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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대로변에서 10년 넘게 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상인 A씨는 “지난해 말 계엄령 이후 주요 고객인 외국인 관광객들이 체감상으로는 절반 이상 감소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24일 둘러본 가로수길 상권 일대에는 '통임대' '임대 문의' 안내문을 붙인 빈 상가가 한집 건너 한집 꼴로 이어졌다. 상당 기간 방치된 듯 전단지만 어지럽게 흐트러져 있는 상가나 건물 1층이 통째로 빈 곳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애플스토어 같은 유명 글로벌 브랜드 매장만 간간이 고객들로 붐빌 뿐, 한때 가로수길을 주름잡던 패션 브랜드나 뷰티 매장 등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사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로수길 상권의 공실률은 41.2%에 달했다. 상가 10곳 중 4곳 이상이 비어 있다는 얘기다. 3분기와 비교해서는 5.2%포인트(p)나 상승한 수치다. 같은 기간 서울 내 대표상권인 명동(5.6%→4.4%), 강남(20.2%→15.4%), 홍대(12.2%→10%) 등의 공실률이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면서 공실률 자체도 압도적으로 높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측은 “가로수길의 경우 한남, 도산 등으로 상권 방문객이 분산돼 상권 침체가 길어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상권 분산 이외에 높은 임대료도 공실률 상승에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때 가로수길은 국내외 패션 및 뷰티 브랜드 등의 팝업스토어나 플래그십 스토어가 대로변을 메우며 강남 주요 상권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임대료가 갈수록 치솟으면서 기존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한 소상공인들은 ‘세로수길’ 등 인근 골목 등으로 자리를 옮겼고, 컨템포러리 브랜드 ’자라(ZARA)’ 등도 임대료 줄인상을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가로수길을 떠났다. ‘팝업스토어 성지’의 명성도 성동구 성수동에 넘겨준 지 오래다.
가로수길에 대형 매장을 운영 중인 상인 B씨는 "일반적인 상가 면적인 99㎥(30평)의 경우 1000만원 안팎의 월세가 형성돼 있고, 중심가의 대형상가는 월세만 6000만~1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동 인구가 줄어든 요즘 같은 때는 대기업 브랜드도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해 나갈 정도”라며 “영세한 소상공인은 임대료 내기도 빠듯해 더더욱 버티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상권분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가로수길 점포들의 월평균 매출액은 1년 전과 비교해 126만원 하락한 1552만원이었다.
인근 공인중개업계에서는 상권이 좋지 않다고 해서 임대료를 내리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전한다. 신사역 인근의 공인중개사 C씨는 “월세를 내려 장기계약을 하기보다는 팝업이나 단기임대 형식으로 운영하길 원하는 건물주들이 대부분”이라며 “장기 임대계약을 한 임차인이 유지비라도 아끼기 위해 월세만 내고 공실로 남겨 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가로수길의 뒤를 이어 팝업스토어 성지로 각광받는 성수동은 상권 수요가 몰리면서 낮은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성동구 뚝섬(성수동)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1.89%로, 직전 분기(5.77%)에 비해 크게 줄었다.
다만 단기임대 성행으로 성수동 일대 상가 임대료도 높아지면서 가로수길과 마찬가지로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에 따른 원주민 내몰림 현상)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성수동의 소규모 상가 임대료는 지난해 1분기 1㎡당 5만1980원에서 4분기에는 5만8060원으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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