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칼럼] '교육부 해체론' 되풀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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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입력 2025-02-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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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이재희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미국에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면서 연방 교육부 폐지 또는 축소를 위한 행정명령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이는 연방 교육부가 교육 데이터 수집 및 연구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연방 학자금 대출 프로그램 운영과 교육 평등을 위한 정책 시행 등 교육 이외의 문제에 연방 공무원 인력을 투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부는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대선 때마다 교육부 해체 또는 권한 분산 등의 주장이 나오곤 했는데, 그 이유가 미국과는 다르다. 학생과 학부모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교육정책이 조변석개하고, 불필요한 규제가 많으며, 교육 본질보다는 평등과 복지에 중점을 둔 정책들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교사에게 살해당한 참담한 사건 발생 이후 모든 학생이 안전하고 학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방안을 확보하는 것이 교육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출발점일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4대 개혁, 즉 교육개혁,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의료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듯했으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연금개혁, 노동개혁과 의료개혁은 현 세대의 삶과 직결되어 있어서 시급한 개혁 과제이고, 교육개혁은 미래 세대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므로 상대적으로 긴 안목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이런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정책 추진 과정에 갈팡질팡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어낸다면 또다시 교육부 해체론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사회부총리를 겸임하고 있는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야기되어 1년간 진행된 의료 위기를 타개하는 데 존재감이 없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 교육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담당해 왔는데, 교육부는 초·중·고 교육, 고등교육, 평생교육 정책 전반을 관장하고, 시도교육청은 초·중·고 교육을 담당해 왔다. 2022년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여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교육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및 교육제도 개선 등)과 국가교육과정의 기준과 내용 고시.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조정 등을 수행하도록 정리되었다.
교육부가 추진해온 정책 중 고교학점제와 늘봄학교 정책처럼 공론화 과정과 단계적 준비를 거쳐 순조롭게 진행된 정책도 있다. 하지만 미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변화가 긴요한데 착수도 하지 못하거나 조변석개하는 정책들도 많다. 학제, 교원정책, 대학입학정책 등을 정부가 손을 대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정권이나 교육감 교체기에 또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 때문에 교육정책이 변하는 것도 문제다.
‘오락가락’ 교육정책 사례는 현장실습 중 학생이 사망한 사고로 인해 1년 만에 뒤집힌 특성화고 현장실습 정책, 사교육 억제 명목으로 기재 항목을 변경해오다 2024학년도 대입부터 폐지가 결정된 대입 자기소개서 정책 등 수두룩하다. 최근의 사례로는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AI 디지털 교과서(AIDT), 고교 무상교육 등을 볼 수 있다.

자사고는 교육비를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지원 없이 수익자가 부담하는 대신 학생선발권과 교육과정 자율권을 확보했다. 이 제도는 김대중 정부 때 시작되어 이명박 정부 때 확대되었다가 취소와 존치 논란을 겪었으나 윤석열 정부가 자사고 존치를 결정하면서 5년 주기로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를 실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상당수 교육감이 자사고 폐지를 주장하고, 일반고보다 먼저 학생을 선발하던 방식이 동시 선발로 바뀌고, 고교학점제 실시로 일반고도 다양한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해지면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한 학교들이 증가했다.
AIDT는 AI를 기반으로 학생을 진단·분석하여 개인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미래형 에듀테크 활용 방안이다. AIDT 도입으로 디지털 기기 과몰입과 문해력 저하 등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AI는 학생의 성취 수준에 맞는 학습경로와 콘텐츠를 지원하고 교사는 토론수업 등에 집중하면서 학생의 창의성을 기르는 게 목표다. 그러나 최근에 국회가 AIDT의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용 도서로 변경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공급업체, 학교 현장, 학생과 학부모 등은 혼란에 빠져 있다.

고교 무상교육은 고등학생이 납부하던 입학금, 수업료, 교과서 대금, 학교운영지원비를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서 ‘고등학교 등의 무상교육 경비 부담에 관한 특례’가 지난해 말에 일몰되어 올해부터 사라진 국비 지원을 3년 연장하는 방안에 대하여 여야가 대립하고 있어 고교 무상교육 재정이 아직 미해결 상태이다.
교육부 비판의 또 다른 원인은 각종 규제가 많다는 것이다. 중앙부처 중 교육부는 조직과 구성원이 많은 부서로 알려져 있고, 그로 인해 일거리를 창출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만들어낸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교육부의 규제 사례를 몇 가지만 제시한다. 대학 입학 자원이 부족하여 미충원 인원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대학은 입시를 위한 홍보에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육부는 대학에 입시정보업체의 유튜브 채널이나 사교육기관을 통한 입시설명회를 금지하고, 직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홍보하라는 공문을 보낸 적도 있는데, 당시 고교교육 기여대학 사업 등에 탈락할 것을 우려한 대학들은 교육부 공문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교육부는 2009년부터 ‘반값 등록금’ 명목으로 17년째 대학 등록금 동결을 강요하고, 인상하면 국가장학금 지원 중단과 정부 재정지원 사업 선정에서 탈락시키는 불이익을 주었다. 그 결과 대학 재정이 고갈되어 대학교육의 질이 저하되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교육부가 대학과 사회의 비판을 반영하여 대학규제개혁총괄과와 대학규제혁신추진단 등 조직을 만들어 규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 교육부 폐지 또는 해체 주장이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교육당국은 각자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교육부 관료의 전문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때 공청회와 설명 등을 통해 국민과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둘째, 시도교육청은 교육감의 독선과 아집에 따른 교육정책을 지양하고, 국가교육정책의 틀 안에서 운영에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감 선출 제도를 변경하고 교육감은 선출된 권력이라는 자만에서 벗어나야 한다. 셋째, 국가교육위원회가 정착하여 장기 교육정책과 국가교육과정을 정파에 무관하게 추진하고, 국회의 교육위원회와 똑같은 정치 행태가 나오지 않도록 인원 구성을 변경하고 연구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일시적으로 급등하는 여론이나 강경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를 위한 정책 입안과 추진에 매진하고 과도한 규제를 모두 해제해야 한다. 교육당국이 존재감과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지 못하면 언제 다시 교윢부 폐지론이 고개를 들지 모른다.



이재희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교육학박사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원 ▷미국 텍사스대(오스틴) 연구교수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회장 ▷경인교육대학교 6대 총장 ▷국제언어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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