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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의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을 치르면서 자신을 가끔 링컨과 비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를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의 한 명으로 꼽는 비평가들은 그를 링컨과 비교하는 것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것이다. 링컨은 켄터키주 통나무 집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해 독학으로 공부하며 온갖 실패와 역경을 딛고 자수성가했다. 대통령이 되어서는 책임감과 결단력이 뛰어났고 포용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미합중국이 두 개로 분리될 위기에서 국가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업을 이루어 냈다. 뉴욕의 부유한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명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을 졸업한 '금수저' 트럼프는 링컨과 출신 배경부터 다르다. 특히 두 사람의 정치적 비전이나 리더십 스타일 또는 성품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두 사람은 유사점도 많다.
먼저 두 사람은 같은 정당의 대통령이다. 링컨은 최초의 공화당 대통령이고, 트럼프는 19번째 공화당 대통령이다. 두 사람 모두 출마 전 공직 경험이 미약하거나 전혀 없어 당선 가능성이 낮은 후보였으나, '다크 호스' 주자로 떠올라 예상을 깨고 공화당 후보 지명을 받아 대선에서 승리했다. 두 사람 모두 당선에 대한 반발은 거셌다. 분리주의자들은 '링컨에 대한 저항은 신에 대한 복종'이라는 문구가 적힌 리본을 달고 다녔다. 정치적 '아웃사이더'인 트럼프도 워싱턴의 기득권 엘리트로부터 심한 냉대와 질시를 받았다. 집권 기간 비우호적 언론 때문에 심하게 골머리를 앓은 점도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두 대통령 모두 심각하게 분열된 미국을 이끌어야 했다는 점이 닮은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링컨은 남북전쟁(1861~1865, American Civil War)으로 미합중국이 두 개로 분열된 시기를 통치했다. 트럼프 시대 정치권과 사회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적대적이며 분열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
링컨과 트럼프 둘 다 미국 역사상 한 시대를 상징하는 존재이지만 정치적 비전과 리더십 스타일이 서로 극명하게 다르다. 링컨은 독립선언서의 가치와 원칙을 수호하는 데 집중했으며, 모든 인간의 평등과 자유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강조했다. 노예제 폐지 문제를 둘러싼 남북간의 극단적인 대결 속에서도 링컨은 미국 연방 유지를 위해 통합과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게티즈버그 연설은 그의 비전을 잘 드러내고 있다. 링컨은 남북전쟁 후에도 패배한 남부의 '전범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항상 낮은 자세로 국민과 대화했다. 그의 '10% 플랜' (남북전쟁 기간 남부 주의 거주민 중 10%만이라도 연방에 충성을 서약하면, 그 주의 연방 복귀를 간소한 절차로 허용하는 정책)은 미 연방의 재건과 통합의 기틀을 마련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이민 문제나 무역 협상 등에서 일방적이고 강경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상대가 그를 공격을 하면 트럼프는 본능적으로 몇 배로 응징하는 '싸움꾼'이 된다. 링컨과 달리 즉흥적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소통방식이 너무 분열적이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류이다. 트럼프는 미국의 전통적 주요 언론을 '가짜뉴스'로 공격하며 적대적 관계를 형성했고,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자신의 지지층 결집을 강화시키고 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정치적 행태는 미국 내 사회갈등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링컨은 언론과의 관계 및 대응 방식에서 트럼프와 큰 차이점을 보인다. 자신들을 비판하던 언론들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존중하며 주류 언론들을 국민과 소통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링컨은 낮은 자세로 여론과 언론을 경청하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을 했다.
링컨은 4년간의 남북전쟁 기간 군사 작전을 총괄하고 노예해방 선언(1863년 1월) 등 어려운 결정들을 직접 책임지고 수행했다. 그는 노예제 폐지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너무 과격하고 급진적인 방식보다는 신중하고 점진적인 접근을 택했다. 남부의 노예 소유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등 각종 유화책으로 그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견해가 다른 적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기저에는 링컨의 확고한 신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즉, 어떤 경우에라도 링컨 대통령에겐 연방의 존속이 최우선 과제였다. 연방의 존속은 그의 모든 정책 결정의 기본 원칙이 되었고, 국가 통합을 위한 노력의 근간이 되었다.
