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성추문 일파만파 …둥롤린 광고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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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입력 2025-0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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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올해 초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민영방송국 후지TV의 방송에서 기업들이 광고를 줄줄이 철수하는 일이 발생했다. 후지TV의 '성상납 의혹' 스캔들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후지TV의 경영 모체인 후지미디어홀딩스의 대주주인 미국 투자회사 돌튼 인베스트먼트(Dalton Investments)는 기업 거버넌스 재건과 투명성 확보를 요구한 동시에 스폰서 기업들도 잇달아 떨어져 나갔다.
이런 가운데 1월 27일 오후 4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10시간 넘게 후지TV 경영진을 대상으로 약 400명의 미디어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기자회견을 시작하며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 4명이 모두 머리 숙여 사과했고, 이후 무제한으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후지TV는 이 모습을 자신들의 지상파 채널을 통해 중계하는 이례적인 대응을 취했다. 미나토 고이치(港浩一) 사장은 “인권 침해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인권 인식이 부족했다. 대응을 잘못해 방송업계의 신뢰 실추로도 이어질 수 있는 사태를 초래했다”고 사과했다.
또한 후지TV 회장과 사장의 사임을 밝히며 새 사장의 취임을 발표했고, “제로부터 시작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제3자위원회에 의한 조사가 진행 중이며, 3월 말에 그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후지TV는 향후 법령 준수와 기업 거버넌스의 재검토를 진행하는 동시에 재발 방지책 마련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SMAP의 리더 출신이자 MC로도 활약하던 연예인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의 성추문이다. 당초 상세한 내용은 밝혀지지 않고 '여성 문제'나 '여성과의 트러블' 등 모호한 표현으로 보도되었는데, 그 후 이어진 보도들에 의해 성추문으로 밝혀졌다. 이 문제가 처음 세상에 알려진 것은 작년 12월에 한 주간지가 나카이와 어떤 여과의 사이에 '트러블'이 생겨서 나카이가 여성에게 합의금으로 9000만엔(약 8억5000만원)을 지불했다는 보도를 통해서였다. 나카이가 그만큼의 거액을 지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건의 중대성이 짐작되었고, 그 보도 이후 그가 방송에 출연한 장면이 편집되거나 방송 자체가 중단되는 등 TV에서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하지만 문제가 더 커진 것은 피해자가 후지TV 아나운서였다는 점과 그 사건에 후지TV 직원이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후지TV가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과 회사 조직으로서 책임이 결여되었다는 지적 또한 나왔다. 후지TV도 나카이도 해당 직원은 사건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과거부터 후지TV 내에 성상납 문화가 존재했던 것이 아니냐,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해서 여자 아나운서를 회식 자리에 동석시키는 기업문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하는 의혹이 커졌다.
거기에 피해를 입은 아나운서가 사건 후 건강이 악화되어 장기 휴직을 했고, 결국 퇴직에까지 이른 상황에서 나카이가 발표한 '사과문'이 여론의 큰 비난을 샀다. 그는 '사과문'에서 “(피해자와) 합의가 성립됨으로써 향후 연예 활동은 지장 없이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후지TV의 대응도 사건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2023년 6월 이후 사실을 대체로 파악했으면서도 방송에 나카이를 계속 출연시켰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의 출연자로 섭외하는 등 사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후지TV 사장은 나카이가 갑자기 방송에 나오지 않으면 세상이 들썩이게 될까 봐 조용히 대처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후지TV의 대응을 포함한 문제점에 대해 제3자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겠지만, 어쨌든 후지TV의 기업 위기 대처 능력이나 인권 의식이 크게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셈이다. 이 칼럼에서도 이전(2023년 10월 11일자)에 다루었는데, 일본의 거대 연예기획사 사장이었던 자니 기타가와(ジャニー喜多川)의 오랜 성착취 문제가 본인이 사망한 뒤에야 비로소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아직도 그 피해자 구제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 등에서 보듯 방송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연예계의 문제는 큰 이권이 얽혀 있어 흐지부지되기 쉬웠을 것이다.
