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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가 3월 정기 주주총회 시즌 돌입을 앞두고 올해 경영 전략을 구체화하는 작업에 부심하고 있다. 주요 화두로는 인공지능(AI)·반도체 경쟁력 강화, 경영권을 둘러싼 공방,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 마련 등을 꼽을 수 있다.
상당수 기업이 AI·반도체 전문가를 이사회에 신규 포진하며 기업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경영권 다툼 중인 기업은 기업가치 제고를 강조하며 소액주주 설득에 여념이 없다. 정부 역점 과제인 밸류업 관련 각종 이행 과제가 주총 안건에 포함될 전망이다.
2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다음 달 정기 주총에서 전영현 DS(반도체)부문장(부회장)과 송재혁 DS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사장)를 각각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한다. 신규 사외이사로는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합류한다.
삼성전자가 재무통(CFO) 대신 반도체 전문가를 대거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건 시장 경쟁력 복원을 위해서다. 고부가가치 HBM(고대역폭메모리)은 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경쟁사에 밀리고 범용 D램은 CXMT 등 중국 업체의 추격에 직면한 상황에서 사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전문가 중심으로 개편해 의사 결정 속도를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전 부회장은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입사해 D램과 낸드플래시 개발 업무에 수십 년간 종사한 국내 최고 반도체 전문가다. DS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을 겸직하며 메모리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10나노급 4세대칩(D1a) 재설계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송 CTO도 공정과 소자 개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차기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에 내정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인텔 선임 엔지니어를 거쳐 2001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며 AI와 컴퓨터 비전 반도체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딥시크 쇼크 속 미·중 빅테크 추격에 나선 네이버는 창업주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가 3월 주총을 통해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한다. AI 투자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라 창업주의 과감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네이버는 최근 자체 개발한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전 세계 AI 산업 변화 흐름에 맞춰 저비용·고성능 중심으로 개편했다.
주요 주주 간 경영권 분쟁 여파가 주총까지 이어지는 사례로는 고려아연과 코웨이 등이 있다. 지난해 9월 이후 반년 넘게 지속된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다툼은 3월 말로 예정된 고려아연 주총에서 결판이 날 것으로 관측된다.
영풍·MBK 측이 제기한 고려아연 임시주총결의에 대한 법원의 효력정지 가처분 결과가 이르면 3월 초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사 수 상한 설정 등 임시주총에서 통과된 6개 안건 효력이 정지되면 영풍·MBK 측이 40% 넘는 높은 지분율을 바탕으로 고려아연 이사회에 신규 이사를 다수 진입시킬 수 있다.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지 않으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임시주총에서 선임된 이사 7명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영권을 무난히 지켜낼 것으로 보인다.
코웨이는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와 이사회 개편을 놓고 분쟁을 벌이고 있다. 얼라인은 이사회 독립성 강화를 위해 집중투표제 도입과 이남우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한 반면 코웨이는 현 이사회가 충분히 독립성을 갖추고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은 다음 달 주총에서 기관·개인 투자자 지지를 얻기 위한 주주 서한을 각각 발송한 상태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조카의 난'을 일으켰던 박철완 전 상무가 주주제안을 접수하지 않으면서 올해 주총은 큰 이슈 없이 지나갈 전망이다.
지난해 밸류업 공시에 나섰던 상장사들이 주총에서 밸류업 이행 안건을 다룰지도 투자자들의 관심사다.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계획 가이드라인은 밸류업 이행 공시를 연 1회 이상 주기적으로 할 것을 권하고 있다. 다만 상장사 밸류업 공시가 실제 이행 공시로 이어진 사례는 메리츠금융지주, LG전자, 에프앤가이드 등 소수에 그치고 있다. 이에 올해 주총 시즌에는 밸류업 이행 안건이 다수 상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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