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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의 Indonesia Story] 프라보워 정부의 강제적 예산 삭감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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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입력 2025-02-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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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인도네시아 자바의 농촌 마을에는 공동체적 관행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는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참여하는 야간 순찰로, 마을 구성원 모두가 치안 유지에 공동 책임이 있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늦은 밤 한 무리의 주민이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활동은 일정한 범죄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물론, 이들이 밤새 순찰을 이어가지 않고 동네 한 바퀴 도는 정도로 마무리하기에, 철저한 방범 활동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가 조사했던 마을에서는 짧은 순찰을 마친 주민이 야식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일부는 카드 게임을 하며 밤을 보내기도 했다.

순찰 임무를 맡은 주민들은 마을 내 대다수의 집을 방문해야 한다. 이는 또 다른 공동체적 관행 때문으로, 이들은 각 가정에서 정해진 장소에 놓아둔 쌀을 수거해야 한다. 최근에는 쌀 대신 소액의 현금으로 바뀌기도 했지만, 어떤 형태이든 마을에서는 이를 모아 빈곤한 이웃을 돕거나 공동 행사를 보조하는 데 활용한다. 이 관행은 ‘한 줌의 쌀’이라고도 불리는데, 매일 자신이 소비하는 쌀의 일부를 나누어 기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십시일반처럼 이 관행은 개인의 작은 희생을 통해 공동체 구성원 간 상호부조를 실천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야간 순찰과 ‘한 줌의 쌀’을 언급한 이유는 최근 대통령궁 대변인이 이를 이용하여 정부 정책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가 거론한 정책은 프라보워 대통령이 2025년 첫 대통령령으로 발표한 정부 부처 예산 절감이었다.

프라보워가 제시한 절약 방식은 총 15가지 항목으로, 문구류나 기념품 구입 예산, 기념행사나 출장 예산 등이 포함되었다. 이를 놓고만 보면, 이 정책은 ‘한 줌의 쌀’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또한, 새 정부 출범 100여 일이 지난 시점에 발표되었음을 고려하면, 공직 사회의 기강 확립과 민생 예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시도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이 정책이 ‘한 줌의 쌀’이 아닌 ‘곳간’ 자체를 대상으로 한 조치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25년 인도네시아 정부의 총예산은 3,621조 루피아로,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약 320조 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프라보워가 명령한 예산 절감 규모는 306조 루피아로, 전체의 8.5%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게다가 감축 비율은 모든 부처에 균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예산을 배정받은 국방부(166조 루피아)와 두 번째로 많은 경찰청(126조 루피아)은 삭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반면, 국토건설부, 보건부, 사회부, 종교부,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부, 재무부와 같이 50조 루피아 이상의 예산을 배정받은 부처는 수십조 루피아에 이르는 삭감을 감수해야 했다. 이는문구류나 기념품 비용 절감만으로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예산 삭감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부처는 국토건설부였다. 애초 110조 루피아이던 예산 중 74%에 해당하는 81조 루피아가 감액되었다. 예산 규모 자체는 크지 않지만, 신수도청은 예산의 75%를 줄여야 했으며, 주택부와 청소년·체육부 또한 60%대 감액을 통보받았다. 예산 배정 규모가 큰 부처에 속하는 교통부는 31조 루피아 중 17조 루피아(55%), 고등교육 및 과학기술부는 57조 루피아 중 22조 루피아(39%)를 삭감당했고, 보건부, 종교부, 재무부 역시 20% 내외의 예산 감축이 요구되었다.

‘한 줌의 쌀’이라는 비유와 달리 이번 예산 절감 조치는 대통령의 일방적인 폭거라 평가될 수 있다. 먼저, 절차적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예산 심의와 확정이 국회의 권한임에도, 프라보워는 이미 확정된 예산을 자의적으로 수정했다. 이러한 논란을 의식한 듯, 그는 감축된 새 예산안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요청했지만, 실질적 심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예산 감축이 각 부처와의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강제되었다는 점이다. 행정부 부처를 기존 34개에서 48개로 대폭 확대한 프라보워의 이전 정책과도 모순되었다. 그는 행정부의 역량 강화를 주장하며 비대해진 조직을 옹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예산 감축을 단행함으로써 오히려 그 운영 능력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각 정부 부처는 예상치 못한 예산 절감 명령에 순응하는 태도를 취했다. 장관 중 누구도 감축안의 정당성이나 근거를 문제 삼지 않았으며, 이들의 관심은 대통령령을 어떻게 이행할지에 초점 맞추어졌다. 의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산권이 침해되었음에도 정치인 중 누구도 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미디어 보도 또한 감축안에 대한 사실 전달에 집중되었고, 그로 인한 영향에 대한 논의는 제한적이었다. 일부 보도를 통해 각 부처의 본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지, 경제 성장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단편적으로 다루어지는 데 그쳤다.

