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캐나다, 멕시코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의 서막을 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침내 한국을 겨냥했다. 그는 방위비와 관세 및 반도체법 등을 지목하며 미국이 '손해' 보는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특정했다. 동시에 조선업 재건과 알래스카 가스관 사업 등을 거론하며 한국에 대한 요구 사항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2기 첫 상·하원 합동 연방의회 연설을 하면서 "우리 제품에 대한 중국의 평균 관세는 우리가 그들에게 부과하는 것의 2배"라고 한 후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그리고 매우 많은 다른 방식으로 아주 많이 도와주는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것이 우방과 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대부분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근거가 불확실하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반도체법을 "끔찍하고 끔찍한 것"이라고 비판하며 폐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반도체법과 남은 것은 모두 없애야 한다"며 마이크 존스 하원의장을 향해 "그 돈으로 부채를 줄이거나 다른 어떤 이유든 원하는 대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법 보조금을 기대하며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삼성,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국이 알래스카 천연가스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여기에 "한국과 일본 및 다른 국가들이 각각 수조 달러를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미국의 조선업 재건 계획을 재차 강조하며 백악관에 조선 관련 부서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 역시 투자 규모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지만 알래스카 천연가스 도입 또는 개발 참여는 한·미 간 무역 불균형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고, 조선업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후부터 한국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만큼 그가 한국에 바라는 바를 간접적으로 시사한 모습이다.
관세 강행 의지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자신의 치적을 자찬하는 동시에 관세 정책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이날 "우리는 대부분의 행정부가 4년이나 8년 만에 달성한 것보다 더 많은 성과를 43일 만에 이뤄냈고, 이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TSMC, 애플 등 주요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1조70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자랑했다.
최근 잇따라 관세 조치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자국 우선주의를 기반으로 한 관세 기조를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그는 "관세는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하고, 다시 위대하게 한다"며 "이런 일이 (내가 취임한 이후) 이미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빠르게 벌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부터 관세가 새로 발효된 중국, 캐나다, 멕시코가 미국을 상대로 보복에 나선 것을 의식한 듯 "일부 혼란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괜찮다.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유럽연합(EU), 중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캐나다 등을 언급하며 "우리는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수십년간 뜯겨 왔다"며 "이런 일이 더 벌어지게 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4월 2일부터는 상호관세가 시작될 것"이라며 타국을 상대로 그들과 동일한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어느 국가건 우리에게 관세를 매긴다면 우리도 관세를 매길 것"이라며 자국을 상대로 한 비관세 장벽(NTB)에도 역시 비관세 장벽으로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조업과 관련해서도 "미국에서 상품을 만들지 않으면 관세를 내야 한다"며 제조업 부활에 관세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표했다.
우크라 전쟁 종전 시사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정상회담 파행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와의 광물협정 합의가 임박했다는 점도 시사했다. 그는 "오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서 중요한 서한을 받았다"며 "(서한의 내용은) 우크라이나가 영구적인 평화를 보다 가깝게 할 협상 테이블에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올 준비가 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읽은 서한에는 '우크라이나 국민보다 평화를 원하는 이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하에 평화 달성을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됐다' ‘광물 및 안보에 대한 협정과 관련하여 우크라이나는 언제든지 서명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편지를 보내준 그(젤렌스키)에게 고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러시아와 진지한 논의를 해왔고, 그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준비돼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받았다"며 "정말 멋지지 않냐"며 종전 협상이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에 대한 야심도 드러냈다. 그는 "미국의 안보를 더 강화하기 위해 파나마 운하를 되찾을 것"이라며 "이미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뿐 아니라 세계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며 "그린란드를 얻기 위해 관련 당사자들과 협력하고 있고, 어떻게든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총 100분 동안 진행된 가운데 1964년 이후 미국 대통령의 최장 국정연설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날 연설 중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13차례 이상 언급하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편 이날 연설 도중 트럼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민주당 의원이 퇴장당하고 연설이 일시 중단되는 등 소란이 일었다.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은 ‘항의 피켓을 연신 연단 쪽으로 흔들어 보이거나 연설을 듣지 않는 등 항의를 이어갔고, 이 과정에서 앨 그린 민주당 의원은 일어나서 항의하다가 퇴장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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