링컨은 1862년 9월 반란 세력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국가 분열을 막기 위해서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으로 인해 인신보호영장제도(Habeas Corpus)가 중단되고 가담자에 대한 군사재판이 실시되었으며 시행 1년 동안 반란을 선동하고 군사 기밀을 누설한 수백개의 매체가 폐간되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는 당시 민주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미국이 연방의 통합을 지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링컨의 계엄령은 국가 존립의 위기 상황에서 취해진 불가피한 선택으로 역사는 평가하고 있다.
링컨은 대선의 경쟁자들을 대거 주요 각료로 임명하며 탕평책을 썼다. 윌리엄 슈어드를 국무장관,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 에드워드 베이츠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게다가 전쟁장관으로 민주당의 에드윈 스탠턴(Edwin M. Stanton)을 임명했다. 전쟁장관은 지금의 국방장관으로서 전쟁 기간이므로 매우 중요한 직책이었다. 스탠턴은 링컨을 '원숭이' 또는 '무식쟁이'라고 조롱하며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링컨은 그를 전쟁 수행에 최적인 인물로 보고 설득에 설득을 거쳐 전쟁장관에 임명했다. 해군장관 기디언 웰스(Gideon Welles)도 민주당에서 뽑았다. 정책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링컨은 이렇게 임명한 장관들을 전쟁 기간 내내 해임하지 않았다.
세계적인 전기 작가 에밀 루트비히 (Emil Ludwig)가 쓴 <링컨의 생애> (원제 Abraham Lincoln)는 링컨의 위대한 리더십이 다음과 같은 특성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일반 시민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공감능력이 뛰어났다. 노예제 폐지라는 도덕적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적인 정치적 판단을 균형있게 조율했다. 권력을 가진 후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았다. 남북전쟁이라는 미국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 단호한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법과 원칙을 지키며 무엇보다도 정적을 미워하지 않고 포용했다.
미국은 1876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국가 수반으로 하는 민주적 공화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링컨은 건국이 된 지 100년도 안되어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될 절박한 위기에서 미국을 구했다. 그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진정한 민주적 지도자였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적과도 소통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토론과 설득에 나섰다. 그의 호소와 진정성은 두려움에 굳게 닫힌 남부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었다. 위기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미국이 현대적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다. 그의 정신과 업적은 미국 역사에서 영롱한 샛별처럼 빛나고 있다.
작금의 한국의 정치를 보자.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죄로 기소된 채 헌재의 탄핵 심판을 받고 있다. 진보와 보수 진영 간의 극한 대립으로 인해 우리 정치는 합리적인 토론과 타협이 실종되었다. 정치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국민들의 정치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링컨의 포용과 소통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우선적으로 정치 지도자들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승자독식의 정치문화가 이젠 사라져야 한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복원 시켜야 한다.
링컨은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현재 직면한 '정치·지역·젠더·세대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데 그의 위대한 포용과 소통의 리더십은 우리에게도 소중하고 중요한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작금의 탄핵 정국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되든 우리 정치인들은 링컨의 적극적 포용과 소통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 진영을 넘어선 국가적 화합은 말로만 강조하지 말고 즉각 실행으로 옮겨야 할 때 이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유지될 수도 있고 바뀌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도 여야를 넘어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야 말로 화합과 통합의 정치를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야를 떠나 이념을 떠나 정치인들은 이젠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국가의 장기적인 발전과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이다. 링컨은 "원수는 사랑으로 녹여서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고 진정한 통합을 이루려면 이러한 화해와 용서의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2025년은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된 한국의 민주주의가 다시 꽃을 피우는 한 해로 만들어야 한다. 또 대한민국에도 링컨과 같은 진정한 국가의 지도자가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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