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10/11/20241011142158914420.jpg)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최근 돌아가는 세계를 보면 마치 미국과 중국, 양자만의 거대한 체스판 같이 움직이는 듯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소프트파워 등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나라들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초라해지고 있는 현상이 뚜렷하다. 트럼프 2기의 시작으로 향후 4년간 미·중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우열의 향방이 어느 쪽으로 더 기울 수 있을 것인가가 주목된다. 첨단 기술을 포함한 제조업 경쟁과 글로벌 공급망 흔들기에 더해 상대의 글로벌 영향력을 흠집 내기 위한 정면 승부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강력한 정공 드라이브에 중국이 다양한 우회 전술로 대응을 하면서 전선을 무력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시진핑, 두 스트롱맨 중 누가 승기를 잡을지 아직은 미궁이다.
트럼프 정권은 취임 벽두부터 예고한 대로 관세 폭탄 방아쇠를 당겼다.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앞에 우방도 적도, 심지어 이웃도 없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25% 관세 부과가 한 달 잠정 연기되었고, 중국에 대한 10% 추가 관세는 양국 간 대화 진전에 따라 같은 트랙을 탈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어 EU와 미국의 이익에 민감한 반도체·자동차·철강·가전 등 특정 품목으로 옮겨붙을 공산이 크다. 작년 미국 기준 8위 무역적자 대상국인 한국의 입장도 녹록지 않다. 언제 발등에 불똥이 튈지 모르는 불안감으로 숨을 죽이고 있다. 다른 어떤 경쟁국보다 수출 의존도와 대외 제조업 전진기지가 많기 때문이다. 향후 전개 추이에 대해 촉각이 곤두세워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읽어보면 잡히는 것이 있다. 트럼프가 강공이 상대를 단순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고 고도의 노림수가 보인다. 수입 상품 관세 인상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충분히 간파하면서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 다각적인 포석을 깔고 있다. 관세는 협박용이고 이를 통해 상대 길들이기를 한다. 미국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멕시코와 캐나다 경유 중국산 펜타닐 유입 경로와 불법 이민 차단이 일차 목적이다. 이어 멕시코와 캐나다를 우회 생산기지로 활용하고 있는 한국·일본·중국 기업에 경고장을 던지면서 미국으로의 생산 시설 이전을 종용한다. 이 지역에 진출해 있는 한국 대기업 법인이 무려 200개가 넘는다. 중국에는 10% 추가 관세 부과를 통해 향후 본격적인 협상 고지에서 우월적인 지위 확보를 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美·中과 다른 국가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공산 커
중국은 미국과 정면 승부는 최대한 회피하면서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특히 아직 확실한 글로벌 1등이 없는 미래 첨단 기술 분야에 국가적 총력을 기울여 단번에 상대를 제압하는 ‘우월적 선도자’전략에 올인한다. AI나 양자 컴퓨팅·로봇·바이오 등에 전력 질주한다. 한편으론 한국이나 일본 등 만만한 상대가 우위를 보이는 자동차·조선·가전·석유화학·철강·콘텐츠 등의 분야는 집중적인 투자와 막대한 내수 시장을 배경으로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으로 해외시장까지 장악, 1등 고지에 오르고 있다. 미국 빅테크 대비 10%의 비용을 고성능 인공지능(AI) ‘딥시크(DeepSeek)’를 발표해 세계를 경악게 했다. 이런 AI 스타트업이 중국 내에 무려 4,000개가 넘는다고 하니 미·중 AI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한발 앞서갈 수도 있다는 예측이 그리 낯설지 않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AI 판세까지 흔들고 있다.
중국은 AI 등의 분야에 국가가 사활을 걸고 총력을 경주한다. AI로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 수학한 해외 인재들이 대거 중국으로 끌어오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과학기술 인재들이 국내를 외면하고 해외로만 나가려고 하는 한국과는 지극히 대조적이다. 앞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하는 중국의 기술 굴기(崛起)가 계속해서 나온다고 해도 전혀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다. 중국의 거대한 부상을 미국 홀로 막아내기는 역부족이고, 오히려 중국에 끌려갈 공산이 크다. 이런 분위기에서 민간 레벨에서 한·미·일 AI 동맹이 구축되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중국은 오픈 소스 AI 모델의 글로벌 확산을 주도하면서 AI 패권에서만큼은 미국을 따돌리겠다는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왜 지구촌에 미국과 중국은 크게 보이는데 유럽이나 일본, 한국 등의 위상은 쪼그라들기만 하나. 답은 명쾌하다. 혁신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에서 앞서간다는 자만에 빠져 미래 산업 생태계 조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는 정부 부문의 비효율성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쪽은 첨단 디지털로 질주하는데 다른 쪽은 여전히 과거의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다. 이 상태로는 격차는 더 벌어지기 마련이며, 벌어진 간격을 메울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잘 보이지 않는다. 갈 길이 바쁜데 한국의 국가 AI 위원회는 아직 홈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남들은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열을 올리는데 의대 광풍의 딴 세계를 산다. 방향키를 잘못 잡은 국가의 전형적인 모습이 나라 밖이 아닌 안에 있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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