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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의 함께꿈] '극과 극의 시대' 민주주의 수명은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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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입력 2025-03-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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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이곳은 모든 게 엉망이 되고 있다. 조만간 다시 선거가 있다. 경기는 침체를 벗지 못하고 부동산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고, 고물가는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필자와 친분이 있는 독일인(K)의 가감 없는 솔직한 고백에 깜짝 놀랐다. K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견실한 직장인이고 중산층의 가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나 독일 기업의 수출 경쟁력 약화 등 정치·경제적 요인으로 독일의 상황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독일 중산층 시민의 편지에 담긴 비관적인 고백은 1990년대 독일 통일 이후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 사회적 불안에 시달리던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당연히 독일의 조기 총선(한국 시간 2월 24일 실시)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고, 선거 결과는 중도가 사라지는 역대급의 양극화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단연 극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대안당·AfD)'의 약진이 눈에 띈다. 지지율 20.8%로 제2당의 지위를 획득한, 그야말로 기록적인 승리이다. 직전 총선에 비해 정확히 2배 상승한 지지율은 가장 높은 지지율을 획득하며 재집권에 성공한 중도보수 정당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CDU)'의 22.6%와 불과 1.8%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극우파의 집권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근소한 격차이다.
아직은 극우파의 지지세가 압도적으로 동부 독일에 몰려 있다는 한계가 분명하지만, 범세계적인 극우 세력의 성장과 득세를 고려하면 지극히 우려스럽다. 그들은 반이민, 인종주의 및 반세계화로 연대하며 반자본주의적 경향까지도 보여준다. 이번 선거에서 세계적인 기업가 일론 머스크가 노골적으로 대안당 지지를 선언하고 지지율 상승에 영향을 미친 사실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는다.
그에 비해서 중도좌파의 극적인 후퇴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집권 ‘사회민주당(사민당·SPD)'은 직전 총선(2021년)에 비해서 무려 10% 가까운 지지율 폭락을 겪으며 제3당으로 전락했고, 이른바 신호등 연정의 파트너였던 ‘녹색당(GRÜNE)'은 제4당의 지위를 겨우 지켰지만 3% 이상의 지지율을 상실하며 체면이 크게 깎였다. 사회경제적 위기를 실감하는 독일 국민은 중도좌파의 진보적 가치와 미래 세대를 위한 기후정의와 환경개선을 위한 투자를 뒷전으로 밀어냈다고 볼 수 있다.
극우파의 약진, 중도좌파의 후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필자에게 눈에 띄는 선거 결과가 있었다. ‘자유민주연합(자민련·FDP)'의 퇴출과 ‘좌파당(LINKE)'의 의회 입성이 그것이다. 독일 내에서 신자유주의적 가치를 가장 선명하게 내세우는 전통적인 우파 정당 자민련은 극우파의 득세에 밀려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반면에 독일 내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선명한 전통적인 좌파 정당은 중도좌파의 어정쩡한 입장보다 훨씬 더 선명한 좌파적 가치를 내세우며 의회 재입성에 성공했다. 폴란드 출신의 전설적인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새겨넣은 팔뚝을 휘두르며 막판에 극적으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좌파당의 젊은 여성 원내대표의 활약은 무척 인상적이다.
요컨대 독일 조기 총선은 중도좌파 정부의 파산을 선고하는 한편으로 보다 선명한 좌파의 의회 입성을 허락했다. 또한 전통 우파 정당을 퇴출하는가 하면 훨씬 극단적인 우파의 대약진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직은 전통 중도우파에 대한 믿음이 남아 있지만 양극화하는 정치가 언제 파산을 맞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이 독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바야흐로 세계는 반민주주의적인 흐름에 휩쓸려 가는 중이다. 옆 나라 프랑스 정국도 극우와 극좌의 양극단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을 뿐이다. 그 위태로운 균형의 중심은 마크롱 대통령이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극우의 극적인 약진에 대한 프랑스 국민의 반사적인 지지에 기인한다. 어쨌든 극우파 정권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프랑스 국민의 정치의식은 돋보이지만, 그런 국민의 정치의식을 담아내는 중도정당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오늘날 프랑스 정국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2022년 5월 2기 집권에 겨우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은 곧 이은 총선(6월)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마크롱의 연금 개혁은 엄청난 저항에 부딪혔고, 정치적 사안마다 엄청난 홍역을 치러야 했다. 급기야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크롱이 이끄는 집권 르네상스당은 제3당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겪었다. 마크롱은 즉각 조기 총선 카드로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이번에는 중도좌파와 극좌 정당들이 연합한 ‘신민중연합’이 제1당을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관례상 대통령은 제1당의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하지만 마크롱은 극좌 정당의 지도자에게 총리직을 맡기기를 거부했다. 마침내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는 정치적 내홍이 벌어졌다.
