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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 연합뉴스"
구글이 9년 만에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청했고 통상 문제를 고려해 우리 정부와 국회가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구글은 2016년 동일한 요구를 했지만 거부 당했고 2023년에는 애플이 지도 데이터 반출을 요구했지만 거절 당했다. 우리 정부가 분단된 대한민국 상황을 고려해 군사정보 유출 등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를 요구했지만 그들이 묵살했기 때문이다.
9년 만에 구글이 같은 요구를 했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질 최고위급 인사가 없다.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있고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 행안부 장관은 탄핵으로 모두 대행체제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빅테크 기업들을 규제하지 말라며 호통 치더니 디지털세를 걷겠다고 나선 유럽연합(EU)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때마침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맡은 제이미슨 그리어 지명자는 우리나라를 콕 집어 "(빅테크 플랫폼 규제 움직임은)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보복관세를 무기 삼아 9년만에 지도 반출을 요구한 구글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불편해 한다는 명분을 들이밀고 있다. 분위기는 심상찮다. 국회에선 보안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지만 한·미 통상관계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자는 얘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역시 관광산업 활성화 등 균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글 맵은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기본 지도 서비스로 이용한다. 사용자 수는 20억명에 달한다. 구글 계정으로 호텔이나 음식점을 예약하면 구글 캘린더와 지도에 자동으로 일정과 장소가 표시된다. 관광객들은 구글 지도를 열어 평점과 리뷰를 보고 음식점이나 관광지를 선택하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은 물론 도보로 이용할 때도 지도를 켜 놓고 움직인다. 한국에서는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국내 서버에 데이터를 올려 놓고 사업을 진행하면 되는데 안한다. 국내에서 서비스하면 국내 매출이 발생하고 세금도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재무관리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구글코리아의 추정 매출은 약 12조1350억원에 달한다. 유튜브 매출을 포함해서다.
그런데 구글코리아가 낸 세금은 155억원에 불과하다. 앱마켓 수수료, 유튜브 광고 수수료, 유튜브 프리미엄 멤버십 요금으로 번 매출은 모두 구글코리아가 아닌 싱가포르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법인 매출로 잡힌다. 지도 데이터 반출 요구도 여기에 있다. 해외에서 서비스하고 그곳에서 매출을 발생시키면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한번 터진 둑은 막기 어렵다. 구글에 반출을 허용하면 애플 측 요구도 허락해야 한다. 네이버, 카카오를 비롯한 우리 플랫폼 기업들은 세금을 비롯해 역차별 받을 우려가 커진다. 더 나아가 중소 IT 업계로 구성된 위치정보 서비스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우려도 있다. 세수도 줄어들고 플랫폼 시장 지배력까지 내준다면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다. 당장의 위기만 모면해서는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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