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증(査證)이라고도 부르는 비자(visa)의 어원은 라틴어 ‘Charta Visa’에서 비롯된 것으로, ‘살펴본 서류나 문서’라는 의미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철도교통의 발달로 국가 간 이동이 빈번해짐에 따라 비자 제도가 생겨났으니 그 역사가 짧지는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순한 출입국 목적에서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그 비자의 종류도 단기상용, 단기취업과 같은 단기비자에서 유학, 연수, 기업투자, 무역경영, 방문동거, 거주, 동반, 관광취업과 같은 장기비자, 그리고 농·어번기에 일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외국인 계절 근로자 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지난 2024년 법무부는 체류 외국인 300만명 시대를 대비하는 신(新)출입국 이민정책추진방안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는 톱티어(Top-Tier) 비자, 청년드림 비자(Youth’s Dream in Korea Visa)를 신설하고 지역특화형 비자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다루고 있다. 점점 더 비자의 종류도 다양해지는 추세이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노마드 비자(digital nomad visa)’라는 것도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노마드’는 ‘디지털(digital)’과 ‘노마드(nomad)’의 합성어이다. 원래 ‘노마드’는 유목민이라는 뜻이다. 유목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물과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방랑하면서 일시적으로 한곳에 머물면서 소나 양과 같은 가축을 키우는 일이다. 유목민들은 머물던 곳에 가축들이 먹을 풀이 다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또 이동한다. 유목민들이 물과 풀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듯이 ‘디지털 노마드’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서 한 장소에 머물지 않고 전 세계를 떠돌면서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IT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컨설턴트, 작가, 번역가와 같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디지털 노마드’가 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굳이 업무가 회사 사무실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글로벌 비즈니스도 이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들고 집에서 일을 하거나 카페에서 일을 하는 국내파 ‘디지털 노마드’가 있고, 자유자재로 국경을 넘나들면서 일을 하는 해외파 ‘디지털 노마드’가 있다.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숫자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를 ‘디지털 노마드’로 간주할지 그 범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수는 3000만 내지 4000만명 정도라고 한다.
글로벌화와 정보화가 더 진화하면 진화하지 퇴보할 일은 없을 것이고, ‘YOLO(you only live once)’의 두문자어(頭文字語)인 ‘욜로’족들도 더 늘면 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해외파 ‘디지털 노마드’도 더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도 관광산업 및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해 해외의 원격근무자들이 관광을 하면서 한국에 장기체류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2024년 1월 1일 도입하여 시범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빠르게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한 국가에 속하는 것 같다.
현재 ‘디지털 노마드’와 국내 취업과는 그 경계가 분명하지만 ‘디지털 노마드’의 다양한 활동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국내 기업들과 접촉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이다. IT, 디자인, 마케팅 등 지식 기반 산업에서 숙련된 외국인 인력이 국내에 유입됨에 따라 국내 기업들과 협업해 혁신을 촉진하고, 해외의 선진 기술이 국내에 도입될 기회가 커진다. 굳이 선진국 출신이 아니어도 개인 역량이 우수하면 무방하다. 많은 ‘디지털 노마드’들이 국내에 장기 체류를 하게 되면 의식주 소비활동을 하고 덩달아 식당, 카페, 시장, 숙박, 관광업 등 관련 산업이 활성화된다. 지방 도시들이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이들을 유치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된다. 국내에 들어온 ‘디지털 노마드’들이 외국인이다 보니 이들이 국내 기업과 조인해서 국내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촉진하기도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많이 가는 나라들이 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이다. 2025년 1월부터 뉴질랜드는 자국의 관광산업을 위해 최대 9개월간 체류 자격을 부여하는 '디지털 노마드 비자 제도’를 도입하였다. 관광대국이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민천국인 뉴질랜드도 이렇게 입국자들의 유치에 나섰다. 이민천국이라는 뉴질랜드로 많은 외국인들이 이민가기를 원하기도 하지만 또 그 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민을 가는 사람도 많고, 오는 사람도 많다. 오늘날 기업과 개인들은 국가를 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모두 각자 사정이 있고, 선택과 희망대로 살아 가는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내놓은 자료에 의하면 ‘디지털 노마드’들이 목적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생활비, 교통인프라, 교통비, 기후와 공기, 인터넷 속도, 치안, 공무원의 부패지수, 외국인 커뮤니티와 밤 문화의 유무, 문화와 건축양식, 다양한 식문화 등 10개를 꼽았다. 한국의 교통비와 교통인프라, 인터넷 속도와 치안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기타 기준들도 결코 ‘디지털 노마드’들이 선택하기에 나쁘지는 않다.
이참에 ‘디지털 노마드 비자’도 적극적으로 확대해서 외국 기업에 소속된 외국인들이 한국에 일단 발을 들이고 나서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이주를 하거나 장기 거주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다만 ‘디지털 노마드’의 확대로 궁극적으로 국내 근로자의 보호, 국가 간 이중과세 등 여러 가지 노동법과 세법 문제 등이 있을 수 있다. ‘디지털 노마드’와 관련되는 하드웨어적인 그리고 소프트웨어적인 다양한 문제점을 예측하고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서 이들이 선호하는 ‘디지털 노마드’ 목적지로 국내 도시들, 특히 지방 도시들을 제공하자. ‘꿩 잡는 것이 매’이다. 많이 오면 많이 머물 가능성이 크다. ‘코리안 드림’도 이룬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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