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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키 17' 봉준호 감독 "거장? 이상한 영화 만드는 감독으로 기억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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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5-03-04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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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준호 감독,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신작 '미키 17' 개봉

  • "SF 장르지만 '인간 냄새' 느끼게 하려고 노력…사랑 이야기 강조"

  • "차기작은 '기생충' 이전부터 작업한 애니메이션"

영화 미키17 봉준호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17' 봉준호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수식어가 필요 없다. 봉준호(55) 감독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영화 '미키17'을 볼 이유는 충분하다.

2019년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휩쓴 영화 '기생충' 이후 6년 만이다. 그의 차기작에 전 세계적 관심이 쏟아진 가운데 봉 감독은 신작으로 SF 장르 영화를 내놓았다.

영화 '미키 17'은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익스펜더블) '미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가 17번째 죽음의 위기를 겪던 중, 그가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트되며 혼란을 겪게 되는 내용을 담는다. 분명 지구 밖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왜인지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판타지적 상황과 공간 안에서도 공감과 이해를 부르는 힘. 봉 감독의 무기는 영화 '미키 17' 안에서도 제힘을 발휘했다.

"제가 생각한 '미키 17'의 톤은 '인간 냄새' '땀 냄새' 나는 이야기였어요. 원작은 SF 중에서 하드 SF로 과학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데요. 저는 과학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어서요. 하하. 그런 이야기보다 땀 냄새 나는 인간 이야기에 집중해 각색했어요."

영화 '미키 17'은 에드워드 애시튼의 소설 '미키 7'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이 7번째 미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봉 감독은 17번째 미키의 이야기를 썼다. 원작보다 '미키'를 10회가량 더 죽인 셈이다. 봉 감독은 "'미키'가 더욱 다양하게 일상적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인간이었으면 했고 노동자처럼 보이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건 '사랑' 이야기였습니다. '나샤'(나오미 애키 분)와 '미키'의 이야기에 눈물이 그렁그렁할 때도 있었어요. 영화에서 잘 표현하고 싶었고 '미키'만큼이나, '나샤'도 중요한 캐릭터였습니다. 그는 '미키'를 부서지지 않게 해주거든요. '마셜'(마크 러팔로 분)과도 맞서 싸우는 인물이잖아요. 이런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남녀 주인공으로서 사랑하는 모습이 있고 그런 걸 보여주었다는 게 중요한 지점인 거 같아요."
영화 미키17 봉준호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17' 봉준호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봉 감독은 '미키'가 겪는 일은 특수하지만, 관객들이 공감하고 함께 문제의식을 느끼도록 짚어냈다. 시대적 배경을 2054년으로 끌어내려 근 미래적으로 묘사하고 노동 계급을 짚어낸 것도 이 이유다. 봉 감독은 "미래와 현재를 혼재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원작은 훨씬 더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행성도 매우 먼 거리에 있어요. 이런 시간과 공간을 모두 끌어내려 땅바닥, 즉 현실에 가깝게 했습니다. 극 중 배경은 2054년으로 곧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에요. 지금도 휴먼 프린트를 만드는 회사가 있어요. '귀' 같은 신체 일부를 프린팅하는 데 성공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 인체에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유기적으로 출력을 한 거죠. 2054년에는 '휴먼 프린팅'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어요. 최대한 현대적으로 끌어내리려다 보니 과거적인 요소, 구닥다리 같은 룩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미키'의 기억이 저장되는 장치는 적벽돌처럼 만들고, 오프닝 타이틀은 플립형 시계로 만들고요. 영화에서 첨단 룩은 단 한 곳, 휴먼 프린팅되는 기계 장치뿐이에요. 그 외는 지저분한 화물선, 청소가 잘 안된 창고 같은 느낌으로 디자인했어요. 이런 것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로 뒤섞이며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를 바랐습니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마더' '기생충'처럼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과 달리 '설국열차' '옥자' '미키 17' 등 할리우드 제작 영화들은 SF 장르를 기반으로 우화 요소로 채워왔다. 봉 감독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며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지하철을 타고 다세대 주택 골목을 걷는다'고 하면 우리 머릿속에 자연히 그려지는 풍경이 있잖아요. 공간의 풍경, 냄새,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 그런데 2014년의 필라델피아를 떠올려보라고 하면 선뜻 생각나지 않죠. 유튜브에 가서 봐야 해요. 이런 점이 분명히 다릅니다. 제가 참 놀랐던 게 이안 감독의 '아이스 스톰'을 보면 60년대 말 70년대 초 월남 전쟁 당시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매우 구체적이에요. 그 시대의 공기가 그 가족의 모습에 압축적으로 스며들어있습니다. 보통 일이 아닌데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그걸 해낸 거예요. 나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어서, 다른 언어권의 영화를 하게 되면 SF 혹은 우화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추상화해도 되는 것, 직설적으로 해버려도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요."
영화 미키 17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 17'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관객들은 영화 '미키 17'를 두고 "이상하게 한국 냄새가 난다"고 평하기도 했다. SF 장르이고, 할리우드 배우들이 주를 이루는데도 왜인지 한국 영화의 느낌이 난다는 것이다. 봉 감독의 전작들이 보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죠? '괴물' 속 김뢰하 선배님이 떠오르는 장면도 있었고…. 저 역시도 기시감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작품을 만들 때는 전작과 비슷해지려고 혹은 전작과 달라지려고 접근하지 않아요. 스토리를 연결할 때는 정신이 없거든요. 제 멋대로 날뛰는 토끼들을 한 지점으로 몰고 가는 기분이랄까요? 모든 구멍을 막으려고 일단 쓰고 보는 거죠. 편집실에 가서야 비로소 (작품을) 보게 되고 가끔 기시감을 느끼기도 하는 거죠.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새롭고 다른 점이 있으면 '오, 새로운 게 있어서 좋네?' 하고요. 반복되는 게 나오면 '내가 찍은 건데 당연하지, 뭐'하기도 하고요."

