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정책대출은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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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선영 기자
입력 2025-02-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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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정책대출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정부가 운영하는 일종의 주거안정책이다. 서민의 기본적인 주거안정과 생활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만큼 시중은행 대비 낮은 고정금리로 주택 구입 부담을 완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1970년대부터 시대적 요구에 따라 이름과 조건은 계속 변화했지만 '서민 주거 사다리'라는 역할은 계속되고 있다.

50여 년간 서민 주거 안정화라는 도입 목적을 성실히 수행해온 정책대출이 지난해 돌연 가계대출 급증의 주범이 됐다. 정책대출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은 대부분 7억원 이하의 비강남 아파트에 거주하는 실수요자인데 가계대출 증가의 주동자로 꼽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것이다.

올해도 연초부터 정책대출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서민 부동산 공급을 확대하려는 국토부와 가계대출을 조절하려는 금융위원회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 탓에 부처간 조율을 마치고 1월 전에 결정돼야 하는 연간 공급액이 아직 확정되지 못했다. 이달 말 발표를 목표로 협의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으면 시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정책대출 증가는 △부동산 시장 회복 기대감 △금리 인하 기조 △스트레스 DSR 2단계 규제 연기가 맞물린 결과 나타난 일종의 '사이드 이펙트'이지, 가계대출을 끌어올린 주원인으로 볼 수 없다. 정책대출이 가계대출 총량을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인 것은 맞지만 40조원 규모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정부의 정책 혼선이 만든 합작품이라는 의미다.

예상치 못한 가계대출 공급 중단과 소득 및 주택가격 기준 변경, 인위적인 금리 인상은 정책 신뢰성 훼손은 물론, 시장을 교란하고 불필요한 대출 수요를 자극할 뿐이다. '패닉 바잉'이나 불필요한 혼란, 주거 불안정 같은 다양한 문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정책 입안자의 잘못된 판단 한 번이면 언제든 시장은 다시 끓어오를 수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너무 크다.

1%대 저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가계대출의 명확한 관리 지침이 더 중요하다. 부처간 합의가 지연될수록 가계대출의 정밀 관리는 힘들어진다. 월별, 분기별 목표치를 바탕으로 영업을 해야 하는 은행들은 연간 대출 계획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세우고 소극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당장 정책대출을 필요로 하는 금융 소비자의 피해와 시장 혼란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정책 불확실성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하고, 나아가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정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이제 막 안정화 추세에 접어든 가계대출이 언제든 다시 튈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하는 꼴이 된다.

대출 규제를 지나치게 경직되게 운영하면 실수요자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대출 가능성이 닫히기 전에 미리 대출을 받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반대로 대출 규제가 완화되면 기대 심리가 커지면서 시장이 과열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 핵심이며,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조직의 힘은 방향의 일관성에서 나온다. 현재와 같이 경제정책 리더십 공백이 커진 상황에는 더욱 그렇다. 혼선 없는 금융정책은 가계부채의 수치상 조절을 넘어 국민의 주거 안정과 더 나아가 부동산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전제조건이자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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