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의 나라' 베트남이 자동차 판매가 꾸준히 늘면서 동남아시아의 주요 자동차 시장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다양한 전기 및 하이브리드 차종이 출시되면서 차량의 '전기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인 현대차와 기아차는 투자를 늘리고, 공급망을 다각화하며 베트남 자동차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베트남은 자동차 산업 협력을 확대할 수 있고,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윈윈'의 기회이다.
베트남 자동차 시장, 동남아 시장의 희망
베트남 자동차 판매는 지난 10년간 연 평균 11%에 달하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2024년에 베트남 자동차 시장 총 판매량은 49만4310대로 전년 대비 22%나 증가했다. 이는 2024년 초반 시장이 상당히 침체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인상적인 결과다. 전문가들은 경제가 점차 안정되면서 구매력이 증가했고, 베트남 정부가 차량 등록 수수료를 50%까지 인하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1000명당 자동차 보유대수도 약 63대로 10년 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 이는 중산층의 성장과 자동차를 예전처럼 사치품으로만 여기지 않고 필수적인 교통수단으로 보는 추세를 보여준다. 모델 별로는 미쓰비시 엑스팬더, 도요타 벨로즈, 현대 엑센트, 크레타 등이 종종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베트남 자동차 산업에 대한 한국의 투자 흐름도 확대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생산시설 건설을 넘어 기술이전과 인력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팜민찐 베트남 총리와의 회동에서 베트남에서의 사업 확대와 기술이전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이는 베트남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베트남의 국산화율을 높이고 기업을 부품 공급망에 연결하는 데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베트남은 비교적 안정적인 거시경제, 큰 국내 수요, 친환경 교통수단을 개발할 수 있는 많은 기회 덕분에 점차 동남아시아 내 '떠오르는 자동차 시장'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이 여전히 동남아 자동차 산업 지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제조업체는 베트남을 중요한 선택지로 보고 다각화를 이루어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자 하고 있다.
전기화 추세
특히 베트남 시장에서 주목할 부분은 베트남 전기차 브랜드인 빈패스트의 등장으로 '전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작년 빈패스트는 초기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은 8만7000대 이상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에 베트남은 내연 자동차를 넘어 전기차의 주요 시장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빈패스트는 베트남 하띤에 두 번째 공장을 짓기 시작했으며, 국내외 시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대용량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빈패스트는 대부분의 지방과 도시에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다른 민간 기관이 참여하면 배터리 충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더 완벽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 정부 역시 오토바이 매연으로 인한 환경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가운데 2022년부터 3년간 배터리 구동 전기 자동차에 대한 등록 수수료를 100% 면제하는 등의 '전기화' 과정을 강력히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베트남에서 전기차 산업 발전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여러 해외 자동차업체들 역시 베트남을 유망한 전기차 시장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 2기를 맞아 미·중 간 무역 충돌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베트남은 해외 기업들에게 유망한 공급망 확대 요충지 중 한 곳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현대·기아차가 베트남으로 공급망을 확대해 “최악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환기의 과제
하지만 베트남 자동차 산업은 엄청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산업 전반, 그중에서도 전기차 부문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첫째로 공급망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많은 중요 부품을 수입해야 하므로, 무역 변동이 발생할 경우 비용이 증가할 위험이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업체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면 베트남에 더 많은 투자를 해서 고품질 부품 생태계를 조성해야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충전 인프라 부족 문제도 있다. 빈패스트가 적극적으로 충전소를 늘리고 있지만, 전국의 공공 충전소 수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이에 전기차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토지기금, 투자자본, 부과기준 등의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의 지원 정책이 포괄적이지 않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등록 인센티브를 거의 받지 못하고, 전기차에 대한 특별 소비세 혜택도 제한적이다. 인센티브 기간이 끝난 후에도 가격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면 전기차 매력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전기차 부품에 대한 우대 수입세 등 더 개방적인 메커니즘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값싼 수입차로 인한 경쟁 압박도 과제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우대 세율을 적용하는 일련의 자동차 모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중 많은 전기차는 눈길을 끄는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베트남 시장을 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기차 산업에 필요한 숙련 인력도 제한적이라는 문제가 있다. 이와 관련해 팜민찐 총리는 한국 기업이 기술이전과 교육에 있어 베트남과 협력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꾸준한 자동차 시장 성장세와 자동차 전기화 흐름 속에 '오토바이의 나라'를 넘어 '자동차의 나라' 나아가 '전기차의 나라'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는 한국 기업, 특히 현대·기아차가 베트남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중국 공급망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물론 베트남은 국내 부품 공급망, 충전 인프라 등 측면에서 여러 과제를 안고 있지만 자동차 시장 전망이 유망한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기술과 베트남의 투자 유치 정책이 결합된다면 양측 모두에 이익을 보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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