프랑스 국민이 그동안 인기 없던 좌파연합을 제1당으로 밀어준 이유는 무엇일까? 극우도 싫지만 반극우 정서에 기대어 연금 개혁 등 중산층의 입지를 약화하는 우파 성향의 마크롱에게 실망했기 때문이다. 그럼 앞으로 프랑스에서 극좌 정부가 탄생할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통적인 중도우파 공화당과 중도좌파 사회당의 몰락이 그 중심에 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과 보편적인 복지국가 개념을 두 축으로 삼아 프랑스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을 견인했던 정당들이다. 그러나 1980년 이래 신자유주의 이념의 물결이 휩쓰는 동안 공화당과 사회당은 변절하거나 이른바 ‘제3의 길’을 표방하며 신자유주의 이념의 확산에 오히려 편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유한 좌파’나 ‘부패한 우파’ 같은 반민중적인 이미지들이 확대되며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래 양대 정당은 민심과 유리된 채 표류하는 중이다.
독일과 프랑스보다 더욱 심각한 양상은 미국에서 나타난다. 지금 트럼프 2기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여 만든 세계 질서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경제적인 차원에서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은 글로벌 자유무역 체계를 위협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는 과정은 세계 평화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종전 태도와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표면적으로 트럼프 정부의 목표는 미국의 국익 지키기로 보이지만 실제로 관세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미국의 저소득층 국민임은 경제전문가가 아니라도 예측 가능하다. 또한 트럼프와 푸틴의 거래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식된다면 전쟁 당사국 우크라이나는 국제적으로 고립될 여지가 높고, 그 많은 전쟁 비용과 높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감수하고 미국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던 유럽연합 국가들은 미국의 대러시아 외교 전략에 순순히 보조를 맞추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평화는 과연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트럼프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재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기필코 민주당의 노선 변경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지층인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고 중산층의 약화와 분열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쟁 억지력을 유지하면서 세계 평화를 수호하려는 대외정책의 기조를 포기한 듯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의 비인동적 가자지구 침략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했다. 어쩌면 월가의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대통령으로서 군산복합체의 적극적인 활성화를 통해 미국의 국익을 달성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관세를 통한 경제전쟁을 도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지구 전쟁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세계 평화와 안보를 위한 미국의 지출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은 앞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각국의 중산층 해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리라 예측되고, 중산층의 해체는 민주주의 체제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2025년 3월 6일, 대한민국은 다음 주로 예고된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의 선고를 앞두고 있다. 물론 필자는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되리라 예측하고,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고 확신한다.
문제는 탄핵 자체에 있지 않다. 12월 3일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란의 밤을 전개했을 때 온 국민이 대통령의 반민주주의적이고 무도한 권력 행사에 분노하고 저항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은 탄핵 찬성과 반대로 양분되는 양상을 보인다. 어처구니없는 현상이다. 거짓말을 일삼고 국민의 의지를 왜곡하는 대통령의 언행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지만, 그런 대통령을 지켜야만 알량한 권력이라도 거머쥘 수 있다고 계산하면서 극우 세력에 기대는 파렴치한 집권 여당의 행태는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금 거리를 가득 메운 극우 집회의 참가자들은 누구일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극우적 가치를 추종하는가? 비상계엄과 내란이 반헌법적 행위임을 그들도 모를 리 없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필자는 궁극적인 원인이 한국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에 있다고 본다. 신속한 중산층의 분화와 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자영업자,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층 등 경제적 양극화에 기인한 사회적 불만이 너무 크다. 그 불만을 가장 극적으로 표출하는 집단이 2030세대의 청년들이라는 사실이 무척 서글프다.
현 집권 여당은 탄핵 정국을 거치며 빠르게 극우 정당으로 변모하는 중이다. 8년 전 국정농단으로 탄핵 심판정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 당시와 달리 훨씬 단순하고 선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적극 방어하고 극우적 가치를 추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극우 정당으로 변신할 때 오히려 더 많은 의석수를 차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더욱 위험한 길로 들어서 암울한 미래를 향해 가는 듯하다.
불과 4년 전인 2021년, 유엔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지위를 부여한 경제적 선진화와 정치적 민주화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소멸하는 중이다. 경제성장의 전망은 날마다 낮아지고, 벌써 자유민주주의 지표는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떨어졌다. 앞으로 전개될 비극의 양상은 예측 불가다. 차기 정부는 대통령 탄핵의 역사 위에서 어떻게 국민 통합을 이룰 것인가?
독일인 K에게 감상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보낼 날을 기다린다. “우리는 다시 한번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굳건하다. 경기도 좀 회복되고 부동산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내려갔고, 고물가는 옛말이 되었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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