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드라마, 예능 등 다양한 측면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는 이시언은 자신의 고향을 필름카메라에 담아 책으로 출간했다. 그가 바라본 부산은 어떤 모습일까?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시언 배우 [사진= 엘리필름]
‘할매, 우리 왔다'는 어떤 책인가. 작가님께서 책 소개 부탁드린다. 어쩌다가 책을 출간하게 됐나
-"할매, 우리 왔다"는 부산의 숨겨진 골목과 오래된 공간들을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풍경과 제 옛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라기보다는, 제 추억과 감성이 묻어 있는 곳들을 소개하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 단순하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골목들이 점점 사라지는 걸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컸다. 예전에는 흔하게 볼 수 있던 가게나 건물들이 어느 순간 없어지고, 새로운 것들로 바뀌는 걸 보면서 ‘이 공간들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평소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데, 그걸 통해 남기는 기록들이 저만의 방식으로 부산을 기억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과 사진을 모아 책으로 엮게 됐다. 부산을 좋아하는 분들이나, 옛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처럼 옛날 생각하면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여유의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 책을 보시면서 포근하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셨으면 한다.
배우뿐만 아니라 영역을 확장해서 사진을 공개하며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이어나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사진 찍는 걸 좋아했는데, 특히 필름 카메라로 찍는 게 제 취향이더라. 디지털 카메라나 핸드폰 사진처럼 선명하고 깔끔한 느낌보다는, 필름 특유의 거친 질감이나 예측할 수 없는 색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엔 그냥 취미로 찍었는데, 주변에서 "사진이 참 따뜻하다"는 말을 많이 해 주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시도 하게 되고, 책까지 출간하게 된 것 같다. 사실 배우로서 연기를 하면서도 ‘기록’이라는 것에 대한 애정이 컸다. 연기도 결국 사람의 감정과 순간을 기록하는 작업이지않나. 사진도 마찬가지로 제가 느낀 감정과 공간을 필름에 담는 과정이라 생각해서 더 애정을 가지게 됐던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을 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꾸준히 사진 작업을 이어가면서, 제 시선으로 담아낸 이야기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부산에 대한 추억이 궁금하다. 이시언에게 부산은 어떤 곳인가. 부산에서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나. 꼭 가봤으면 하는 추천 장소가 있나
-부산은 제게 언제나 따뜻한 고향이자, 학창시절 추억이 깃든 특별한 곳이다. 특히 좌천동이 제가 배우 생활하기 이전에 살았던 장소였어서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제 사진 에세이 『할매, 우리 왔다』에도 좌천동 골목길의 모습이 많이 담겨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에세이 표지 사진으로 들어간 장소를 가장 좋아한다. ‘호천마을’ 이라고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인데 계단 오르는 길이 꽤나 가파르지만 부산 전망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뒤로는 좌천동 옛 건물이, 앞으로는 범천동이 펼쳐져있는데, 밤에 계단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면 과거와 현재,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더라.
부산을 방문하신다면 걸어보시길 추천드린다. 출사지로도 참 좋은 곳인 것 같다. 오래된 건물과 골목이 주는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의 옛 정취를 느끼실 수 있을 거다.
사진을 찍으면서 알게 된 필름카메라의 매력은 뭔가
-아무래도 필름카메라의 가장 큰 매력은 '기다림의 미학'이 아닐까 싶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과 달리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사진이 어떻게 나왔을지 기대하고 상상하는 즐거움이 배가 되더라. 요즘은 뭐든 빨리 나오는데 그래서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설렘이 있어 더 매력적인 것 같다(웃음).
사진을 찍기 전과 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어서 달라진 게 있나
-일상 속에서 스쳐 지나갔을 평범한 풍경이나 사소한 순간들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필름카메라는 필름 장수가 제한이 있다보니 매 순간을 신중하게 바라보고 셔터를 눌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변을 더 깊이 관찰하다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 눈에 들어오게 된 것 같다. 아마 사진을 찍는 분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실 거다.

이시언 배우가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
사진을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사진을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참 많았는데, 특히 좌천동 골목길을 촬영하던 날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촬영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 갔는데, 감사하게도 사장님께서 저를 알아봐 주시더라. 반갑게 맞아 주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게 참 감사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짜장면도 정말 맛있었다. 촬영도 재밌게 하고, 맛있는 음식까지 먹어서 그날 하루가 더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책이 출간된 후에는 특히 친척 이모들이 책을 보고 굉장히 좋아하셨다. 다들 부산에서 오래 사셨으니까, 책 속에 담긴 골목과 풍경들이 너무 익숙하고 정겹게 느껴진 것 같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하시더라. 저한테도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라, 가족들과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록이 된 것 같아 더 뜻깊었다.
배우의 경험이 사진을 찍는데 있어서 도움이 된 부분들이 있나. 반대로 사진을 찍는 게 배우 의 일에 있어서 도움이 된 부분이 있나
-연기를 하면서 감정과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 익숙해지다 보니, 사진을 찍을 때도 자연스럽게 순간의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집중하게 되더라. 한 장면 속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게 배우로서 익숙한 작업이라 그런지, 사진에서도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반대로, 사진을 찍으면서 배우로서도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됐다. 사진을 찍을 때는 사소한 순간도 놓치지 않으려고 더 깊이 관찰하게 되는데, 이게 연기를 할 때 캐릭터를 분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주더라. 디테일을 더 신경 쓰게 되고, 순간의 감정을 더 섬세하게 바라보게 된다고 해야 할까.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이시언이 생각하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기준이 궁금하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저는 기술적인 완벽함보다는 사진을 통해 감정을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꼭 구도가 완벽하고, 노출이 정확해야만 좋은 사진이라고 할 순 없다.
저는 필름카메라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까 순간의 분위기나 감정을 더 중요하게 보게 되더라. 사진을 봤을 때 그때의 공기나 냄새, 감정이 떠오르면 그게 좋은 사진 아닐까 싶다. 꼭 남들이 보기에도 멋진 사진이 아니라, 나한테 의미 있고, 다시 봤을 때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사진이면 그게 ‘잘 찍은 사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조건 멋있게 찍으려고 하기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걸 그대로 담아내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래도 저는 수평, 수직 맞추는 것에는 좀 신경 쓰는 편이다 (웃음).

이시언 배우와 [사진= 김호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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