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3월 초 워싱턴에서 열린 트럼프와 젤렌스키 간의 정상회담은 그야말로 외교적 참사였다. 정상회담은 자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종전을 위해 제일 의지해야 하는 미국을 찾아 조건을 협상하는 정말 중요한 자리였다. 그런데 본회담도 제대로 없이 가진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는 트럼프가 깔아둔 덫에 걸려들었다. 그는 자국 입장을 관철하려는 열정은 있었으나 흥정의 달인인 트럼프가 그 자리를 홍보 쇼로 활용할 것이라는 점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대가로 상납하려던 광물협정을 서명하지도 못하고 워싱턴을 떠난 후 지원중단과 사퇴요구라는 끔찍한 통보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신은 더 이상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다’와 ‘당신은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잘라 말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강대국과 협상 시 약소국은 을의 위치에 있기 마련이나 그래도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정상을 이렇게 박대하는 것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파국적 결과의 원인에 대해 젤렌스키의 준비와 발언 실수 등 미시적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보다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등장한 이후 전 세계가 2차 대전 이후 믿어왔고 심지어 하나의 규범처럼 여겨졌던 ‘가치기반 서사(value based narrative)’들이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젤렌스키가 제대로 깨닫지 못한 점이 가장 큰 패착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그나마 바이든 행정부 때까지는 통용되던 서사를 가지고 트럼프를 설득하려 한 것이 오히려 트럼프의 화를 돋우고 반격을 불러들인 것이다.
미국 국익만 우선하고 자기의 개인 실적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트럼프에게 젤렌스키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들이밀었다. 이런 ‘가치를 지키는 전쟁’을 수행 중인 우크라이나에게 미국의 계속된 지원은 당연하다는 자세를 보인 실수를 저질렀다. 강대국 정치와 신제국주의적 관점을 가진 트럼프는 이 전쟁은 처음부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전쟁이라고 여겼다. 그러니 이 전쟁을 성전처럼 묘사하는 젤렌스키를 트럼프는 이해할 수 없었다. 트럼프에게는 자신과 같이 강대국 정치 틀에서 ‘러시아 안보의 완충지대로서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는 푸틴이 젤렌스키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상대이다. 그리고 현실주의적인 트럼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영토 회복이라는 명분에 집착해 ‘현 전선 동결 후 종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젤렌스키가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젤렌스키는 자국을 침공한 러시아는 침략자이니 무조건 비판 받아야 하고 침략을 물리치기 전까지 불리한 외교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그렇지만 동석한 밴스 부통령은 젤렌스키가 외교를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외교란 선악 간 우열을 따지기보다는 이익을 비교하는 거래의 장이기에 타협을 해야 하고, 약한 측에서 더 많은 양보를 해야 한다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젤렌스키는 외교도 모르고 가진 카드도 없으면서 흥정에서 그냥 버티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인 것이다.
또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가 불안해지면 유럽이 불안해지고 유럽의 불안은 대서양을 건너 결국 미국 안보의 불안이 될 것이라는 논리로 미국민의 불안심리에 호소해 보려 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단호히 대서양은 미국 안보의 방책 역할을 하며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안보가 한 묶음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NATO의 필요성 자체에 의문을 가진 트럼프에게 아주 고식적인 논리로 설득을 해보려다 젤렌스키가 오히려 당한 격이다. 미국 우선주의자들은 89년 공산권이 몰락하고 소련의 위협이 없어진 그 무렵에 사실 미국은 NATO에서 발을 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거의 논리로 미국을 유럽에 끌어들이려는 젤렌스키가 트럼프 눈에 고울 리 없었다.
이번 전쟁의 원인을 찾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우크라이나는 구 소련시대 자국에 배치되어 있던 핵무기를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국제사회의 권유를 받아들여 러시아로 자진 반납하였다. 미래에 안보위협이 존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핵비확산 조약의 명분을 따른 것이다. 즉 지금까지도 유효한 시대의 서사인 ‘핵이 없는 지구를 만들자’는 말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한 것이다. 그 대가로 미국, 영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부다페스트 협정’을 맺었지만 이 협정은 지금 휴지조각이 되었다. 상황 변화에 따라 협정과 서사는 변할 수 있는데 당시의 시대적 서사를 믿고 협정에만 의지하면서, 자국의 필살기를 포기한 잘못이 지금의 전쟁과 수모를 가져온 배경이다.
에너지 안보와 관련하여서도 우크라이나는 과거의 서사, 즉 평화 시대의 서사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지금 심각한 에너지 부족현상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전 구 소련시대 건설된 원자로와 러시아로부터 공급받던 LNG에 발전을 의존해왔다. 그리고 신재생 에너지 시설도 최근 건설하여 이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자 원자로와 신재생 에너지 시설은 폭격을 당하고 LNG의 공급은 차단되었다. 이러다 보니 전력부족 현상이 만연하고 석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전의 신재생 에너지 정책, 즉 그린 딜(Green Deal) 정책을 아예 사기로 폄하한다. 물론 이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에 지상명제처럼 여겨졌던 ‘탄소 중립화’ 목표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탄소 중립화 정책은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필요한 면도 있지만 다분히 선진국들의 산업정책상 필요에 의해 추동된 면도 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앞장서 무시하고 있고 EU도 자신에게 불리한 부메랑이 되는 탄소 중립화 정책에 제동을 걸 조짐이 보이고 있다. 에너지 공급망이 온전하게 작동하며 ‘탄소 제로정책’이 시대적 서사처럼 여겨졌던 평화 시대는 가고 있다. 시대 변화를 잘 읽지 못한 우크라이나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고통을 받고 있다.
젤렌스키가 당한 수모를 보면서 우리는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에 당한 수모를 떠올리게 된다. 또한 우리도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주변에 아직도 지난 80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문법과 서사가 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기에 젤렌스키의 수모를 우리는 곱씹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자유주의적 가치가 국제협력을 통해 잘 지켜지리라 믿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의 자주 국방력은 안 키우면서 동맹의 우산에 의존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주권평등의 개념에서 동등한 협상이 가능하다고 여기지 않는지? 에너지도 신재생에 의존하는 게 더 멋져 보이니 올인해야 하지 않는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되묻고 이에 따른 사고전환을 해나가야 한다. 더 이상 여유를 부릴 틈이 없다.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적이 되면 위험하다, 그런데 미국의 동맹이 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동맹을 잘못 읽다간 큰코 다친다는 말인데 우리가 새겨들어야 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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