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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오늘은 중세 시대 스페인 이슬람 정권의 심장부였던 코르도바에서 아랍과 이슬람 문명을 조망한다. 800년 가까이 두 문명, 두 종교, 세 대륙이 서로 만나 갈등보다는 화합을 추구했던 ‘콘비벤시아(Convivencia:공존)’의 정신을 되새긴다. 침공한 아랍장군 이름을 딴 지브롤터 해협이 뚫리는 711년부터 마지막 이슬람 나스르 왕조의 궁전이었던 알함브라가 함락당하는 1492년까지 무려 781년간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은 이슬람 문명의 직접적인 영향과 통치를 경험했다. 스페인 역사와 문화 이해에서 이베리아 반도에서 명멸했던 800년 아랍의 정치사나 이슬람 문명에 대한 공부가 꼭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우리 세계사 교육과정이나 일반인들의 인식 속에는 이슬람 문명의 영향이나 중세 기나긴 이슬람 지배시기의 공존의 역사에 대해서는 스페인 여행을 하기 전에는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다. 특히 유럽의 르네상스나 근현대기 유럽 문명사, 특히 예술 분야에 끼친 이슬람 문명과 거버넌스의 공헌은 대단한 수준이었다.
그 오랜 기간 이슬람 정권이 스페인에서 존속할 수 있었던 기본 통치철학은 콘비벤시아였다. 공존의 정신에 따라 기독교인, 유대인, 무슬림, 베르베르인들은 출신과 종교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잊혀지고 소외되었던 그리스 학문이 아랍어로 고스란히 되살아났고, 축적된 지식은 톨레도 번역소에서 라틴어로 재번역되어 유럽 르네상스가 일어나는 단단한 원동력이 되었다.
콘비벤시아 공존이 실현되던 중심도시는 코르도바였다. 10세기경 이슬람 왕조의 창시자였던 칼리프(최고 통치자) 압둘 라흐만 3세(929~961)는 코르도바를 수도로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당시 코르도바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카이로와 함께 세계 최대 규모의 메트로폴리탄이었다. 인구 50만명의 코르도바는 대륙과 바다를 연결하는 피혁과 직물교역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정치적 안정과 물질적 풍요는 학문과 문화 수요를 창출하며 전 세계 학자들을 불러들였다. 80개 이상의 도서관이 보유한 40만권의 장서와 600개 이상의 모스크가 종교와 학문의 전당으로 지식 생태계를 견인했다. 특히 의학, 수학, 천문학, 철학, 식물학 등 분야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콘비벤시아의 또 다른 상징은 세비야 대성당과 히랄다 탑, 그리고 맞은편의 알카사르왕궁이다. 원래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되던 건축물은 대성당 본당으로 탈바꿈했지만, 히랄다 탑은 이슬람 첨탑(미나렛)을 그대로 두고 기독교 종탑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대성당 안에 콜럼버스의 관이 안치되고 있어 기독교와 이슬람, 신대륙이라는 세 개의 문명사적 서사가 혼재되어 있는 의미도 남다르다. 이슬람 양식으로 지어진 알카사르 왕궁도 기독교 시대에 증축과 개조를 거쳤지만, 납작한 돌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벽면 디자인이나 화려한 페르시아형 분수와 중정 구도에서 스페인 이슬람 건축의 가장 특징적인 무데하르 양식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
물론 콘비벤시아 문화유산에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Alhambra) 궁전을 빼놓을 수는 없다. 1031년 코르도바 왕국이 해체된 후 이베리아 반도에는 약 200년간 ‘타이파’라 불리는 독립적인 이슬람 공국들이 난립하게 된다. 이를 수습하고 가장 최후까지 존속한 마지막 이슬람 정치 세력이 그라나다의 나스르 왕조(1248~1492)였다. 바로 나스르 왕조의 궁전이 알함브라이다. 아라베스크 문양과 벽면을 꽉 채운 기하학적 조각, 지상의 천국을 상징한 아름다운 정원 등은 방문객들의 찬사를 자아낸다. 아라베스크는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그리거나 묘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이슬람 율법의 틀 속에서 신의 속성과 모습을 표현한 이슬람 예술의 정수다. 반복과 대칭을 기본 구도로 하는 아라베스크는 시작도 끝도 없는, 좌우상하와 동서남북을 초월하는 신의 무한함과 절대성을 상징한다. 1492년 1월, 알함브라 궁전은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1세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2세 왕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이한다. 두 사람의 결혼에 의해 통합된 스페인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에 800년 이슬람의 지배를 청산하는 거룩한 사명을 천명했다. 이슬람의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아브딜은 자신의 가련한 시민들을 보호해준다는 조건으로 금화 3만냥과 궁전을 바치고 항복을 결심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라나다의 주민들은 무참한 학살과 추방을 당해야 했다. 예술을 사랑하고 유난히 눈물이 많았던 보아브딜은 약자의 비애를 처절하게 되뇌며 정든 알함브라 궁전을 떠나갔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지배가 종말을 고하고 가톨릭 스페인이 새롭게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었다. 망명길에 나선 보아브딜은 멀리 궁전이 내려다보이는 라스 알푸자라스 언덕에서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영광과 애환을 찬찬히 눈에 담고 가슴에 심었다. 그리고는 800년 전 자신의 선조들이 건넜던 지브롤터를 다시 건너 모로코의 페스로 떠나면서 애끓는 심정으로 알함브라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고했다.