배우들의 연기적인 요소에 관해서도 부연했다. 오스카 수상 후 달라진 점이라고도 했다.

"오스카 이후 작업 방식에 있어서 달라진 건 아닌데요. 이제 미국 배우들도 내가 누군지, 전작이 뭔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져서 수월해졌어요. 캐스팅도 빨라지고 제 전작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고요. 배우들은 아마 제 영화의 톤, 뉘앙스를 느꼈을 거로 생각해요. 제가 배우들의 연기 톤을 다른 작품들에서 보듯이요. 의도적으로 '내 영화니까, 이렇게 연기해 줘'라는 건 아닌데요. 본인들이 그 톤에 대해 생각할 수는 있었을 거 같아요."

봉 감독은 '일파 마셜' 역의 토니 콜렛과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토니 콜렛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한국에서는 현장 편집이 흔한데 할리우드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배우들이 신기해했습니다. 현장 편집분을 보여달라고 하는데 '일파'가 '미키'의 뾰루지를 터트리는 장면을 보며 '이거 완전 봉준호 톤이네'라고 하더라고요.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하고, 우주선이 나와도 저런 톤을 가졌구나. 주인공 이마의 뾰루지를 터트리는구나 하고 좋아하더라고요. 배우들도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고요. 아마 (관객들도) 그런 점을 보신 게 아닐까요?"

영화 미키 17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 17' 스틸컷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의 꽉 닫힌 해피엔딩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봉 감독의 전작들이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며 엔딩을 맞아온 데 반해, '미키 17'은 주인공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며 수미상관을 이루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의 반응이다. 그의 작품을 오래 봐온 일부 관객들은 "봉준호 감독 영화에 해피엔딩이라니 믿을 수 없다"며, '빨간 버튼'이 가지는 상징성과 환상성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에 봉 감독은 웃음을 터트리며 "해피엔딩"이라고 단언했다.

"관객들이 그런 인상을 가지는 이유도 있을 거예요. 악몽 장면도 공들어 찍었으니까요. 잔상을 남기길 바랐거든요. 그 장면 자체를 짧은 단편 영화처럼 찍긴 했습니다. 배우들도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주었고요.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악몽을 극복하지 못하면 언제든 주저 앉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준 거예요."

봉 감독은 이 악몽 장면을 통해 '미키'의 행복한 결말을 더욱 극대화 시킨다. "악몽은 악몽으로 끝나야 한다"는 그는 '미키'의 극복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미키'가 악몽을 극복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극복이 의미 있으려면 악몽이 강해야 하는 거죠. 그동안 주인공을 가혹하게 대했었는데 '미키'에게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미 17번째 죽은 애를 또 죽이고 싶지 않았고, '나샤'에게도 잘해주고 싶었죠. 지금까지 '나쁜 정치인'을 보여주었으니, '좋은 정치인'을 보면서 끝났으면 하기도 했고요."

그는 이 강렬한 '악몽'을 두고 제작사와 이견 조율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에서 악몽 신을 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어요. 관객들이 헷갈릴 것 같다고요. 전 싫다고 했고요. 하하. 점잖은 분들이라 싫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강압적이거나 압박을 주는 건 없었어요."
영화 미키 17 연출한 봉준호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미키 17' 연출한 봉준호 감독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봉 감독은 최근 영화감독들의 시리즈물 촬영에 관해 언급, 작업 방식과 더불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매혹적인 시리즈가 많아요. 저도 해보고 싶긴 한데 저의 작업 스타일이나 속도가 시리즈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제 스타일대로 하면 촬영 2주 차에 해고될 거예요. 하하. 박찬욱 감독, 김지운 감독 이야기를 들어보면 촬영 분량이 엄청나야 한대요. 아무리 계산해도 제 속도로는 따를 수가 없습니다. 사실 시리즈 제안은 많이 받았는데 자신이 없어요."

봉 감독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지금까지처럼, 변함없는 태도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세계적'이라는 민망한 표현을 듣는데요. 저는 그저 사람들에게 '이상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남고 싶어요. 그렇게 기억에 남았으면 합니다. 이상한 톤을 남기는 사람으로. 하하. 행보라고 한다면 그건 관객분들이 저의 행보를 정리해 주는 거겠죠. 제 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전작의 결과에 따라 다음 작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지금은 심해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데요. '기생충' 이전부터 준비하던 작업물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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