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대륙 극장가에 ‘허스토리(그녀의 이야기)’가 뜨고 있다. 남성 감독 천지의 틈바구니 속에서 여성 감독이 제작한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가 관객을 사로잡고 있는 것.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최근 중국서 대박을 터뜨린 여성 감독 영화를 훑어봤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피를 흘리는데, (생리가 새서 옷과 소파가 더럽혀지는 게) 뭐가 부끄럽냐"며 남녀 어른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월경 수치심에 반박하는 9살 꼬마소녀. 일본 대표 여성학자인 우에노 치즈코의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를 자랑하며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싸우는 두 남자
지난해 중국에서 깜짝 흥행에 성공한 영화 '하오둥시(好東西)'에 나오는 모습이다. 하오둥시는 중국어로 ‘좋은 것’이란 뜻인데, 한자 ‘하오(好·좋을 호)’를 해체하면 ‘여자(女子)’가 된다.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일상 이야기를 코믹하면서도 날카롭게 다뤘다. 하오둥시의 영어 제목도 그녀의 이야기, '허스토리(Her Story)'다.
중국 여성 감독 샤오이후이(邵藝輝)가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상하이에 사는 세 여성의 이야기다. 전직 기자로 최근 실직한 독립적인 싱글맘 왕톄메이, 그녀의 재치 있는 초등학교 딸 왕몰리, 그리고 겉으론 자유분방하지만 마음씨 여린 젊은 무명가수 샤오예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서로 용기를 북돋아주며 성장해 나가는 내용이다.
생리 수치심, 성적 동의, 페미니즘 등 민감한 남녀 성(性) 이슈를 일상 대화를 통해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다루면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과감하고 날카롭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작비 5000만 위안(약 99억원)의 저예산 영화 하오둥시는 예상 밖으로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하며 박스오피스 7억 위안도 돌파했다.
중국 영화평론사이트 더우반에서는 평점 9.1을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성 적대감을 넘어서 여성의 주체성을 진정으로 부각시킨 진정한 의미의 여성주의 영화”라고 평하며 2023년 미국 할리우드 그레타 거윅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바비’에 비교해 “중국판 바비”가 탄생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하오둥시가 “독특한 코미디 스타일을 창조했다”며 “현실 생활 속 사람들의 모습을 가볍고 귀엽고 재미있게 묘사한 것 같지만, 유머와 함께 (현실의) 부조리함도 폭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중예술 영화는 관객과 함께 해야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며 “삶에 대한 강한 통찰력, 공감력을 가진 창작자만이 진정으로 관객을 흡입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할 수 있고 영화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사회 논란을 빚을 수 있는 젠더 소재를 다룬 영화가 중국 당국의 검열을 통과해 개봉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실제 중국 남성들 사이에선 영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쏟아졌다.
예를 들면 싱글맘 왕톄메이의 무능력한 전 남편은 영화 속에서 아예 이름도 없이 ‘첸푸(前夫, 전 남편)’라고 불리는데 감독이 의도적으로 남성을 비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영화가 중국 남성 스포츠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후푸(虎扑)에서 5.1이라는 낮은 평점을 받은 이유다.
어쨌든 하오둥시의 성공은 중국 영화 산업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더 두드러지고 있음을 보여줬으며, 특히 페미니즘 이슈와 상업적 요소를 결합해 중국 영화계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도 여성 감독이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다. '러라군탕(熱辣滾燙, 영문명: 욜로)'이다.
‘맵고 뜨겁게’라는 뜻의 영화 러라군탕은 중국 여성 코미디언 배우 자링(賈玲)이 영화감독과 주연을 맡은 코미디 영화다. 일본 영화인 '백엔의 사랑'을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과체중 여성 주인공이 복싱 코치를 우연히 만나 권투를 배우면서 체중을 감량해 복서로 성장한 내용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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