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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자동차와 기타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유럽 자동차 업계가 타격을 받으면 전기차(EV) 생산 감소로 이어져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3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내각회의에서 "우리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며 곧 발표할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25%가 될 것이며 자동차를 포함한 모든 품목에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EU는 미국을 이용해 왔다"며 "그들은 우리 자동차를 받아들이지 않고 농산물도 사실상 수입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당시인 2018년에도 EU와 중국을 상대로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을 벌인 바 있다.
이번 발표가 현실화되면 유럽 자동차 업체들의 대미(對美) 수출이 위축되면서 판매량 감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유럽 브랜드들은 매년 수십만 대의 차량을 미국에서 판매하며 전기차 라인업 확대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25%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판매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 차량보다 원가 부담이 커 가격 인상 폭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 심리가 위축되면서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 자동차 시장의 위축은 국내 배터리 업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유럽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의 핵심 고객사로, 이들이 생산하는 전기차에는 한국산 배터리가 대거 탑재된다. 실제로 BMW,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과 협력을 확대하며 전기차 생산을 늘려왔다. 따라서 유럽 업체들의 판매 감소는 배터리 수요 축소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국내 배터리 업체들은 유럽 자동차 브랜드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BMW와 폭스바겐에 원통형 및 파우치형 배터리를 공급하며 BMW와는 전기차 전용 배터리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삼성SDI는 메르세데스-벤츠와 협력을 강화하며 고성능 프리미엄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SK온은 유럽 주요 자동차 브랜드들과 협력하는 동시에 포드와 합작법인을 통해 북미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해 전기차 생산을 늘려왔으며,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 기업들과의 협력도 확대돼 왔다"며 "그러나 미국 내 유럽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들면 배터리 수요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업체들이 유럽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양한 시장으로 협력 관계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아시아 및 북미 시장 확대를 통해 수요 다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배터리 업체들은 유럽 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아시아 및 북미 등 다른 지역으로 시장을 넓히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며 "특히 미국 내 현지 생산 확대와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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