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과학기술혁신 한국은 준비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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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입력 2025-02-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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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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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한민국 새판짜기] ⑨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2025년은 매우 독특한 해다. 지난해가 ‘선거의 해’였다면 올해는 ‘정책 경쟁의 해’로 불릴 것 같다. 지난해에는 64개국에서 대선과 총선이 있었다. 지구 인구 80억명 가운데 50억명이 선거에 참여했다. 그 결과 2025년에 새로운 전략과 정책이 대거 쏟아질 전망이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트럼프 2.0의 등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행정명령을 대거 내놓으면서 세계를 더욱 불가측한 상황으로 몰고 있다. 중국발 ‘딥시크 쇼크’는 거기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다.

세계 각국은 ‘트럼프 2.0’에 대처하는 데 한층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래서 올해는 ‘정책 경쟁의 해’로 정의될 것이다. 큰 눈으로 볼 때 이 상황을 꿰는 중심 키워드는 ‘경제안보’다. 이 키워드 아래에서 세계는 전략적인 합종연횡과 이합집산을 할 터다. 경제안보라는 벡터를 끌고 나가는 견인차는 ‘기술’이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서 상징하듯이 기술경쟁이 한층 격화되는 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지금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열량(熱量)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와 경제력 저하에 대처해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가 분명해졌지만 행정과 정치가 기능 부전에 빠져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으로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의 가치관과 행동 규범, 노동시장과 사회경제적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아울러 전 세계적으로 기술 혁신이 진행되고 있건만 정책 업데이트가 늦어지면서 성장에서 뒤처지고 있다. 변화를 외면하고, 임시방편적인 정책을 반복해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정책은 경제활동의 발목을 잡고 구조적 성장을 저해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세계의 큰 흐름을 읽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수립해 추진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구 감소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으면 경제는 쇠퇴한다. 여성과 고령자의 노동 촉진은 중요하지만 이들의 참여율은 이미 높다. 노동 참여율을 높이는 노력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남녀 임금 격차 해소, 노동 이동의 원활화 등 각자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환경 정비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개인과 기업의 성장 의욕을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고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와 기술력 제고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많은 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온(低溫) 경제를 달구고, 세계 기술경쟁을 뚫고 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안으로 과학기술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이미 전례 없는 기술시대에 돌입했다. 주요국들은 과학기술정책에서 뜨거운 경쟁을 벌이는 양상이다. 한국은 이제 총력전으로 맞서면서 생존과 번영의 출구를 찾아야 하는 험난한 노정에 나서야 한다.

세계를 둘러보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월 23일 대통령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를 새로 구성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첨단 생명공학 등의 발전이 세계의 힘의 균형을 바꾸고, 완전히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며, 생활과 노동의 방식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미국이 이 분야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기술적 우위를 유지·획득하는 것이 국가안보상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학계, 산업계, 정부에서 유망한 인재를 모아 PCAST를 구성한다. PCAST는 24명 이내 위원으로 구성된다, 그중 대통령 보좌관(과학기술정책담당)과 AI·암호자산 담당 특별보좌관이 위원으로 참여하며 공동의장을 맡는다. 나머지 위원들은 과학, 기술, 교육, 혁신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대통령이 임명한다. PCAST는 과학, 기술, 교육, 혁신 정책에 관해 대통령에게 자문을 제공하고, 미국 경제, 미국 노동자, 국가안보 등 공공정책 수립에 필요한 과학적·기술적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한다.

