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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도입 3년차를 맞았음에도 원리금보장 쏠림 현상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제도의 취지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을 기준으로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되고 있는 전체 적립금 40조670억원의 88%에 해당하는 35조3386억원이 원리금보장상품인 초저위험상품에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폴트옵션 상품의 평균 수익률과 관계 없이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된 적립금 대부분은 연 수익률 3%대에 그친 셈이다. 초저위험상품의 지난 1년간 수익률은 3.3%로 같은 기간 저위험상품(7.2%), 중위험상품(11.8%), 고위험상품(16.8%)의 수익률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았다.
가입자수를 기준으로 분류할 경우 디폴트옵션으로 적립금이 운용되고 있는 가입자 300만명 중 85%에 해당하는 256만명이 초저위험상품을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중위험상품이나 고위험상품을 택한 가입자는 각각 5%, 3%에 해당하는 15만명, 9만명에 그쳤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선택한 투자 포트폴리오로 미운용 적립금을 운용해주는 제도다. 퇴직연금이 예·적금 등 원리금보장상품 위주로 굴러가는 탓에 수익률이 낮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2023년 7월 전면 도입됐으나 디폴트옵션 가입자들이 원리금보장상품과 다르지 않은 '초저위험상품'을 선택하면서 같은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
디폴트옵션의 상품 분류가 '위험 성향'을 기준으로 되어 있다 보니 가입자들이 투자 위험을 실제보다 크게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디폴트옵션의 대표적인 투자상품으로 알려진 TDF(생애주기펀드)의 경우 대부분 고위험군과 중위험군에 속한다.
금융 당국은 원리금보장상품 쏠림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4월부터 모든 디폴트옵션의 상품 명칭을 변경하기로 했다. 초저위험은 '안정형'으로, 저위험은 '안정투자형'으로, 중위험은 '중립투자형', 고위험은 '적극투자형'으로 변경된다.
일각에서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활용하는 가입자의 수 자체가 적다는 점도 지적한다. 디폴트옵션으로 운용되는 적립금은 지난해 40조를 넘어서 2023년의 12조원에 비해 세 배 이상 늘었으나 여전히 DC형과 IRP의 전체 적립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되지 않는다. 지난해 말 기준 DC형과 IRP계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212조5854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은 "디폴트옵션 제도 도입 취지가 수익률 제고에 있는 만큼, 정부는 원리금보장상품에 편중된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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