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휘 칼럼] 경제·안보 전권 쥔 협상단을 미국에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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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5-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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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⑩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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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⑩

4월 2일 미국의 수입 관세 인상이 예고되었다. 관세를 경제·통상뿐만 아니라 외교에 활용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교역국에 동일한 세율(예를 들어 10∼20%)을 적용하는 보편관세 대신에 교역국별로 관세를 다르게 부여하는 상호관세로 선회하였다. 보편관세에 비해 상호관세는 국가별·상품별로 관세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세율을 정책 목표에 맞게 설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내적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조세수입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간주한다. 1798∼1913년 연방정부 재정에서 관세의 비중은 50∼90%였다. 1913년 소득세가 신설되고 관세가 낮아지면서, 관세의 비중은 1990년대 이후 2% 이하까지 하락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조세수입에서 소득세와 법인세의 비중을 낮추고 관세의 비중을 올리려고 한다.

대외적으로 관세 인상은 무역적자 해소와 외교안보 협상의 지렛대로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뿐만 아니라 불법이민과 펜타닐을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대한 관세 인상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미국 우선주의를 신봉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적대국은 물론 동맹국에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에 대해 우리 정부는 우리 기업이 투자한 지역의 상원·하원의원, 주지사, 시장 등을 통해 우리나라가 2023년 미국의 최대 해외투자국으로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했다는 사실을 행정부와 의회에 전달하는 아웃리치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미군 파병의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희토류 지분 50%(약 5000억 달러)를 달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활동을 인정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경제부처 장관이 경제-안보 연계 문제를 협상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대미 무역흑자 축소, 대미 투자 증대, 대중 제재 동참 등과 같은 경제·통상 현안뿐만 아니라 북한 핵개발, 북미 정상회담,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한 미군 감축, 남중국해·대만해협 개입과 같은 외교안보 현안이 관세와 언제든지 연계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비 분담금을 10조 이상으로 증액하지 않으면 관세를 인상하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경제부처 장관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현재 대통령실과 정부는 경제-안보 연계를 다룰 수 있는 충분한 조직과 예산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경제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 경제안보비서관을 신설하고 작년 초에 국가안보실 3차장을 임명하였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지향했기 때문에 신설된 조직과 직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적절한 인원과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다. 그 결과 3차장은 중장기적 전략 추진보다는 현안 대응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부총리가 주재하는 대외경제장관회의도 한계가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의제가 대외경제정책에 국한되어 있어 경제부처와 안보부처 사이의 이견을 조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참석 대상도 경제부처 위주이다. 안보부처 중에서는 외교부 장관만 참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경제안보 관련 회의에는 국무부, 국방부, 국토안보부, 중앙정보부(CIA)뿐만 아니라 법무부, 교육부, 연방수사국(FBI)도 참석한다. 경제-안보 연계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회의 구성원에 최소한 국방부 장관, 국정원장, 방위사업청장이 추가되어야 한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조직 개편만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먼저 국가안보실의 조직과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중요한 현안이 많아지는 추세를 감안하여 정책 기획과 조율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인력과 자금이 3차장에게 충분히 지원되어야 한다.

정부에서는 통상교섭본부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 통상교섭본부의 주요 업무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다. 주요 교역국과 FTA를 이미 체결했기 때문에 통상교섭본부가 새롭게 시도해야 할 통상협상은 많지 않다. 또한 글로벌 차원에서 보호주의가 확산되면서 자유무역을 위한 협상보다 관세와 경제제재가 훨씬 더 중요하게 되었다. 따라서 통상교섭본부를 경제-안보 연계 문제를 전담하는 경제안보본부(가칭)로 개편해야 한다. 경제-안보 연계를 실질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이 본부를 산업통상자원부나 외교부의 소속기관이 아니라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같이 대통령 직속 기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담판을 통해 쟁점을 해소하는 정상회담을 선호한다. 따라서 적어도 트럼프 행정부 재임 기간 중에는 대통령이 경제안보 현안을 직접 챙겨야 한다. 이런 배경에서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안보전략회의(가칭)의 신설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의 역사적 기원은 박정희 정부의 수출진흥회의에 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5년부터 1979년까지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달 이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수출입국에 기여한 회의는 전두환 정부에서도 비정기적으로 개최되었으며 무역흑자가 본격화된 1986년 중단되었다. 2013년 5월 박근혜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진작하기 위해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신설하여 2017년 2월까지 11회 개최하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 윤석열 정부는 수출전략회의를 통해 경제안보 문제를 관리하였다.

박정희 정부 이후 경제안보 회의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제도적 한계에 있다. 경제부처가 아니라 대통령실이 직접 준비해야 경제-안보 연계 문제가 충실하게 검토될 수 있다. 또 회의가 정기적으로 개최되어야만 정책 집행의 일관성이 확보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관계부처뿐만 아니라 재계와 학계가 다 참여해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어 실질적 토론이 될 수 있다.

상호관세가 발표될 4월 2일까지 협상할 수 있는 기간은 한 달 남짓이다. 이 골든타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경제안보 문제에 전권을 가진 협상단을 미국에 파견해야 한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중이라서 협상단은 대통령 권한대행 및 여야 대표의 협의에 따라 구성되어야 한다. 앞으로 한 달 이내에 우리 입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은 물론 중국에 비해 훨씬 더 큰 불이익을 받을 것이다. 지난달 17일 시진핑 중국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였으며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무역의존도가 80%가 넘는 상황을 고려하여, 대미 협상에서만큼은 여야가 초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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