콘비벤시아 전통은 건축과 문화유산에만 머문 것은 아니었다. 톨레도 대성당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학문의 전승과 번역 작업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톨레도는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이른 시기인 1085년에 가톨릭 세력이 재탈환했다. 콘비벤시아 전통에서 축적된 이슬람 학문의 수준과 중요성을 간파한 톨레도 대주교 라이문도 데 사우베타(1126~1151년 재임)는 대성당 도서관에서 체계적인 번역 작업을 주도했다. 종교와 출신을 초월한 전문 번역가들을 동원하여 아랍인 학자들이 축적해 놓은 그리스-로마 철학과 학문 전통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후원했다. 당시 스페인은 아랍학자들이 주도한 그리스-로마 철학의 재해석으로 ‘안달루시아 철학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학문적 깊이에서 정점에 달해있었다. 그리스 철학 연구에서는 특히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이 중심축을 이루었다. 서양 철학사에서 아베로스(Averroes)로 알려진 이븐 루시드가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독보적 계승자로 우뚝 섰다.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분석, 재해석함은 물론 이를 집대성하여 후일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의 학문 부흥에 단단한 초석을 제공해 주었다. 그 결과 중세 유럽 최고의 신학자로 추앙받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가 그의 저서 <신학 논고>(1265~1274)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사상에 기독교의 관점을 접목시키는 신학 연구의 새 장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콘비벤시아 정신은 가톨릭의 재정복(레콩키스타)으로 서서히 변질되었다. 새로운 스페인 통치자들은 1492년 3월 31일,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한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에게 4개월 이내에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스페인을 떠날 것을 명령한다. 1502년에는 제국 내 모든 무슬림들도 기독교로 강제 개종하거나 추방을 명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콘베르소’라 불리는 개종한 유대인과 '모리스코‘라 불리는 개종한 무슬림들은 스페인에 남을 수 있었지만, 재산을 포기하고 종교적 표식이 있는 의복을 착용해야 했으며, 거주 이전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종교 재판의 감시 대상이 되면서 생명의 위협에 직면했다. 박해를 피한 일부 유대인들은 네덜란드로 가서 국제금융이나 국제무역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많은 수의 유대인들은 오스만 제국 술탄의 초대로 이스탄불로 망명하여 500년 이상 오스만 제국의 고위관리나 교역상인으로 성공했다. 더욱이 1609년부터 1614년까지, 스페인 왕 필리프 3세는 모리스코(개종한 무슬림) 추방령을 내려 약 30만명의 모리스코들이 북아프리카 등으로 추방되면서 콘비벤시아 정신은 막을 내렸다. 이 칙령은 스페인 역사에서 종교적 관용의 시대가 끝나고 종교적 박해와 강압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전환기적 사건이 되었다.
유럽-중동-아프리카 세 대륙이 이어지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과 가톨릭이 만나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품어 안으면서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학문을 집대성하고, 창의적 정신으로 예술과 건축, 사상과 철학에서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었던 힘은 다름 아닌 콘비벤시아 정신이었다. 공존의 문명이 품어내는 아름다운 상생의 메가 시너지 정신은 유럽과 이슬람권이 충돌하고 아랍과 이스라엘의 분쟁이 극심한 오늘날 더욱 절실히 와 닿는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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