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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칼럼] '승자독식' 정치구조를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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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25-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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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새 틀 짜기] ②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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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현재 대한민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12·3 비상계엄과 내란죄 논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와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등으로 이어진 국정의 혼란과 공백 상황은 국내외적으로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으며, 이러한 우려가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이 극단화되면서 국민들 사이의 분열과 갈등이 극심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부지방법원 난입 사태에서 보듯이 국민들의 갈등과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헌법재판소의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계속 제기되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결정이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결정과는 달리- 갈등과 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다양하다. 민주적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정치문화,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조장하고 진영 결집을 통해 정권을 잡으려는 정치세력들, 사법부 코드인사 등에서 비롯된 사법부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신뢰의 실추 등이 모두 현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을 꼽는다면, 승자독식에서 비롯된 진영 갈등의 극단화를 들 수 있다. 그것이 현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일 뿐만 아니라, 다른 원인에도 직⋅간접의 영향을 크게 미쳤기 때문이다.
 
왜 승자독식이 문제인가?
 
승자독식이란 경쟁의 성과를 나누는 방식의 하나이고,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각 주(州)별로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방식이며, 권력을 쟁취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대통령제를 승자독식이라 부르는 것은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으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그가 모든 권력을 가질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삼권분립 체계에서 대통령이 절대적 권력을 갖지는 못하지만, 대통령은 가장 큰 권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다.

그런 측면으로 인하여 대통령을 ‘선거군주’라고 부를 정도로 대통령은 군주국가의 왕과도 비슷한 위치에 있다. 오죽하면 1970년대 미국에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아이러니하게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수많은 신생독립국들이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선택했다. 과거의 군주제와의 유사성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 대통령제가 성공했다는 평가는 없다. 의원내각제로 성공한 서구의 선진국들이 많이 있고, 이원정부제(dual executive system)로 성공한 프랑스, 포르투갈, 핀란드 등이 있는 것과는 달리 대통령제는 미국 외에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이며, 미국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승자독식의 대통령제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완충장치를 통해 승자독식이 승자독재가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권력의 중심에 선다 하더라도 이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었고, 그중에서 세 가지가 주로 이야기된다.

첫째, 연방제를 통한 분권은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을 크게 완화시킨다. 미국의 주(州)들은 각기 독립적 국가에서 출발했으며, 오늘날에도 독자적인 헌법과 법원, 군대까지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주(州)들의 실질적 힘은 연방정부를 견제하기에 충분하다.

둘째, 미국의 정치문화는 양당제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양당 간의 대립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당이 무조건 대통령을 추종하거나 지지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이민자 문제 등에 관하여 대통령의 무리한 정책이 나오면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도 함께 이를 저지하는 데 앞장선 바 있다.

셋째, 이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 연방대법원의 중립성과 중재자로서의 역할이다. 연방대법원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방대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 및 그로부터 나오는 권위 때문이며, 그 바탕에는 연방대법관이 정년조차 없는 종신직이라는 제도가 있다. 즉, 연방대법관은 일단 임명되면 정치권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으며, 대통령이나 의회가 연방대법원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미미하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완충장치는 단기간에 도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부작용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독일조차도 헌법재판소를 구성하면서 헌법재판관의 종신제는 도입하지 못하고 12년 단임으로 하였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의 종신제를 도입할 수 있을까?

이런 어려움 때문에 승자독식의 대통령제가 미국 이외의 국가들에서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승자독식에서 분권과 협치로
 
승자독식의 대통령제는 진영 갈등을 극단화시킨다. 이는 우리 헌정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1987년 민주화 이전은 논외로 하고, 민주화 이후의 정치상황에 초점을 맞춰서 보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승자독식의 정치구조 속에서 집권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지고, 그로 인하여 진영 갈등이 점점 더 심각해졌던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선거 때마다 진영 갈등을 자극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더욱 뚜렷하지 않았던가.

승자독식 정치구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집권해야 한다는 욕구가 커지면서 선거는 민주주의를 과시하는 축제나 꽃이 아니라, 온갖 술수가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 된 지 오래다. 결국 여야의 견제와 균형이 집권을 위한 깎아내리기 경쟁, 소모적 갈등의 확대재생산이 되었고, 대화와 토론을 통해 최선의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발목잡기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생산적인 경쟁, 서로 발목잡기가 아니라 잘하기 경쟁이 되어야 한다. 즉, 승자독식의 정치구조를 분권과 협치의 정치구조로 바꿔야 한다.

분권의 기본은 삼권분립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맞는 분권은 이를 한층 더 세분화하는 중층적 분권이 되어야 한다. 입법부를 상원과 하원으로, 집행부를 대통령과 총리로, 사법부를 법원과 헌법재판소로 다시 분권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전문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여야의 소모적 경쟁은 생산적 경쟁으로 바뀔 수 있다.

예컨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과 국회에서 선출한 총리가 각기 일정한 국정 영역을 주도할 때,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도 누가 더 잘하는지를 경쟁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굳이 발목잡기 경쟁을 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구체적인 분권의 내용과 방식에 대해서, 그리고 협치의 범위와 방법에 대해서 많은 논의와 이를 통한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더라도 분권과 협치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것이 극단적인 진영 갈등 속에서 대한민국이 몰락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제 승자독식 논리는 개발독재에서도 주장되었고, 이에 맞서는 운동권 논리도 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논리들이 나름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1960~1980년대가 아니다. 이제는 21세기 변화된 대한민국에 맞는 정부의 역할, 이를 뒷받침하는 분권과 협치의 정치구조가 모색되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발전시키는 길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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