는 주동자 역할을 맡아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대한의군의 제1 제거목표가 됐다. 당시를 묘사한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는 “내가 조선통감을 하는 동안 조선 경제를 얼마나 발전시켰는데 그걸 모르는 조선인들이 나를 죽이려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조선의 왕이나 지도층들은 실제로 조선인들에게 아무것도 베푼 게 없는데 조선 의병들은 나를 제거하려 한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이토의 말은 고증된 것이 아닐 수도 있으나, 우리 민중들의 이토에 대한 생각을 대변하는 말일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시내 한 개봉관에서 개봉된 영화 하얼빈에는 출연진이 무대에 나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기획이 있었다. 여기에 나온 한 출연진은 “안중근 의사가 어떻게 해서 되찾은 나라인데 요즘 우리 정치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해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2월 12일 자신이 계엄을 선포한 이유를 설명하는 3차 담화를 하면서 “지금 거대 야당은 국가 안보와 사회 안전까지 위협하고 있다…예를 들어 중국인 3명이 드론을 띄워 부산항에 정박 중이던 미 항공모함을 촬영하려다 적발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들 스마트폰과 노트북에서는 최소 2년 이상 한국 군사시설들을 촬영한 사진들이 발견됐지만 외국인 간첩들을 간첩죄로 처벌할 길이 없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이 내정문제를 중국 관련 요인과 연관지어 이른바 ‘중국 간첩’이라는 누명을 꾸며내고, 정상적 경제 무역협력에 먹칠하는 데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밝힌 중국 관련 내용이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한 국가의 대권을 쥐고 있던 대통령이 자신의 계엄을 정당화 하기 위해 외교적으로 민감한 내용까지 무책임하게 공개해서 상대방 외교부 대변인이 항의를 제기한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권을 쥐고 있던 대통령 자신이 해결 못한 일을 야당의 책임으로 떠넘기려고 언급을 한 것은 우리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독립투사들,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총살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윤봉길 의사의 살신(殺身)정신에 비추어보면 윤 대통령의 모습은 한없이 초라하다. 계엄을 선포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체면을 내던지고 몸부림치는, 참으로 부끄러운 대통령의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윤 대통령에게는 영화 하얼빈 한 출연진의 말 “우리나라가 어떻게 국권을 되찾아 지켜온 나라인데…”라는 말을 직접 들려주고 싶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현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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