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동궁과 월지 조사구역 건물배치 추정도 사진국가유산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06/20250206174020278365.jpg)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던 1300년 전 가을날, 태자는 작은 상아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면서 동궁을 거닐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높이 보이는 왕궁을 바라보고, 선조들의 염원을 담아 계속 이어 나가는 신라의 밝은 미래를 아마도 꿈꾸고 있었을 것입니다."
신라 왕궁의 비밀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 스튜디오 159에서 열린 ‘국가유산청이 새로 쓰는 신라사’ 언론 공개회에서 이처럼 말하며 “(신라 역사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경주 동궁과 월지 조사구역 구획도 및 발굴조사 유구 배치도 사진국가유산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06/20250206173920663580.jpg)
국가유산청은 이날 신라 왕궁 ‘월성’과 ‘동궁과 월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월지 동편에서 신라 태자가 기거하던 ‘진짜 동궁’을 찾았다고 알렸다. 신라 왕궁에 대한 비밀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과학적 증거에 기반해 동궁과 월지에 대한 인식을 대전환해야 한다는 게 국가유산청의 인식이다.
그동안에는 월지의 서편에 있는 대형 건물지(Ⅰ-가지구, A건물지)를 동궁으로 봤다. 그러나 이 건물지는 주변보다 높게 조성된 대지 위에 위치하는 등 동궁으로 확정 짓기 어려워, 학계에서 이견이 상당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발굴 조사를 통해서 월지 동편(Ⅱ-나지구)이 동궁이라는 새로운 사실과 그 근거를 공개했다. '진짜 동궁'은 별도의 원지(정원안의 못)와 생활공간을 갖춘 완전히 독립적인 영역이었다. Ⅱ-나지구 건물지는 정면 5칸(25m)×측면 4칸(21.9m)으로 136평 정도의 대지에 조성됐다. 복도식 건물에 둘러싸인 건물지와 그 앞에 펼쳐진 넓은 마당시설, 내부에 별도로 조성된 원지(정원 안의 못)가 함께 확인됐다. 또한, 이 동궁의 원지는 기존 ‘동궁과 월지’와 연결되지 않고 별도로 운영되어 독립된 배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상부를 통해 빗물이, 하부를 통해 오수가 배출되는 수세식 측간도 확인됐다.
최근 조사를 통해 월지 동편에서 서편보다 한 단계 낮은 위계의 건물을 추가로 확인된 만큼, 당초 동궁으로 추정했었던 월지 서편 건물지는 왕의 공간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상아 주사위 전개도 사진국가유산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06/20250206174356488092.jpg)
김경렬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 학예사는 “월지 서편보다 낮은 위계의 건물이 확인된 점, 왕족이 쓸만한 수세식 측간이 발견된 점 등을 볼 때 동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종훈 국유청 역사유적정책관은 “태자의 별도 공간이 있었다는 게 10년 발굴조사의 가장 큰 의미”라며 “신라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신라의 서라벌이란 도시는 처음에는 자연적인 굴곡이 있는 도시였는데, 일정 시점이 지나면서 토목 공사를 통해서 이를 메꾼 과정이 있다”며 “신라가 지녔던 토목 기술력까지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태자의 공간이 새롭게 확인된 만큼, 왕의 공간인 월지 서편에 대한 조사가 향후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신라왕경 나지구 출토 쌍조문 금박 전체 사진 사진국가유산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06/20250206174248328292.jpg)
아울러 ‘진짜 동궁’의 북쪽 생활공간으로 확인된 상아 주사위(2017), 선각단화쌍조문금박(2022) 등의 유물을 통해 동궁의 일상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선각단화쌍조문금박은 머리카락 한올의 두께보다 세밀한 도구를 사용해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그림이 새겨 있다. 특히 새의 꼬리 깃털 등 사실적 묘사가 탁월하다.
![목걸이의 수정에 실이 꿰어진 모습 사진국가유산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5/02/06/20250206174455132886.jpg)
최근 추가로 찾아낸 미공개 의례 유물들도 소개했다.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지난해 10월 의례 제물로 바쳐진 개를 공개한 이후 12월까지 진행된 추가 조사에서 개 한 마리를 더 확인했다. 그 주변에서 수정 목걸이가 담긴 나무상자와 둥근고리칼, 상어 이빨과 함께 1200여 알이나 되는 콩들도 더 발굴했다. 특히 당시의 고급품인 옻칠된 나무상자 속에서 확인한 수정 목걸이는 수정이 꿰어진 실까지 함께 발견되어 상태가 매우 양호한 편이다. 향후 사로국 시기 신라의 의례 모습을 밝히는 주요 실마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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