일본의 인기 코미디언인 마쓰모토 히토시(松本人志) 또한 성추행 의혹으로 작년부터 활동을 중단했지만 책임 문제는 어느덧 모호하게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연예계가 워낙 각종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기에 진실과 거짓을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러한 '여성과의 트러블'이라는 문제가 일본에서는 '연예계 가십'으로만 소비되어 왔기 때문에 다들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오랜 세월 고발의 목소리가 있었고, 재판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언론의 보도가 없었다면 아직도 주목받지 못했을지도 모를 자니 기타가와의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당초 나는 이번 나카이의 사건 또한 이대로 흐지부지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트러블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피해자에 대한 사죄도 없이 자신의 “활동에 지장이 없다”고 입장을 밝힌 나카이의 태도는 여론의 분노를 샀고, 결국 떠밀리듯 연예계를 은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성추행 등 인권에 관한 문제에 있어 일본 사회의 인식도 과거와 크게 달라졌는지도 모른다.

다만 한편으로 인권을 둘러싼 일본 내 인식과 관련해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은퇴를 밝힌 나카이에 대한 비판은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합의가 성립된 안건이기에 더 이상 추궁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카이는 이 문제에 대해 팬들에게 입장을 표명하는 글만 남겼을 뿐 기자회견 등 공개적인 자리를 통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정말로 나카이 개인의 은퇴로 끝내도 되는 문제인지 의문이다.
또한 당초 후지TV는 적당한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후지TV에는 ‘컴플라이언스 추진실’이라고 하는 법률 준수와 관련된 전문 부서가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인지한 사장은 '피해자를 배려'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지 않기 위해 전문 부서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일부 간부만으로 대응하려 했다고 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배려'였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업문화의 문제도 지적된다. 사장의 생일파티나 중요한 거래처와 회식을 하는 자리에 관습처럼 여자 아나운서가 불려가 동석해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방송국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이렇게 여성을 회식 등 자리에서 '꽃'이라고 보는 직장문화가 일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후지TV만의 문제라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관련해 과거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미국발 #MeToo 운동의 움직임이 일본에서는 파급력을 갖지 못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 사건이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로만 강조되는 데도 위화감을 느낀다. 후지TV에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고문 히에다 히사시(日枝久)라는 인물이 있다. 1980년대에 편성국 국장을 맡아 후지TV의 전성기를 만든 후 오너 일족을 쫓아내고 사장에 취임해서 40년 이상 강한 영향력을 끼쳐온 인물로 유명하다. 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도 가깝게 지내는 등 정치권에도 인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지TV의 계열사로는 아베 정권에 대해 호의적인 논조를 보였던 '산케이신문'이 있고, 2000년대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은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출판한 후소샤(扶桑社) 또한 같은 계열사이다. 그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히에다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공개석상에 나타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그가 경영권을 장기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온상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10시간 이상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많은 기자들이 히에다가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이례적이었던 장시간의 기자회견에서는 기자들의 고성이나 야유가 난무하는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은 장면 또한 연출되었다. 그래서 이번 문제의 본질이 인권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막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보다 후지TV를 규탄하는 것이 목적이 된 기자회견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미 은퇴를 발표한 나카이를 규탄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후지TV를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일각에서는 후지TV가 무제한으로 기자들의 질문(이라는 이름의 규탄)을 받음으로써 세간의 동정을 사는 데 성공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계된 기자회견에서 60대, 70대 어르신(경영진)들이 400명에 이르는 기자들에게 매도당하는 모습은 동정을 사기에 충분했고, 이를 두고 기자들의 윤리나 도덕성 등이 화제에 오르면서 문제의 논점이 어긋나는 양상을 띠기도 했다.
10시간 이상 기자회견이 이어졌지만 인권 침해와 관련된 문제점이나 향후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유익한 이야기가 나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지TV를 둘러싼 문제는 이미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로 돌아선 듯 보이고, 스폰서 기업들도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여론이란 원래 '냄비'처럼 쉽게 달아오르고 식는 한편 언론도 결국 영리단체이기에 팔릴 소재가 있으면 달려들었다가 이내 다른 소재로 옮겨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언론이 맡은 사회적 역할은 여전히 크기에 이러한 사건들이 단순히 소비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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