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표상으로는 2%대 흐름을 보이며 정부의 물가안정 목표에 부합하는 모습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3%를 저점으로 11월 1.5%·12월 1.9% 등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린 뒤 올 들어 두 달 연속 2%대 상승세다.
문제는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물가가 정부의 발표와 동떨어진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이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 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2.6% 인상됐다. 이는 지난해 7월(3.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월세를 포함한 생활물가지수도 2.3% 올랐다.
식품업체들이 새해 들어 출고가를 잇달아 인상하면서 가공식품물가 상승률은 2.9%로 상승해 작년 1월(3.2%)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물가는 이처럼 고삐가 풀리기 시작하면 모든 품목이 앞다퉈 뛰쳐나가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가급등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는 원·달러 환율은 탄핵 정국이 길어지고 관세폭탄으로 트럼프 리스크가 촉발되면서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 11월 1300원대에서 움직이던 환율은 12·3 비상계엄 사태 후 1500원에 육박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이 본격화되는 등 악화된 대외여건도 물가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연평균 환율예상목표치를 달러당 1300원대에 두었으나 최근 환율은 145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고환율에 따른 충격을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환율급등을 예견한 기업이 있을 리 만무하다.
통상 원화가치 급락(환율 상승)은 물가에 지대한 악영향을 준다. 보통 달러당 원화환율이 10% 오르면 국내 물가는 1.3∼1.5% 오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고환율·고유가·고물가의 3중고로 인해 물가압력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황이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계엄과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 의료계 파업사태는 국민들에게 국가의 역할 자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갖게 만들었다. 권한대행 정국 속에 크고 작은 인명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것도 위기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한번 발생하면 치유가 어렵다. 경기전망이 불투명한 시점에 가중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가계부담을 가중시키고 국제수지를 악화시켜 경제 전반의 기조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이라도 경제정책의 기조를 물가안정에 비중을 두고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 대선 압승은 오랜 물가고로 체감경제 상황이 악화된 데 따른 국민 불만이 가장 큰 배경이었다. 경제난, 그중에서도 서민과 중산층의 생활고를 유발한 인플레이션 앞에서 조 바이든 정부의 다른 경제 성과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물가를 이기는 정권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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