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중국 상하이 다광밍 영화관 입구에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花樣年華)' 대형 포스터가 새로 걸렸다. 다광밍 영화관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2000년 '화양연화'가 중국 본토 첫 상영을 한 곳이다.
포스터는 화양연화 남주인공 차우(량차오웨이 분)가 뒤에서 여주인공 첸 부인(장만위 분)을 껴안는 모습을 담았다. (영화 속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장면이다). 첸 부인이 입은 흰색 치파오와 붉은색 코트의 선명한 대비는 마치 도덕적 책임과 내면의 욕망의 충돌을 보여주는 듯하다. 금지된 사랑에 빠진 두 남녀의 이야기, 화양연화의 큰 주제다.
왕자웨이 "불륜 아닌 비밀에 대한 영화"
왕자웨이 감독이 화양연화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에 쿠키영상을 더한 감독판을 새로 공개해 화제다.
25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영화 화양연화는 개봉 엿새 만에 박스오피스 수입 4000만 위안도 넘어섰다고 시나망 등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난처한 순간이다. 여자는 수줍게 고개를 숙인 채 남자에게 다가올 기회를 주지만, 남자는 다가설 용기가 없고, 여자는 뒤돌아선 후 떠난다.
원작인 홍콩 유명작가 류이칭의 소설 '떼뜨베슈(對倒)' 속 한 구절을 인용한 자막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1962년 홍콩이다. 같은 날 한 아파트로 이사 온 두 남녀, 그들은 각자의 배우자가 외도하는 것을 알게 된다. 동병상련의 상처로 서로를 연민하다가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사랑과 도덕적인 관념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랑한다 입 밖으로 말할 수조차 없는 두 남녀는 결국 헤어짐을 선택한다.
훗날 남자는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앙코르와트 사원 기둥 구멍에 영원히 비밀로 묻는다. 인생에서 꽃처럼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을 뜻하는 화양연화는 불온했지만 아름다웠던 사랑,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과거를 뜻한다.
왕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화양연화는 불륜이 아닌, 비밀을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말했다. 왕 감독 특유의 과감한 절제의 연출, 사랑에 빠진 남녀의 미묘한 심리묘사, 치파오를 입은 장만위(장만옥)의 관능적 아름다움, 량차오웨이(양조위)의 우수에 가득 찬 눈빛까지, 진부한 남녀의 불륜 스토리는 불후의 명작이 됐다.
편의점에서 사랑에 빠진 량차오웨이·장만위?

25년 후, 왕자웨이 감독이 첫선을 보인 감독판은 원작보다 분량이 5분 늘었다. 영화가 끝나고 이어지는 5분짜리 쿠키 영상에서 감독은 두 남녀를 2000년대로 옮겨 놓고 새로운 엔딩을 선사한다.
마치 평행우주 이론처럼 2001년 홍콩의 한 편의점에서 만나는 두 남녀. 치파오는 청바지로, 백열전구의 희미한 불빛은 냉장고 형광등으로, 오래된 벽시계의 똑딱거리는 시계침 소리는 전자레인지 딩동 소리로 바뀌었다. 이곳서 두 남녀는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긴다.
물론 이는 1962년 차우와 첸 부인의 재회는 아니다. 다만 관객들은 만약 두 남녀가 2000년대 살았다면 이런 사랑을 했을 것이라 상상하며 위안을 삼을 뿐이다.
왕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내 원래 아이디어에 더 가까운 버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시대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이 다르고 이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영화 속에 담았다"고 전했다.
사실 화양연화는 원래 왕 감독이 전기밥솥, 라면, 24시간 편의점의 등장에 따른 남녀 관계 변화를 그리려고 구상한 영화다. 영화 제목도 화양연화가 아닌 '음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三個關於食物的故事)'였다고 한다.
쿠키영상은 2000년대 왕 감독이 24시간 편의점에 대한 스토리를 구상할 때 찍은 영상을 25년 만에 대중에 공개한 셈이다.
"좋은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공감"
이번 화양연화 감독판은 오로지 영화관에서만 상영되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되지 않는다.
왕 감독은 “관객들에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의식감(儀式感, 행동을 의식화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양연화는 25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영화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국 한 매체는 ”절제된 사랑이든, 밥솥부터 편의점까지 나타난 남녀 관계의 변화든, 영화를 통해 자신만의 화양연화를 회상하든, 이유가 어찌됐든 영화는 다양한 연령대·지역의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유명 여배우 둥리야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랑뿐만 아니라 시간과 기억에 관한 것도 다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배우 저우둥위는 "좋은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숙성돼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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