이에 앞서 1월 13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AI 발전 가속화를 위한 청사진으로 'AI 기회 행동 계획'을 발표했다. 이 행동 계획에 따라 영국은 AI 활용을 통해 향후 10년에 걸쳐 경제성장과 혁신을 주도하고, 공공 서비스의 효율성 개선에 나서게 된다. 이 계획은 영국을 AI 기업들에 최고의 투자처로 만들기 위한 대책도 담고 있다. 영국은 AI 산업의 최전선에 서서 세계의 변화를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과학기술부 장관과 에너지부 장관이 의장을 맡는 ‘AI 에너지 위원회’도 설립해 에너지 기업과 협력해 기술 개발의 원동력이 되는 에너지 수요와 과제를 파악한다고 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1월 9일 “향후 수년 동안 1090억 유로(약 151조3200억원)를 AI 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외에서 대규모 민간 투자를 유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1090억 유로라는 금액은 국가 전체의 혁신을 목표로 하는 정부의 5개년(2022~2026년) 투자 계획인 '프랑스 2030'의 총 투자 금액의 2배에 해당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투자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제7기 과학기술이노베이션기본계획(2026∼2030년)을 짜고 있다. 과학기술기본계획은 일본의 과학기술과 혁신 창출 촉진에 관한 정책의 기본 문서로서 5년마다 수립된다. 내년은 1996년에 제1기 과학기술기본계획이 수립된 지 30년 되는 해다. 일본 정부는 10년 정도 미래를 내다본 과학기술기본계획으로 그동안 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과제에 대응해 왔다. 일본 정부는 과학기술정책의 방향을 종래 연구개발 투자 확대와 연구개발 시스템 개혁 중심에서 '혁신 창출'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기본계획 명칭도 6기(2021∼2025년)부터 '과학기술이노베이션기본계획'으로 바뀌었다. 혁신을 단순히 기업의 신제품과 서비스 개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으로 추진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일본 정부는 작년 12월 총리 직속의 종합과학기술이노베이션회 산하에 기본계획조사회를 설치하고, 제7기 과학기술이노베이션기본계획에 ‘과학기술 창조입국'을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인 비전을 담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제7기 기본계획에 중요 첨단기술의 개발과 지원, 과학기술 국제협력의 강화, AI 분야의 연구개발 강화와 안전성 확보 등 3대 역점 사업을 가속화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경제성장과 경제안보에 중요한 첨단기술로 AI, 양자, 생물공학(바이오테크놀로지), 소재, 반도체, 핵융합 기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양자기술과 핵융합기술이 새로운 산업의 싹이 되는 기술이며 AI, 생물공학(바이오테크놀로지), 소재, 반도체는 일본의 경제성장에 중요한 기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앞으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이러한 중요(코어) 첨단기술의 개발을 서두르는 한편 다른 전략 기술 분야와 융합을 통한 연구개발, 산업화, 인재 육성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AI와 양자, 로봇, IoT 기술 등과 융합해 연구개발과 제조공정의 자동화와 고속화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차세대 청정에너지인 핵융합에너지의 조기 실현을 목표로 핵융합발전 실증 시기를 앞당기기 위한 대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2015년 5월에 발표한 하이테크 산업 정책인 ‘중국제조 2025’의 마지막 해다. 2025년까지 중국이 세계 제조 강국 대열에 합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품목별로 국제 비율 목표를 설정했다. 로봇은 70%, 이동통신 시스템은 40%로 늘린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미국 미디어들은 '시진핑의 기술 우위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노력이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중국제조 2025' 이니셔티브가 대부분 성공해 고속철도, 그래핀, 무인항공기, 태양광 패널, 전기자동차, 리튬 배터리 등 13개 주요 기술 중 5개 분야에서 중국이 선두를 차지했으며, 나머지 7개 분야에서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은 미래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산업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과 세계의 혁신을 동시에 방해할 수 있는 ‘엄격한 조치’를 제외하고는 “중국의 기술적 부상은 미국의 제재에 의해 방해받지 않을 것이며,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억제 정책이 자칫 미국을 고립시켜 기업과 소비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가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 '세계 제조강국 선두 그룹 진입'을 목표로 산업 보조금 등 다양한 강화책의 근간이 되고 있는 만큼 계속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미·중 간 하이테크 패권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이러한 주요국의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정책 추진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이런 점에서 일본 미쓰비시종합연구소의 제언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연구소는 일본의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정책이 지향해야 할 '3대 방향성'을 제시했다. 첫째 목표로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일본'을 확립하기 위한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정책을, 둘째 목표로 웰빙을 '기점'으로 한 과학기술이노베이션을, 셋째 목표로 과학기술이노베이션 시스템의 리노베이션을 제시했다. 학계와 기업 모두 오픈 이노베이션의 부족, 조직의 유연성 부족 등 문제를 해결하고, 디지털 전환(DX)를 실현하면서 경제적·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쓰비시연구소는 “수많은 과제들이 상호 연관되어 있어 개별 부처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과제의 전체 구조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여러 정책 영역(소관 부처)에 걸친 시책을 프로그램화하여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과학기술정책도 이러한 관점에서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지금은 자국의 생성 AI가 없으면 국가 운영과 안보 측면에서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는 시대다. 경제안보와 기술도 불가분의 관계가 됐다. 한국은 이제 국가 생존과 미래를 내다보는 관점에서 앞으로 과학기술정책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지속 가능한 선진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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