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극우화' 청년층을 헌정질서 안으로 다시 포용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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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5-0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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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12월 7일은 윤석열 친위쿠테타가 불발하고 1차 탄핵 투표가 실시된 토요일이었다. 여의도 집회에 집결하는 군중으로 여의도행 지하철 전동차는 물론 지하철역까지 내 발로 걸어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붐볐다. 여의도역을 나와 여의도 공원에 도착한 순간 처음 눈에 들어온 장면은 젊은 여성들이었다. 중장년층이 다수일 것이라는 예상이 깨진 것은 감탄이었고 젊은 남성이 눈에 띠지 않는 것은 의아함이었다. 일말의 답은 귀가하는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듣게 된 20대 남성 4명의 대화 내용이었다. 당초 약속한 친구 한 명이 나오지 않은 이유를 그중 한 명이 묻자 ‘여의도 집회에 갈까 고민 중’이라는 답변에 다른 한 명이 ‘뭐하러 간데, 이리 오라고 해!’라고 핀잔을 주었다.

한국의 파시즘은 박정희정권의 3선개헌, 유신체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국민동원령’ 방식으로 산업화를 추진했다. 정경유착, 지역차별, 노동탄압, 반공주의는 파시즘의 토양이 되었다. 새마을운동은 대중동원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광주학살’로 재집권한 파시즘세력은 10년에 걸친 집권 동안 파시즘 수혜세력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득권을 강화했다. 시민항쟁을 통해 성취한 형식적 민주주의는 문민화와 평화적 정권교체를 달성했지만 내란수괴 전두환의 활보로 상징되는 파시즘의 복권과 일상화는 시민의 의식마저 규정했다. 이제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신화는 내란을 ‘가성비’ 좋은 정치적 투기로 만들었다. 대통령의 내란행위는 ‘통치행위’로서 헌법 위의 권한으로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 ‘헌법은 만들어 놓고 잊어버린다’는 냉소주의적 현실은 절차적 민주주의의 얇은 표피에 덮힌 대한민국 파시즘 체제의 실상을 부드럽게 표현할 뿐이다. ‘군면제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다’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거짓말을 ‘무한 리필’하면서 자충수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

윤대통령의 거부권정치가 대행체제에서도 반복되면서 정치안정에 대한 기대는 다시 연기되었다. ‘여야 합의 부재’를 빌미로 마은혁 후보자의 헌법재판관의 임명을 거부하는 최상목 권한대행의 논리는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궤변이다.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여야 합의 부재”를 이유로 헌법재판관에 대한 형식적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보다 “여야 합의”에 더 강한 규정력을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계엄·내란의 연장이다. 경제부총리로서 경제안정에 진심이라면 조속한 헌정질서의 회복과 정치안정이 선결조건임을 잘 알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회복력을 가졌다. 작금의 계엄·내란 사태는 이 회복력의 길이와 깊이를 묻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대통령은 물론 적지 않은 정치인들을 포함하는 권력층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에 무감각하거나 관대하여 취약하다. 그만큼 지난 60년 동안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규정하는 힘으로서 파시즘이 어느덧 일상화되었다.

내란의 방아쇠를 당긴 서울지법 난동사태에서 표면화된 2, 30대 청년층의 극우화는 한국 사회에서 20년 이상 끓어오른 좌절과 분노의 산물이다. 2007년 ‘88만원 세대’(우석훈교수)는 청년층의 좌절이 저임금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2011년 경향신문이 처음으로 사회적 의제로 제기한 ‘삼포세대’는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불안과 소외를 집약적으로 표현했다. 이후 연애, 결혼, 출산에 더하여 취업과 내 집 마련마저 포기한 ‘오포세대’, 급기야 ‘N포세대’는 청년층의 사회경제적 배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진학율이 80%를 넘던 청년층에게 ‘눈높이를 낮출 것’을 주문하면서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신설했다. 박근혜 정부는 실업율 통계를 취업률 통계로 변경하고 ‘부자 되세요’를 덕담으로 건넸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일자리 게시판과 함께 의욕적인 출발을 보였지만 부동산정책의 실패로 청년층을 ‘영끌족’으로 만들었다. 그 사이에 청년은 ‘부모보다 못살게 된 최초의 세대’로 분류되었다. 윤석열정부는 전세사기 사건들에서 사기범의 범죄수익을 환수하여 청년의 ‘알토란 같은’ 재산을 회복시켜주는 데는 피해 청년들의 자살에도 불구하고 무심했다. 파시즘은 이런 ‘사법정의의 부재’를 헌정질서 부정의 명분으로 먹고 자란다. 부동산 투기에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된 청년층은 ‘동학개미’을 거쳐 ‘서학개미’로 옮겨나갔고 가상화폐시장에서는 ‘김치 프리미엄’을 창설함으로써 청년층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대박’임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오늘날 적지 않은 청년이 ‘알바’를 평생직업 삼아 삶을 끌고 가면서 이번 생은 망한 ‘이생망’으로 절망하고 있다. 이들에게 가족은 소망사항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가부장적 남성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성청년은 책임감을 감당하지 못하고 좌절한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학교 명예교수도 청년 남성들이 보수적이 되는 원인으로 일자리 부족을 지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적은 일자리를 두고 너무 많은 사람이 경쟁할 때 미국과 유럽에서는 젊은 남성들이 이민자들을 탓하지만 한국에서는 젊은 여성을 탓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20대 남성은 80%가 남성차별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20대 여성은 21세기 들어 평등지향적인 자유주의 경향이 꾸준히 강화되는데 반해 남성에게서는 2015년 이후 보수화 경향이 급격하게 강화되는 상반되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 그가 제안하는 대책은 경쟁 완화가 아니라 “좋은 정규직 일자리” 창출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의 ‘일자리 무개념’은 억압적 노동정책을 낳았을 뿐만 아니라 ‘여가부 폐지’ 공약이 겨냥하는 양성 갈라치기는 여성을 청년 남성의 분노가 향하는 좌표로 확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은둔고립 청년’을 위한 대책은 존재 사실의 확인 이외에는 없다. 저임금 노인일자리를 창출한 덕분에 고용지표는 개선되어도 청년취업실태는 악화되고 있다. 청년층이 선호할 만한 좋은 일자리는 대통령과 정부가 앞장서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로 수출하고 있다. 이런 역주행은 청년의 절망을 더욱 키우고 있다.

계엄·탄핵 사태는 물론 헌재 심리를 지휘하고 있는 윤대통령 개인에 대한 비난은 아무리 지나쳐도 부족함이 없다. ‘내란 수괴’는 물론 내란사범 모두에 대한 사면 제한이 파시즘 체제의 철폐를 향한 첫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눈앞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그의 헌정질서 파괴에 적극 동조하는 집단뿐만 아니라 그의 선동에 휘둘려 폭력행위를 범하는 집단에 대해서도 엄단이 필요하다. 그 이면에서는 약자와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전형적인 파시즘 행태를 근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대표적으로 사회적 참사의 희생자들이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거들어주어 ‘사회적 빚’을 갚을 필요가 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는 신화만을 되풀이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이다. 정부가 나서 청년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다하여 생활안정과 청년의 자긍심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파시즘의 뿌리를 자르는 급선무이다. 아마도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과제는 정치경제적 기득권층의 토양이 되는 지역차별을 불식시키고 지역균형발전을 핵심국정과제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지역등권의 지방자치는 균형발전 위에서만 튼튼할 수 있다. 오늘날의 경제위기의 원인이자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정책과제에서 실종된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가 극우화한 청년층을 헌정질서 안으로 다시 포용하는 길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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