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뿌리를 되찾다…'경복궁 선원전 편액'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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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5-02-0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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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유청,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라이엇게임즈 후원 통해 환수

  • 역대 왕들의 어진 봉안하던 경복궁 선원전 편액으로 추정

  • 궁궐 내 위계 높은 현판 양식 보여주는 문화유산

경복궁 선원전 편액 정면 사진국가유산청
경복궁 선원전 편액 정면 [사진=국가유산청]

일본에 있던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이 귀환했다.

국가유산청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국외재단)과 함께 일본에 있던 '경복궁 선원전(璿源殿) 편액'의 정보를 입수해 문헌 조사, 전문가들의 평가와 직접 조사하는 실견을 거친 끝에 지난 해 2월 라이엇게임즈 후원을 받아 국내로 환수하는 데 성공했다.

국유청은 그 실물을 오는 2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에 최초로 공개하기로 했다. 
 
국가유산청이 국외재단과 함께 소장자 측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끝에 국내로 무사히 들여올 수 있었다. 
  
‘선원(璿源)’은 ‘옥의 근원’이란 뜻으로 중국의 역사서 '구당서(舊唐書, 중국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에서 왕실을 옥으로 비유한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왕실의 유구한 뿌리’를 의미한다. 선원전은 조선시대 궁궐 내에서 역대 왕들의 어진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편액은 종이, 비단, 널빤지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였다. 

조선은 충과 효를 통치체제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역대 왕의 어진을 봉안하고 왕이 친히 분향, 참배 등의 의례를 행하는 선원전은 궁궐 내에서도 위계가 높은 전각이었다. 
 
조선 왕실의 선원전은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있었다. 임금이 이어(移御, 거처하는 곳을 옮김)할 때는 역대 왕들의 어진도 함께 옮겨야 했기 때문에 여러 궁에 선원전을 두게 된 것이다. 
  
조선 왕실의 최초 선원전은 1444년 창건된 경복궁 선원전으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이후 100여 년 동안 궁궐 안에 선원전을 건립하지 못하다가 1695년에 이르러 창덕궁에 선원전을 마련하고 어진을 봉안한 것이 지금의 (구)선원전이다. 고종 때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선원전의 기능도 경복궁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에 따르면 1865년부터 경복궁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1868년 경복궁에 선원전이 재건되었다. 
 
구름 모양 봉 조각상_좌 사진국가유산청
구름 모양 봉 조각(상_좌) [사진=국가유산청]


1897년부터 고종이 경운궁에 머무르자 경운궁에도 선원전이 세워졌다. 고종이 경복궁에 머물 땐 경복궁으로, 창덕궁에 머물 땐 창덕궁으로 어진도 따라 옮겨졌다. 이에 대한제국기에는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 3곳의 선원전이 모두 그 기능을 담당하였다. 

한편, 경복궁 선원전은 일제강점기에 훼철되어 박문사(博文寺,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절)를 짓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현재는 창덕궁에만 두 곳의 선원전이 남아있다.
 
이번에 환수된 유물은 각 궁궐에서의 선원전 건립 및 소실과 관련된 정황과 관련 문헌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재건(1868년)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으로 추정된다. 

'승정원일기'(1867년, 고종 4년)에 따르면 ‘재건(1868년) 경복궁 선원전’ 편액의 글씨를 쓴 서사관(書寫官)은 서승보(徐承輔)로 기록되어 있는데, 환수 유물 글씨의 필획과 결구 등 서체 특성상 서승보의 글씨로 추정된다.
 
조선 왕실의 궁궐 건물은 역할과 성격에 따라 위계에 차등이 있었다. 왕과 왕비 등이 사용하는 ‘전(殿)’이 가장 격식이 높았으며, ‘당(堂)’, ‘합(閤)’․‘각(閣)’, ‘헌(軒)’, ‘루(樓)’, ‘실(室)’ 등이 뒤를 따른다. 

이번에 환수한 유물은 가장 위계가 높은 건물인 ‘전(殿)’에 걸렸던 편액으로 바탕판은 옻칠(흑칠)을 하였고,글씨는 금을 사용한 금자(金字)이며, 테두리를 연장한 봉은 구름무늬를 조각하여 격식이 높은 현판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선원전이라는 전각의 위계에 맞게 네 변의 테두리를 둘렀으며 테두리에는 부채, 보자기 등의 칠보(七寶) 문양을 그려 길상(吉祥)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언론에 최초 공개된 이후 왕실 관련 유물을 소관하고 있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체계적으로 관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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