대통령령을 절대적으로 수용하려는 초기 분위기는 한 달여가 지난 2월 중순에 접어들며 다소 변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각 부처의 예산 감축안이 구체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촉발된 것이다.

예산 감축 규모가 가장 큰 국토건설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국토건설부 장관은 대통령령에 대해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며, 부처 본연의 업무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예산을 절감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예산의 74%가 삭감된 상황에서 이 주장은 공허한 말 잔치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애초 예산안에는 총 47,763km의 도로와 563km의 교량을 보수하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논의 중인 감축안에 따르면, 도로와 교량 보수 계획은 0km로 설정되었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향후 1년 동안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도로와 교량 보수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국토건설부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부처의 감축안이 공개되면서 대통령령이 미칠 광범위한 영향이 뚜렷해졌다. 미디어가 주목한 주요 문제는 계약직 직원 해고, 월급 지급 유예, 신규 채용 중단, 기존 사업 철회, 장비 활용 비율 축소 등이었다. 기상청을 예로 들면, 장비 활용 예산 삭감으로 인해 기상 예측의 정확도가 기존 90%에서 60%로 감소하고, 재해 정보 전달 시간이 3분에서 5분 이상으로 지연될 것이라 예상되었다. 이처럼 감축안 내용을 보도하는 것만으로도, 예산 삭감이 단순히 효율성 제고 차원이 아니며 필수 행정 서비스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조치임을 인지할 수 있게 했다.

예산 감축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나타나자, 프라보워는 자신의 정책이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는 자바의 전통 개념인 ‘작은 왕’을 언급했다. 이는 사익을 위해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는 관료를 일컫는 표현이었다. 프라보워는 예산 감축에 대항하는 관료의 존재를 지적하며, 이들이 자신을 ‘작은 왕’이라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를 통해 그는 예산 감축 반대가 사익을 위한 것임을 강조했고,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프라보워의 비타협적 태도가 확고해지자, 이는 곧 정치권의 지지로 이어졌다. 프라보워와 연합한 원내 제2당 당수는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비판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명령을 모든 당원에게 내렸다. 프라보워의 소속 정당은 갓 임기를 시작한 그를 2029년 대선 후보로 추대하며 절대적 충성을 맹세했다.

프라보워가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되었을 때, 외국 학자와 미디어가 우려한 부분은 그의 독재자적 성향이었다. 군인 출신이라는 경력, 과거의 반인권적, 억압적 행보, 그리고 독재자 수하르토와의 긴밀한 관계 등이 이러한 부정적 시각의 근거였다. 프라보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다. 이는 수십 년 전 경력과 관련된 것이며, 그가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든 이후의 행보를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예산 삭감 조치는 프라보워에 대한 우려가 결코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는 뚜렷한 이유나 사전 논의 없이 정책을 강행했으며,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조금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보는 상명하복 문화를 체화한 그가 이런 태도를 바꿀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예산 삭감과 관련해 주목할 또 다른 측면은 신수도청과 국토건설부가 가장 높은 감축 비율을 요구받았다는 사실이다. 두 부처의 핵심 사업인 신수도 건설과 인프라 개발은 전임 대통령 조코위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정책이자 그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따라서, 두 부처의 예산 삭감은 조코위의 정치적 유산을 지우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 조코위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지만, 프라보워가 언젠가는 조코위를 뛰어넘으려 하리라는 점은 충분히 추정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집권 후 불과 3개월 만에 조코위의 핵심 정책을 부정하는 조처를 감행하리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번 예산 삭감 정책을 통해 프라보워는 자신에 필적할 만한 인물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는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앞으로의 정책 또한 오로지 자기 의지에 따라 추진할 것이라는 선언으로 이해될 수 있다.

지난 20여 년간의 상황만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 사이의 관계를 단정 짓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볼 때, 이 기간 동안 이루어진 꾸준한 경제 성장이 민주적 정치 체제와 병행했음은 부정될 수 없다. 따라서, 프라보워식 행보가 지속될 때, 이전 정부에서 성취한 안정적 경제 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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