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와 방위비 등으로 유럽을 향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독일 총선이 23일(현지시간) 치러진다. 차기 독일 총리로 유력시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기민당) 대표가 정치적·경제적 혼란 속에 빠진 독일, 나아가 유럽의 희망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약 6000만명의 유권자가 630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이번 독일 총선에서는 중도 보수 성향의 기민당·기독사회당(CDU·CSU) 연합이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퇴임 이후 3년 만에 정권을 탈환할 것이 유력시된다.
22일 발표된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자(INSA)의 마지막 설문 결과(유권자 2005명 대상 20~21일 조사)에 따르면 CDU·CSU 연합이 지지율 29.5%로 선두를 기록했고 극우 성향의 독일대안당(AfD)이 21.0%로 2위를 차지했다. 올라프 숄츠 현 독일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SPD)은 15.0%로 3위에 머물렀고 녹색당(12.5%), 좌파당(7.5%) 등이 뒤를 이었다.
예상대로 CDU·CSU가 1당으로 올라설 경우, 연정을 구성해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서 메르츠 대표가 총리를 맡을 것이 유력시된다. 1955년생으로 올해 69세인 메르츠 대표는 메르켈 전 총리와 정치적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던 가운데 비교적 중도 성향이었던 메르켈 전 총리에 비해 한층 보수적이고 친기업 성향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메르츠 대표는 국방력과 경제력 강화를 통한 '강한 독일', 나아가 '강한 유럽'을 외치고 있다. 그는 총선을 하루 앞둔 유세에서 "나와 함께라면 독일은 유럽연합(EU) 내에서 다시 강력한 목소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우리의 군대를 강화하고 비상시 그들이 우리 국가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해야만 다시 세계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독일뿐만 아니라 특히 우리 유럽인들에게도 적용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채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내에 유럽 주요 업체들을 겨냥해 철강·알루미늄 관세와 상호 관세 및 수입 자동차 관세 등을 예고했고, 동시에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에 방위비 인상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논의에서는 침략국인 러시아와 밀착하는 반면 전쟁 피해국인 우크라이나와 유럽 국가들을 배제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전방위적으로 유럽을 몰아붙이고 있다.
따라서 EU가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경제적 혼란 및 트럼프의 공세 등으로 설상가상의 위기에 처한 가운데 메르츠 대표가 트럼프 2기에 맞서 유럽을 이끄는 '구원자'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유세 중인 메르츠 대표에게 사전 녹화 영상을 통해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 독일과 유럽은 당신의 지도력이 필요합니다"라고 지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아울러 메르츠 대표는 최근 독일 ZDF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영국, 프랑스와의 협력을 통한 유럽 자체 핵우산 구상을 밝혔고,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를 지원하지 않을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며 유럽 전체의 어젠다를 제시했다. 이 같은 메르츠 대표의 구상에 전통적으로 독일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프랑스와 영국 정부 관리들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 혹은 유럽 기업을 겨냥할 수 있는 관세 위협을 포함한 경제 계획에 맞서 유럽 대륙을 이끌 유럽 국가 정상이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며 "트럼프에 충격받은 유럽은 독일 선거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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